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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희 Mar 26. 2020

엄마, 서재를 탐하다

엄마 서재를 탐하다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엄마가 되고 처음 누렸던 '나만의 시간'은 아이의 낮잠시간이었습니다. 오후가 되면 돌이 막 지난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뽀로로 노래를 부르며 집을 나섰습니다. 행선지는 동네 대형마트 안의 작은서점었습니다. 아이가 옆에서 잠을 자는 동안 신나게 이책 저책 두리번거리며 책장을 넘기곤 했어요. 아이가 눈을 희번떡 뜨면 유예시간은 끝나지만 어쨌거나 꿀맛같은 시간이었어요.     

좌충우돌 엄마 수습기간(대략 1-2년)을 넘기고 나니 밤만 되면 슬슬 육퇴가 기다려졌습니다. 아이가 잠든 밤 12시. 낮동안 살았던 엄마임무를 내려놓고 온전한 '나'로 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무얼 하든 이 고요한 시간이 좋았습니다.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고, 무언가 끄적이고, 강연을 듣고, 야식을 먹고, 영화를 보는 등 마음이 내키는 것들을 해 왔습니다. 어둠을 뚫고 미세한 틈 사이로 시간이 쌓여갔습니다.

30대를 통과하면서 가장 치열하게 스스로 물었던 것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일은 뭘까?

그 두가지였습니다. 혼자 다니는 것이 더 편했습니다. 첫 아이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면서 교육으로 이어지는 엄마들과의 교류는 늘 불편했습니다. 오고가는 이야기들이 점점 따분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불안과 찜찜함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고 부터는 혼자 카페에 가고 혼자 책을 보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언젠가는 책과 관련된 일을 하면 참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점을 가고 도서관을 누볐습니다. 문학과는 거리가 멀었던 제가 작가 '이상'을 만나 푹 빠져 지낸 날을 꺼내보려 합니다. 오후 햇살이 창가로 나른하게 들어오는 도서관 한켠에서 죽은 이상을 추모하는 박태원의 글을 읽었습니다. 두 사람의 우정이 남다르고 부러웠습니다. 이어 이상의 얼굴을 보고 두근거렸고 그의 작품을 읽다가 전집까지 섭렵하였습니다. 사람을 사귀는 것보다 혼자만의 세상에서 모던보이들을 상상하는 일이 더 흥미진진했습니다. 책의 세계에 푹 빠져보니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독서모임에 가입하게 되었어요. 첫 날의 두근거림과 긴장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 곳은 엄마들이 주 구성원이었고 이미 익숙해져 있는 그룹에 섞여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아이와 시댁이 있는 산으로 올라가기 일쑤였고, 책에 대한 저의 객쩍은 혈기가 영 어색하기도 해서 두번 참여 하고는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엄마도 꿈꾸는 사람이다

유일하게 엄마 아닌 사람의 존재로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은아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퇴사를 하고 결혼하여 대구에서 살게 된 저는 백수한량에 남는 것은 시간이었습니다. 남편 말고는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습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경북대 사회교육원 유화반을 등록했습니다. 여기에서 그림 그리다가 만나 사귄 1호 친구입니다. 커피를 좋아하고 그림을 좋아하고 책이야기가 통하니 만나면 즐겁고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사이였습니다. 각자 자리에서 육아에 몸담고 있던 시간에도 관계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서른 여섯. 12월 연말이 다 갈 즈음 기분도 낼 겸 우리는 아이를 데리고 만났습니다. 맛있는 밥을 먹고 차를 마셨습니다. 한 해를 보내려니 왠지 모를 서글픔이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육아와 살림을 넘어 나라는 존재를 놓고 상호 외침이 들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존재에 대한 물음.

"넌 뭐가 하고 싶어?"

이렇게 시작된 우리의 물음은 그날에 스파크가 튀었습니다. 책 이야기로 시작해 뭔가 해보자는 결의가 다져지는 사건이 되었어요. "독서모임을 우리가 그냥 만들까" 은아의 입에서 너무 쉽게 나온 그 말이 실현 가능하겠는걸로 바뀌었습니다. 신이 났습니다. 며칠 뒤 우리는 다시 만났습니다. 한밤 중 남편에게 각자 아이를 맡겨 놓고는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독서모임을 구체적으로 기획한 노트를 꺼내어 이 친구에게 브리핑을 했습니다. 책으로 무엇이든 하고 싶은 열망이 가득한 페이지를 처음 꺼내 보이면서요. 은아는 그날 노트를 펼쳐 고이 품고 있던 꿈을 속사포처럼 제 앞에 펼쳐 보였습니다. 상당히 구체적이었어요. 우리는 아주 비장했고 그날 공기는 무척 진지했답니다. 그로부터 두 사람의 바램이 겹쳐져 하나의 실체가 만들어졌고 그 구체적인 이름을 따와 2013년 1월 문화공동체 우주지감을 열게 되었습니다.

현재까지 여든 두번 째 모임을 꾸렸고 8년째 이어오고 있습니다.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 두 번의 고비(메르스와 코로나)를 빼고는 중단한 적이 없습니다. 나이 성별을 너머 계층과 사회적위치를 내려놓고 책벗으로 만나는 인연들이 무엇보다 특별했습니다. 때로는 다사다난했습니다. 모임 첫 해에는 둘째아이가 동시에 생겨 50일 차이로 출산도 하였습니다. 직장에서도 3개월을 주는 출산휴가를 우리는 딱 2개월을 가졌습니다. 그 뒤로 저는 7살 큰아이는 어린이집에 보내고 백일이 채 안된 둘째 아이를 데리고 독서모임에 나가기 시작했어요. 그 곳에서 우유를 먹이고 낮잠을 재웠습니다. 울면 조용히 문 밖에서 어르고 달랬습니다. 함께 참여하는 샘들은 너그러이 바라봐주었습니다. 한달에 한 번 아이가 돌이 될때까지 뒷 좌석에 태우고 옆구리에 책을 끼고 모임을 나갔습니다. 모임이 끝나고 유모차를 끌고 주차장에 도착한 순간 아이가 바닥에 떨어지는 일도 있었어요. 얼굴에 상처난 채로 자지러지게 울던 아이얼굴을 보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못난엄마로 돌아와 생각했습니다.

"나 왜 이렇게까지 해야하는거지?"


다시 모임 전날이면 새벽시간 눈을 비비며 은아와 함께 발제를 만들고 인쇄해서 모임에 나갔습니다. 마냥 뿌듯하면서도 마냥 즐거운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인지라 한 번씩 얘기치 못할 일들도 겪곤 했지요. 그럴 땐 물질적 댓가도 따라오지 않는데 왜 이렇게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있는거지 하며 힘이 빠지기도 했어요. 회의로부터 오는 공허함은 다시 함께했던 사람들로 따뜻하게 채워진다는 것을 경험하며 다져졌어요. 그러나 꾸준히 무언가 계속 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였어요. 우리는 여자로 엄마로 동지로 한 쪽 삶을 공유하며 같이 울고 웃었어요.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사회와 단절된 생활을 시작한 엄마사람은 쪼그라진 자아를 어떻게 펴야할지 난감합니다. 출산을 하면서 점점 후줄근한 옷에 눈썹없는 얼굴의 내 모습이 시작되고, 아이가 보여주는 재롱에 물개박수 치고 아이가 흘리는 밥풀을 줍는 세월을 보내다 보면 난 누구? 여긴 어디? 할 때가 옵니다. 주변사람들에게 해보고 싶었던 일을 시작할거라 알리니 어떤 이는 저를 집합명사에 집어넣고 이런 말을 던졌어요.


"아줌마들이 무슨 책~그냥 집에 모여 차마시고 수다나 떨겠지."

"....우씨"




책방을 열었고 삶은 계속 되었다

두 아이 엄마가 되었고 마흔이 되어 책방을 열었습니다. 이제 문화공동체 공동운영 8년차, 책방지기 4년차입니다. 좋아서 꾸준히 해 온 일이라면 책을 읽어온 일입니다. 읽는 행위를 너머 다양한 모임으로 책과 삶을 나누고 매월 큐레이션을 하고 있습니다. 제 2의 직장이 책방이 되었습니다.

적어도 제 삶은 목표와 계획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어요. 구체적 사건 그리고 선택과 행동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마흔은 어떤 마력이 발휘되는 나이인 것 같습니다. 지금 결단하지 않으면 평생 못할 것 같은 이상한 기운이 맴돌더니 고민하는 시간이 짧아지고 발이 움직이고 있더라는. 결국 세탁소 빈 가게를 덥석 계약부터 하게 되었고 동네책방 서재를탐하다를 열었습니다.

엄마와 나를 오가는 일상 그 하루를 가르는 시간은 오후 4시 30분입니다. 책방 문을 닫으면 제 1의 직장 육아 살림터로 돌아갑니다. 평일에만 문을 엽니다. 제가 지키고자 하는 원칙이 하나 있다면 일에 치여 나의 일상이 잠식 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육아와 살림 몫은 부부가 아무리 나눈다 해도 가부장제 사회에서 엄마에게 떨어지는 무게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떤 분은 그 시간에 문을 닫을 수 있다니 완전 북유럽 삶이라며 부러워합니다. 어떤 분은 저를 돈과 시간이 남아서 취미생활 하는 한가한 여자로 보기도 합니다. 주로 이런 말을 많이 듣습니다. "좋으시겠어요. 이런 공간을 갖는게 저도 로망인데....."  

정말 좋아하는 일을 꿈꾸다가 예쁘고 아담한 공간을 열어 책을 끼고 살고 있습니다. 생계에 보탬이 되리라는 확신 없이 시작한 일이기에 옆에서 지지해주는 남편이 고마웠습니다.

때로는 수면 밑 현장까지 들춰보아야지 그사람의 진짜 삶이야기가 보이지 않을까 합니다. 책방을 시작하며 하고 싶었던 기획들을 하나씩 펼치고,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해나갔습니다.

내가 사는 동네 이 작은 공간에 '책과 삶을 잇다'라는 씨앗을 내리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어른들의 인문 독서를 만들고, 스스로 서는 참교육에 관심이 많아 교육읽기모임을 시작하였어요. 동네 아이들과 함께 일주일에 한 번 씩 책을 읽었습니다. 마음 맞는 엄마들이 잘 할 수 있는 재능을 아이들과 이어서 펼쳤습니다. 책을 읽으며 동경하던 작가님을 책방에 초대하는 경험을 하며 모든 나날이 신기하고 즐거웠습니다.  

반면 모임이 점점 늘어났고, 읽어야 할 책들이 점점 쌓여 새벽을 밝혀야 했어요. 살림은 제자리를 이탈해 뒤죽박죽이고, 체력이 방전된 날은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리는 저를 보았습니다. 어느날은 온통 머리 속에 책방일정으로 꽉 차 있다가 그날 아이 도시락데이를 깜빡했습니다. 아이는 교실에서 혼자 굶었고 '도시락에 대한 감사편지'를 받게 된 저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엄마가 되기도 했습니다.

책방지기 1년차, 열정에 대한 과부하로 일상에 균열이 생기는 경험을 해야 했어요. 몸과 마음이 엇박자가 나자 이제는 몸의 말을 들어야 하는구나 깨달았어요. 다시 조화로운 삶을 위해서 지나침 보다 내려놓음을 배웠습니다. 혼자서 책방을 운영하였기 때문에 모든 것을 저의 의지로 자유롭게 끌어갈 수 있었습니다.

3년차,  내가 하고 있는 노동의 가치에 대한 생각을 곰곰히 해보았습니다. 잘 유지되고 있다라는 말은 월세를 잘 내고 있다라는 말 이상이 되기 힘들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이유로 다만 나의 수고가 열정노동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지속가능을 꿈꾸면서 스스로 물었습니다.

'나는 지금 왜 이 길을 가고 있는가’

'의미를 담고 있는 이 작은 소명은 내 안으로부터 오고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 됩니다.

느리고 게으른 저에게 책이라는 물성은 세상의 속도와 거리를 두게 하고 고유명사로 살게 합니다. 책이 인생을 바꿔주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삶은 여전히 잔잔하지 않을 것이며, 늘 분투를 겪을 것을 알기에 곁에 두고 싶은 친구가 제겐 책입니다. 엄마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대한 생각들을 책으로 풀고 일상그림으로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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