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봉선 Feb 24. 2021

삶과 죽음에 대하여






있고 없고의 차이일까?


나이가 들수록 주위의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난다. 


보내는 마음이 무너지고, 

 남는 마음 또한 책임감이 크다.


생(生)이 있으면 사(死)가 있고,

음(陰)이 있으면 양(陽)이 있게 마련이다.


'든 자리는 표가 나지 않는데, 난 자리는 표가 난다.'는 말처럼


사람은 태어남과 동시에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이별한다.

기억이 나는 사람도 있고, 기억에 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우리가 직접 만나는 사람도 있고, 만나지는 못하지만 매스컴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의 죽음은 큰 충격으로 온다.

직접 만났던 사람들은 그 사람과 같이 했던 시간을 생각하며 슬퍼한다.

매스컴에서 보던 유명인사의 죽음은 그 사람의 작품으로 그 사람을 생각하며 슬퍼한다.

자신이 사랑한 스타의 죽음은 따라 죽는 팬들도 있을 정도로 그 슬픔은 생각보다 크다.


삶의 굴레는 내게로 오는 사람이 있으면 보내야 하는 사람도 있다.


가족의 죽음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가슴 한켠이 시리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지나도 생각과 함께 후회를 남긴다.

나를 남기고 간 사람이 있고, 내가 남겨놓고 가야 하는 길이 있다. 

자의로 태어나진 않았지만, 죽음도 내 선택이 없다.

그저 주어진 삶에 주어진 시간 동안 나는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삶을 

미워하던, 사랑하던, 

아침에 눈을 뜨고, 저녁이면 잠이 든다.


오늘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낸 내 하루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하루가 될 수도 있다. 


어느 개그맨은 암투병중에 하루하루가 소중하다고 했다.





얼마나 간절(懇切)한 삶일까...





누군 사는 게 싫다고 죽음을 생각해 행동으로 옮기려 한다.

얼마나 남루(襤褸)한 삶일까...


삶을 대하는 자세와, 죽음 대하는 자세는 분명히 있다.


유(有)가 있으면 무(無)가 있게 마련이다. 


내게 있는게 있으면 없는 것도 있게 되어 있다.

남들도 마찬가지다.

있는게 있으면 없는게 있다.

지덕체(지육智育, 덕육德育, 체육體育)를 다 갖춘 이가 어디, 그리 흔하겠는가.


그래서 인간은 다 같이 모여 살아 내 부족한 면을 채워줄 이와 함께하고,

다른 이의 부족함을 내가 채워주면서 사는 것이다.

흐름으로 시간은 채워지고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그 흐름은 죽음으로까지 이어진다. 삶이 있어 죽음이 있는 것이다.

삶만 있고, 죽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삶과 죽음의 공존.




인생이란 되풀이되진 않는다.

매일매일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분명코 그것은 일회로 끝이 난다.

어제와 내일을 이야기할 수는 있을지라도 예측할 수는 없다.

우리는 늘 '지금'을 살고 있을 뿐이다.

-법정스님




오늘과 내일이 같게 느껴지더라도 분명 다른 시간이다.

내게 하루하루는,

같은 공간 속에 같은 사람들과 살아온 흔적과도 같다.

다를 게 없는 '지금'처럼 내일도 또 그렇게 살고 있을 것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만큼,

내개 주어진 삶 만큼,

그렇게 살면 되지 않을까...












어릴 적 무지개다리 끝은 세상의 끝이라고,

천국과 세상을 이어주는 다리 "천상의 다리"로 여겼고,

무지개다리 끝에 요정이 심어놓은 보물 단지가 있다는 얘기에 무지개 끝이 궁금했다.

지금이야 무지개가 왜 생기는지 이론적으로 잘 해석이 되어 있지만, 하늘에 펴진 무지개를 보면 좋은 일이 생길 거란 생각으로 경이롭게 본 적이 있다.


지구는 둥글고, 무지개도 둥글고, 내 머리도 둥글다. 

그 둥근 세상에 머리 아프게 살지 말고,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실망하며 좌절하지 말고 흐르는 데로 둥글게 둥글게 살았으면 한다. 











 

작가의 이전글 마릴린 먼로와 어느 재즈가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