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Star is born’ 잭의 이야기
너무 깊어서 도저히 메워지지가 않는 그런 웅덩이가 있다. 채워지는 듯하다가도 웅덩이 주변을 지지하고 있던 벽이 금세 무너져 다시금 물이 새어나간다. 그 웅덩이는 세상을 창조했다는 위대한 신으로도, 가장 사랑하는 존재로도,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그렇게 깊은 공허감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 세상에선 도저히 해결될 수도, 채울 수 없는 마음의 구멍으로 인해 천국이 필요한 사람들.
영화 ‘Star is born’ 잭의 이야기다.
다짜고짜 카메라를 들이대고 락스타인 잭을 도촬을 해대는 사람들에게 잭은 ‘괜찮아요’라고 말한다. 반면 그 옆의 그녀, 앨리는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들에게 주먹을 휘두른다. ‘Star is born’ 주인공 남녀, 잭과 앨리는 다른 모습과 성격을 가지고 있다.
락 스타인 남자 주인공과 평범한 일반인 여자 주인공. 둘의 차이는 유명인과 일반인이라는 유명세의 차이 말고도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마음의 건강 상태. 싫은 걸 싫다고 말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는 자신과 타인의 시선에서 독립되어야 나올 수 있다. 여자는 자신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사람들에게 욕을 퍼부을 용기가 있지만 남자는 그렇지 못하다. 타인은커녕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일조차 그에겐 어려운 일이니까. 어린 시절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방임, 그로 인한 여러 번의 자살 시도, 술과 마약을 하는 자기 파괴적인 사람, 잭.
지켜주고 싶고 동시에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존재하지만 그는 여전히 술과 약을 한다. 아내인 앨리의 앨범이 큰 인기를 얻어 대중 시상식에서의 수상이 있던 날, 잭은 약을 한 채로 기자들 앞에서 바지에 실수를 하고 만다. 엘리와 그를 아끼는 장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큰 흉터가 남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아프게 했다는 죄책감,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중독. 그 사이에서 그는 늘 혼란스럽다. 그러니 다시 약을 찾게 된다. 하지만 그 후에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후회. 그렇게 고통의 쳇바퀴가 그의 인생과 함께 굴러간다. 그의 인생 한줄기 빛은 바로 앨리뿐.
내가 사랑한 누군가도 잭과 같았다. 영화를 보는 와중에 그녀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자신을 파괴하는 사람, 그래서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아프게 하는 사람.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걸 견디지 못할 만큼 선하지만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아프게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 그녀 또한 잭과 비슷하게 술과 담배를 벗 삼아 살았다. 적어도 그 둘은 자신의 잘못된 방향을 바꾸도록 강요하지 않고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그들에게 위안을 주기 때문일까. 그들이 마주하는 현실이 술과 담배보다 더 쓰고 독했기 때문일까.
대중적인 가수로 성공한 앨리의 콘서트 날, 함께 듀엣을 부르는 엔딩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앨리에게 잭은 나타나지 않는다. 혼자 남겨진 잭은 결국 막다른 길을 선택하고, 그를 그렇게 보낸 앨리는 아프고 고통스럽다. 잭은 앨리를 알아봐 준 사람이었다. 앨리가 가진 가능성을 봤으며 그 가능성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본인의 무대에 세우고 맘껏 노래할 수 있도록 본인이 가진 모든 것을 걸었던 사람.
앨리는 모든 게 자기 탓 같았을 거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앨리 자신이 더 잘했다면 잭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거란 생각. 나 역시 내가 더 잘했다면 그녀가 더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행복도 불행도 내 존재로 인한 결과 같았다.
한참 슬픔에 빠진 앨리를 잭의 형이 찾아와 말한다.
“네 잘못이 아냐. 절대로”
“누구 잘못인 줄 알아?”
“너도. 나도 아니고 온전히 잭의 잘못이야.”
사실 그 말은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내가 더 잘하면 그 사람이 나아질 줄 알았는데. 그래서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애써왔는데. 엄마와 행복해지겠다는 일념 하나로 버텨왔던 삶의 끝은 새드앤딩이었다. 그리고 새드앤딩의 책임이 나에게 있는 것만 같아 자주 울고 자주 아파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보고 나서도 한동안 엄마 생각이 멈추질 않는다. 그러다가 문득 잭과 그녀의 삶. 내 관점에서 불쌍하다고 안쓰럽다고만 여겼던 그들의 삶에도 분명 존재했던 낭만, 사랑, 모성, 꿈,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잭의 헌신과 자신을 내던지는 사랑을 받은 앨리. 그 사랑을 받은 앨리에게 집중하기 쉽지만 실은 그 사랑을 하며 가장 행복했던 사람은 잭이 아니었을까. 그 사랑은 앨리만을 위한 동시에 잭을 위한 것이었다. 남들처럼 사랑을 나누며 행복했고, 사랑하는 이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을 펼칠 수 있게 해 주었다. 중독에 빠져있다고, 다른 이들이 보기에 안쓰러운 인생일지라도 그 안에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조금씩 다가온다.
누군가의 고통을 마주할 때 종종 나는 꽤 큰 실수를 한다. 그 고통이 마치 그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 그의 삶 어딘가에 피어있을 자그마한 웃음, 기쁨, 우정은 무시한 채 그가 가진 고통으로 그 삶 전체를 평가하는 것.
엄마의 삶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그녀 삶을 이루는 다양한 색은 보지 못한 채 그저 실패한 인생, 가여운 인생이라 여가며 그 인생이 잿빛이라 말해왔다. 고통에 가려져 잘 보이지는 않아도 확실히 존재했던 그녀 삶의 다른 부분들, 때론 새싹같은 연두, 오묘한 보라, 따뜻한 다홍색을 보지 못한 채로 그 삶을 판단했다.
나의 그녀. 아빠를 만나 결혼을 하고 첫 아이인 나를 갖고, 나를 키우고 길러내면서 엄마가 되었던 사람. 난 엄마를 엄마 되게 만들어줬던 아이였고 엄마를 할머니로 만들어준 손녀를 안겨준 딸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어둠 속에서 나는 그녀에게 빛이었으리라. 늘 그녀가 내게 말한 것처럼 나는 그녀에게 삶의 이유였으리라. 그저 할 말 없는 엄마의 하소연인 줄 알았던 그 말에 오늘은 여러 번을 멈춰 선다.
“너는 내 삶의 이유이자 목적이야.”
19년에 쓴 글을 다시 수정해서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