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 바깥으로 나온 라푼젤에 대해서.
“라푼젤, 머리카락 내려다오~”
숲 속 깊은 곳 까마득히 높은 탑 아래에서 이 소리가 들리면 라푼젤은 머리카락을 탑 아래로 내린다. 그러고선 긴 머리카락으로 거뜬히 엄마를 탑 위로 올려준다. 실은 라푼젤이 있어야 할 곳은 탑이 아니라 궁전이다. 공주로 태어난 라푼젤. 라푼젤의 황금빛 머리카락은 다친 상처를 낫게 하고, 젊음을 회복시키는 능력이 있었다. 이 능력을 알게 된 마녀 가텔이 어두운 밤 라푼젤을 데려갔고 무려 18년 동안 탑 안에서만 살게 된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유진을 만나 바깥세상을 구경한 후 진실을 마주한다. 가텔은 엄마가 아니라 자신을 유괴한 사람이라는 것. 가텔 자신의 욕심을 위해 탑 안에 라푼젤이 갇혀있었다는 것. 끝까지 라푼젤을 놓치지 않으려는 가텔의 발악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결말이 그렇듯 마지막엔 유진과 함께 탈출에 성공하고 가텔은 높은 탑에서 떨어져 죽음을 맞는다.
주말 오후 아이와 함께 본 라푼젤은 끝이 난지 오래지만 여운이 쉽게 가시질 않는다. 한 때는 딸이었고 지금은 엄마이다 보니 딸로서의 라푼젤과 한 때 엄마였던 가텔의 마음을 그려본다. 저렇게 예쁜 아이를 키우면서 설마 기른 정이 없었을까. 금발의 머리카락이 젊음을 선사해주는 능력이 있을지라도 아이를 노화방지제 정도로만 생각할 수는 없었을 텐데. 외로웠기에 젊음이 필요했을 가텔. 정확히 말하면 젊음이 가져다주는 생기와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있어야 관심을 받을 수 있다고 여겼기에 ‘젊음’에 집착했을 가텔.
영화 속에서 그려지진 않지만 가텔은 기나긴 외로운 밤을 라푼젤과 함께 보냈을 거다. 우는 아이를 재우려 자장가도 불렀을 거고, 그러다 품에 안긴 아이와 함께 잠에 들었을 것이고. 어린 라푼젤은 불편할 때마다 가텔을 찾았을 것이고, 그 누구도 자신을 이렇게 무조건적으로 의지하고 찾지 않았던 경험을 가진 가텔에게 라푼젤은 특별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로 알고 있던 가텔이 실은 자신을 유괴한 사실을 알게 되며 라푼젤이 느꼈을 배신감. 어린 시절 라푼젤의 세계였던 가텔. 본인의 세계가 깨지는 충격 속에서 가텔이 죽어버렸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가텔이 탑에서 떨어지던 날. 그래서 라푼젤에게 진정한 자유가 찾아온 날. 과연 라푼젤은 행복했을까.
가텔의 죽음을 뒤로 한 채 궁전으로 돌아온 라푼젤의 마음. 자신을 왜 유괴했는지, 그래도 자신을 키우면서 한 순간은 수단이 아니라 존재로 대하진 않았는지, 사랑하는 마음은 있었는지도 묻지 못한 채 가텔이 죽어버렸다. 종결되지 못한 관계 속에서 괴로웠을 라푼젤에게 내 모습을 본다.
나 역시 엄마와 6년 전 갑작스러운 이별을 했다. 엄마의 죽음을 마주했을 때 사실 나는 슬프다기보다 예상했던 결말을 맞는 기분이었다. 술을 좋아했던 엄마가 술 때문에 아팠고 술로 인해 세상을 등지는 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면서 엄마의 딸로 살아낸 시간들이 떠올랐다. 엄마와의 좋은 기억들보다는 엄마로 인해 힘들었던 기억들이 먼저 찾아왔다. 술에 취한 엄마를 데려가라고 이리저리 불려 다녔던 일, 엄마를 부축한 채 택시를 잡는데 택시가 서질 않아서 발만 동동 구르다 결국 울음이 터져버린 일. 엄마의 죽음보다는 이제 중독의 사슬이 내게서 끊어졌다는 사실이 먼저 다가왔다. 그러면서 나는 참 무정한 딸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엄마의 죽음을 들었을 때의 무덤덤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밤이 되면 엄마 생각이 났다. 가족들 품이 아닌 곳에서 죽어가던 엄마. ‘무서웠을까? 두려웠을까? 죽는 순간 나를 떠올리기나 했을까. 손녀딸 생각은 했을까. 끊임없이 나는 엄마가 되어 함께 하지 못한 죽음을 느끼고 있었다. 매일 밤 나는 엄마의 마지막을 떠올렸다.
엄마를 돌보는 일이 내 몫이었던 것처럼 엄마와의 이별도 나의 몫이 되어버렸다. 당사자가 없는 이별. 종결되지 못한 관계. 남편과 아이, 모두가 잠들어 숨소리만 가득한 밤이 되면 머리 끝까지 덮었던 이불을 조용히 내리고 거실로 나왔다. 답답한 가슴을 손으로도 쳐보고 한숨으로도 내쉬었지만 풀 수 없는 매듭처럼 가슴은 더 조여오기만 했다. 그렇게 새벽을 맞는 날이 많아질 때쯤 지인의 권유로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매주 토요일 오후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신촌에 있는 상담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엄마와의 이별을 엄마가 아닌 상담 선생님과 함께 해 나갔다. 상담을 한 어느 날은 엄마가 미치도록 미웠고 어느 날은 엄마가 보고 싶어서 1시간 내내 울기만 했다. 또 어느 날은 엄마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그리워서 지나간 추억들을 곱씹고 기억해내고 복원해냈다. 밉고 억울하다가도 따뜻하고 그리웠던 날들의 반복이었다.
엄마가 떠난 해에 시작한 상담은 둘째가 태어난 해까지 4년간 이어졌다. 상담을 하면서 후회와 자책들을 많이 털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후회되는 게 있다. 마지막인 줄 몰랐던 엄마와의 마지막 인사. 노랗고 까무잡잡한 그 손을 내 두 손으로 꼬옥 잡아줄걸. 아니 와락 안아줄걸, 아니 와락 안길걸. 엄마를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한 내 자신이 밉다가도 마지막을 몰랐던 게 내 잘못은 아니라는 변명으로 끝이 나는 나의 자책이다.
종종 이렇게 자책과 후회가 찾아오긴 하지만 이젠 파도가 아니라 잔잔한 물결처럼 나를 톡톡 거드리는 정도로 찾아온다. 엄마가 미웠던 날들, 그로 인해 내가 미웠던 날들. 나는 어딘가 시작부터 잘못된 존재 같아서 내 존재를 부정했던 날들. 나 자신을 자주 자책하고 몰아세웠던 날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내가 많이 밉지 않다. 내가 미울 땐 내가 밉구나 하면서 넘길 수 있는 덤덤함이 생겼고, 다른 누군가가 미울 땐 오히려 나 자신을 돌아보는 단단함이 아주 조금 생겼다. 상담으로 인해 과거를 마주하고, 꺼내놓고, 재해석하면서 내면의 힘을 기르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끊임없는 나와의 대화를 통해 나를 해체시키고 다시 쌓았기에 가능했을까? 싶지만, 나 혼자 힘으로 노력한 것 같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게 다가 아니었다.
내 안의 내가 너무 견고해서, 내 자신과 내가 처한 상황밖에는 보지 못했던 지난날을 넘어서 이제는 한 발짝 물러서 돌아본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보인다. 내 주위에 있던 사람들.
엄마 장례식을 치르고 어두운 저녁을 무서워하던 나를 위해 떡볶이를 사들고 와서 밤까지 같이 있어준 교회 친구들. 젖몸살이 났지만 아이 맡길 곳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던 나를 위해 솔이를 봐준 언니들. 엄마가 술에 취해 내 생일을 못 챙겨줄 때면 피자와 치킨을 파는 음식점에 데려가 생일파티를 해줬던 외숙모. 늘 내 졸업식에 카메라를 들고 왔던 외삼촌과 외숙모. 손녀딸의 아침을 깨우고 밥을 먹이던 할머니. 처음으로 외가댁에서 독립을 해서 나와, 엄마와 둘이 살 때 늘 김치를 해다 준 수진언니. 취업하려고 토익스피킹 시험을 보려는데 접수비가 비싸다고 하소연하니 통장으로 시험 접수비를 부친 정하언니. 엄마의 부고 소식을 듣자마자 우리집으로 달려와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나를 챙기고, 가득 쌓인 설거지를 하고 집 청소를 해준 간 세희언니. 엄마 때문에 너무 힘이 들어서 예배시간에 눈물을 흘리면 내게로 와서 나를 꼬옥 안아주던 기선언니. 늘 내게 너는 빛이 될 아이라고 말하던 고등부 최현숙 선생님.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면, 나 대신 엄마를 보러 가던 남편까지.
나의 힘으로 여태껏 온 줄 알았는데 다시금 되돌아보니 내 옆엔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아무렇지 않은 듯이 당연하게 내게 줬던 사랑과 관심. 마치 너는 이런 사랑을 당연하게 받아도 되는 존재라고 말하는 것처럼 나를 돌봐준 사람들. 실은 그 속에서 내가 걸어왔던 것이다. 모진 비바람을 나 혼자 맞아가며 버텨온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그들이 나의 우산이 되고, 때론 겉옷이 되고, 모자가 되어 거친 바람과 뜨거운 볕을 맞아준 것 같다.
궁전으로 돌아간 라푼젤은 과연 행복했을까. 18년 간의 공백을 가진 엄마와 아빠지만, 불안이 가득한 가텔의 사랑이 아닌 온화함과 평온함이 가득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을 거다. 그리고 그 옆에 는 라푼젤이 탑에서 나올 수 있게 도와준 인생의 동반자 유진이 있다. 탑 안에서나 밖에서나 늘 라푼젤과 함께 였던 카멜레온 친구도. 자기를 있는 그대로, 존재 자체로 바라봐 주는 몇 사람만으로도 인생엔 살아갈 이유가 생긴다.
물론 종결되지 못한 관계 속에서 당사자 없는 이별을 치른 라푼젤은 여전히 자신의 존재가 혼란스러울 것이다. 탑 안에서의 시간들을 되뇌며 가텔을 미치도록 미워하고 그리워하기도 할 것이다. 온전히 미워할 수도 없고, 사랑할 수도 없던 엄마를 가진 라푼젤이지만 라푼젤은 그런 탑 안에서 나와 바깥세상에 발을 내딛었다. 가텔과의 삶이 아닌 경험하지 못한 도전적인 삶을 선택한 것도 라푼젤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인생 가운데 선택을 저버리지 않고 기회로 만들어 진실을 마주하고, 그 가운데에서 본래 자리로 돌아온 라푼젤. 그리고 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옆에 있어준 유진과 친구들. 라푼젤은 탑 바깥에서도 웃을 수 있을 것이다. 라푼젤은, 행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