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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천소년 Mar 16. 2022

도움을 주면 웃음이 나고, 웃음이 나면 행복해집니다

고통의 삶 속에서 우리가 삶을 이어나가는 이유


상쾌한 월요일 아침이 시작되었다. 요즘 나의 아침 루틴은 체중을 재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부자리 정리 후에 물 한 잔을 마신 다음 바로 체중계 위로 올라간다. 매일 아침 나의 체중을 사진으로 남겨 놓는다. 그 다음으로는 출근을 가기 전까지 책을 읽거나 블로그에 글을 쓴다. 그런데 이날은 퇴근 후에 저녁 약속이 있었다. 저녁에 따로 달리기를 할 시간을 내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옷을 갈아 입은 다음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 요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란 책에 심취했기 때문에 그 책을 들으며 집 주변을 달리고 있었다.



아침이라 그런지 대로변에도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걱정이 가득해 보이는 할머니가 더 쉽게 내 눈에 들어왔는지도 모른다. 길을 헤매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잠시 달리기를 멈추고 할머니께 도움을 드리기 위해서 다가갔다. 할머니께서는 보건소를 찾고 있었다. 그 순간 겁이 덜컥 났다. 아침 일찍부터 보건소를 찾는다? 코로나 증상이 있으셔서 검사를 받기 위해 보건소를 방문한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할머니와 거리를 두었다. 마스크를 더욱 코 끝까지 올려 썼다. 실제로 보건소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라고 답한 후에 황급히 내가 가던 방향으로 더욱 속도를 내며 달렸다. 혹시 나도 코로나에 감염되는 거 아니냐 하는 찝찝한 생각과 감정을 동시에 느끼면서 말이다.



마침 반대편으로 길을 건너야 해서 횡단보도 앞에 멈추었다. 괜히 할머니가 신경이 쓰였다. 할머니는 다시 내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오시며 이번에는 거리를 청소하고 계시는 환경미화원분께 보건소 위치를 물어보았다. 고단한 표정의 환경미화원 아저씨는 정확히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면서 그런 것은 저기 젊은 사람한테 물어보라고 한 뒤에 다시 본인의 일에 열중했다. 거리에 사람이라고는 나와 할머니 그리고 아저씨뿐이었다.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한 할머니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시며 주변을 서성거릴 뿐이었다.



순간 아무리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더라도 사람을 바이러스처럼 취급했다는 사실에 부끄러웠다.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몸과 마음을 단련하며 '영천소년의 자기혁명'이라는 블로그도 만들었다. 타인과 세상에 조금이라도 이타적인 존재가 되고 싶어 헌혈도 시작했다. 하지만 내 앞에 당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고, 나는 그를 외면했다. 매일 학교에서 백 명 이상의 학생들을 만나고, 퇴근 후에 자유롭게 지인들도 만나면서 뭐가 두렵다고 누군가의 직접적인 도움을 외면했을까. 다행히 나의 작은 성의로 도움을 드릴 수 있는 할머니는 여전히 내 앞에 존재하고 계셨다. 재빨리 네이버 지도 앱을 켜서 보건소를 검색했다. 민망할 정도로 나와 가까운 거리에 남부 보건소가 있었다. 할머니께 다가가서 지도를 보여드리며 보건소로 들어가는 골목길까지 같이 가 드리겠다고 했다. 내가 있는 곳에서 보건소가 있는 골목길까지는 도보로 고작 3분 거리였다. 보건소가 있는 골목길 앞까지 안내해 드린 다음에 다시 내 갈 길로 향했다.



그 순간 할머니께서는 "고맙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고맙습니다'라는 그 말은 괜히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마스크를 단단하게 착용하고 계셨지만 나를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는 분명히 웃고 계셨다. 마음속으로 말했다. '아닙니다. 오늘 하루를 좋은 사람으로 시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셔서 제가 오히려 감사합니다.' 할머니와 헤어지고 난 후에 나는 다시 집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집으로 가서 샤워를 한 다음에 출근 준비를 해야 한다. 집까지 달려가던 중에 나도 모르게 마스크 속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나 역시 슬며시 웃음이 난 것이다.



인간의 DNA는 누군가를 도우면 기분이 좋게끔 설계가 되어 있다. 원시 시대부터 상부상조하는 것이 서로의 생존에 더욱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도움을 청하면 사람들은 기꺼이 도움을 주고 싶어 한다.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다면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리고 웃음은 누군가와 함께 할 때 생긴다. 누군가와 상호작용 없이 혼자서 웃기란 쉽지 않다. 하굣길에 학생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혼자서 걸어가는 학생들의 표정은 다소 심각하다. 반면에 삼삼오오 모여서 가는 학생들의 표정은 밝고 웃음기가 있다.



웃음과 행복은 자신으로부터가 아니라 외부로부터 정확히 말해 나와 타자와의 관계로부터 가능하다는 사실을.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 / 강신주 / 24쪽



강신주 작가는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도 우리가 삶을 이어나가는 이유는 고통의 와중에도 일순간 고통이 완화되는 상태인 행복이 찾아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고통에 직면한다. 따뜻한 엄마 뱃속에서 편하게 있다가 서늘한 외부 환경에 노출되었을 때 아기는 모든 것이 힘겹다. 울고 있는 아기를 엄마 품에 안기면 아기는 곧 편안함을 되찾고 웃는다. 아이를 웃게 만들기 위해서는 또 한 명의 사람이 필요하다. 혼자서 스스로 웃기는 어렵다.



2017년도에 함께 근무했던 J 선생님께서는 자주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거라고. 오늘 하루도 많이 웃으면서 보내고 싶은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는 최고의 방법은 누군가의 도움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이날 아침의 사건으로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누군가를 도우며 하루를 시작해서 그런지 몰라도 이날 직장에서도 누군가의 배려를 받는 일이 자주 있었다. 당연한 호의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었지만 "깜빡할 수도 있었는데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맛있는 커피 태워줘서 고마워요."라고 미소와 함께 따뜻한 말을 나 역시 전달했다. 고맙다는 나의 말에 그들도 웃음으로 화답했다. 어제 하루 종일 막걸리 마시기 좋은 음습한 날씨였지만 내 기분은 맑음이었다. 오늘도 웃음을 발견하고 창조하는 그런 시간들로 하루를 채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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