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의 고모할머니는 집안을 떠나지 못하는데...
외할아버지의 여동생, 고모 할머니는 늦둥이라고 집안 식구들이 많이 이뻐했다고 한다.
그렇게 집안의 귀염둥이 고모할머니는 7살이 되어 죽었다고,
양갈래로 묶음 머리로 흰 저고리 검정치마를 입고 집안을 돌아다니는 고모할머니를 식구들은 잊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할아버지 집은 지금껏 300백년 정도가 된 집이다.
방 두칸으로 시작해 온 식구가 그렇게 끼어서 잤고, 할아버지가 할머니와 결혼을 하면서 방 한칸을 더 늘려 3칸의 집이 됐다.
안방은 할아버지의 아버지인 증조할아버지 내외가 주무셔야 했고, 새로 만든 방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주무셨다 한다.
가운데 방은 9의 자식들이 잤다.
장녀인 엄마는 할머니를 도와 집안 일을 다 해야해서 밤 늦도록 초하나를 켜놓고 바느질 할때도 있었다고 한다.
옆으로 동생들이 자고 있고, 홀로 해진 옷을 꿰멜때 잠이 들었는지 꾸벅하고 고개가 떨어질때 쯤 엄마 앞에 누가 앉아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가만히, 그리고 조용히 엄마를 쳐다보는 아이.
양갈래 머리에 흰 저고리, 검정치마를 입고서 흔들거리는 촛불 아래서 엄마를 가만히 쳐다보다 그렇게 사라졌다고 한다.
그렇게 종종 가운데 방에서 엄마와 동생들에게 모습을 보여 엄마와 이모들은 그 고모할머니를 얘기한다.
"언니 나도 한번 봤어. 그때는 무서워서 자는척하고 그랬는데, 가만히 머리맡에서 쳐다보더라고."
그 후 안방을 공사하느라고 증조할아버지가 가운데 방에서 주무시게 됐는데, 그곳에서 주무시다 10흘만에 돌아가셨다 했다.
그때는 돌아가시면 병명도 뚜렷하지 않아서 무슨 병으로 돌아가셨는지 알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들이 많다고 한다. 그저 막연하게 어디 아파하더니 그쪽이 문제였나 보다 하고...
그리고 둘째 이모가 집에서 멀리 시집을 가게 되었는데
이모가 시댁 마당을 들어서려 할 때였다.
"아가, 넌 누굴 데리고 왔냐?"
시어머니가 들어서는 이모를 보고 한 말씀하신다.
"네? 누구요?"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니 뒤에 따라온 저 양갈래 머리를 한 아가는 누구냐?"
이모의 시어머니는 그때 신기를 조금 갖고 계셨는데, 이모가 시댁으로 들어설때 그 뒤에서 졸래 졸래 쫒아오더란다. 행색을 보니 가운데 방에서 가끔 보이던 고모할머니를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고.
둘째이모 시어머니를 보고 고모할머니는 다시 돌아갔고,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자식들 다 분가하고 두 노부부 밖에 남지 않았을때,
방 3칸 중 하나는 그저 창고처럼 썼고, 할머니가 안방에서 주무시고, 그 가운데 방은 할아버지가 왔다갔다 하셨다. 가끔 시골에 내려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뵐때면 할아버지는 종종걸음을 걸으시곤 마당에 있는 감나무에서 감을 따다
"아야. 먹어라."
하셨던 그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할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아버지 차를 타고 내려가는 길. 그길 도착할때까지 엄마는 계속 우셨다.
집에서 장례를 치르니 온 마당에 자리가 깔리고 전구를 연결해 온 집안을 밝혀야 했다.
많은분들이 방문하셨고, 3일장을 집에서 하는 장례식이라 식구들이 그 손님들을 다 대접해야 했다.
그러니 식구가 아무리 많아도 상이 계속 나가고 들어오기가 무서울 정도였다.
낮부터 밤까지 녹초가 되다 보니 아무 방이나 잠깐 쪽잠을 자고 일어나 다시 상을 차리기를 며칠...
그날도 사촌동생과 그 가운데 방에서 1시간가량 잠을 자고 멍하니 앉아 있는데, 동네사는 막내 이모와 셋째 숙모가 그 방으로 들어오지도 않고, 문 밖에 앉아
"너 여기서 잠잤어?"
"네. 왜요?"
"아니 잠이 잘 와?"
"그럼 얼마나 피곤한지 머리가 바닥에 닿기도 전에 자요."
그러더니 이모와 셋째 숙모는 둘이서 눈빛을 교환하곤 밖으로 다시 나가셨다.
내일이 발인이라 밤샘을 하시겠다며 손님들은 고스톱에 술상을 계속 받고 계셨다.
한쪽에 서 계시는 셋째 숙모께 아까 일을 물어봤다.
"숙모, 저 방에서 자면 안돼요?"
"어? 아니."
"그럼 막내 이모가 한말은 뭐예요?"
"그게 아니라, 그 방에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대."
"저 방에서요?"
"어. 그 방에서 주무시다 돌아가셨대. 벌써 저 방에서만 계속 돌아가시니깐 무서워서 우린 근처도 않가. 근데 넌 거기서 잠을 자니... 괜찮아?"
"할아버지가 남인가? 잠 잘오던데요?"
"무섭지 않아?"
"무섭긴 뭐가 무서워요."
마당으로 들어온 상여를 바라봤다.
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상여였다. 마을에서도 그 상여가 마지막이라고 했다.
할아버지를 태워 구만리 먼 곳으로 데려다 줄 상여는 화려하게 치장하고 있지만, 이 세상과 마지막이라는게 얼마나 슬플지... 그 집에서 태어났고, 그 집에서 다른 세상으로 가는 상여를 타고서 떠나는 길. 자식들의 배웅받으며 살아온 길을 다시 되짚어 돌아본다.
선소리꾼의 선창으로 상여가 일어서고, 종을 울리며 상여소리가 시작된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임을 두고 간다.
내가 가면 아주가나.
아버님전 뼈를 빌려, 어머님전 살을 빌려, 이 세상에 왔건만, 부모은공 못 다하고,
황천으로 돌아가네."
아들과 딸들은 그뒤 따르며 아버지의 이승에 마지막을 슬퍼하며 선창꾼의 가락에 답을 한다. 그렇게 할아버지를 보내드린다. 살아생전 장남이 아닌 둘째 아들로서 집안의 장남 역할을 하느라고 자식을 등한시했던 성정을 지금도 식구들은 원망아닌 섭섭함으로 얘길한다.
그 방에서 조카들을 바라보고,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아버지의 죽음을 지키고, 자신 오빠의 마지막을 지켰을까?
죽어서도 가지 못하고 집안에 남아 가족들과 일상을 공유하며 자신도 그 가족과 함께라는걸, 죽음도 인정하지 않고서 자신이 떠 다니는 것도 모른체, 올케인 할머니도 돌아가신 그 집에서 아직도 그 고모할머니는
양갈래 머리를 매만지며,
마당에서 돌멩이 쌓기를 하고,
감나무 밑에 앉아 오가는 사람을 보고 있을지도...
고모할머니의 최고의 일탈은 둘째이모 시집가는 길에 그 문을 넘지는 못했지만, 집이 아닌 그 먼길 다른 동네까지 이모를 배웅하고 그 집에 조카 잘 부탁한다고 하고 갔을지도 모른다.
나이 들지 않는 모습 그대로 고모할머니 언제까지 거기 계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