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도 미워할 수 있어

엄마를 향한 양가감정에 대해

by 한시영

첫 아이 출산을 얼마 앞두고 엄마 병원비 처리를 하러 병원에 갔었다. 용도 별로 건물이 나눠져 있을 만큼 병원 부지는 꽤 컸다. 엄마가 머무는 병동이 있는 건물 말고 입구 가까이 있는 관리동은 군데군데 하얀 페인트가 벗겨져 있었고 지붕은 돔 모양의 낯선 형태였다. 건물 복도 중앙에 놓인 어항엔 주황색과 까만색 여러 가지 색깔의 애완용 물고기가 가득했다. 추운 겨울이라 두껍게 여민 외투 사이로 배가 볼록 나왔었다.


간 김에 엄마가 머물던 건물과 식당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병동 앞엔 작은 식당이 하나 있었다. 하얀 환자복을 입고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채 사람들과 식사 시간에 맞춰 밥을 먹으러 갈 엄마를 떠올렸다. 이동하는 사람들 주변으론 보호사들이 그들을 지켜볼 것이고 환자들은 그 눈빛을 받으며 식당으로 걸어갈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 이곳에 오기까지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엄마를 술과 떼어놓기 위해 온 병원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음주를 멈추지 못한 엄마를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사설 구급차를 불러 병원에 타고 갔다. 높은 속도에 본능적으로 온몸의 신경들이 곤두섰고 고르지 못한 도로를 지날 때면 덜컹 거리는 차와 함께 마음도 덜컥 내려앉았다. 차문에 달린 손잡이를 움켜쥐며 “아저씨 저 임산부인데 속도를 좀 낮춰주시겠어요.” 했던 기억이 난다.


어린아이였을 때나 어른이 되서나, 배에 아일 품고 있든 아일 낳아 기를 때든 늘 엄마에게 매여있었다. 어김없이 엄마가 있는 곳이면 유일한 피붙이인 내가 불려 갔다. 작년 메타포라 글쓰기 수업 중 엄마에 대한 글을 써서 낭독을 했는데 합평 시간에 학인들이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끝까지 포기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포기하지 않았다기보다는 포기하지 못한 것에 가까웠다. 혈육이라는 이유로 부양자로 떠밀렸으니까. 하지만 학인들은 그것 말고 뭔가 더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엄마와 어떤 시간들을 보낸 것인지 궁금해했다. 엄마를 모른 체할 수도 있는 상항에서 엄마를 데리러 가고 병원에 입원시키고 간식비를 넣어주고 면회를 갔던 이유에 대해서.


가족과 사회의 외면 속에서 엄마가 온전히 나의 책임이 된 것 말고도 잔혹한 시간들을 버티게 해 준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떠올리고 보니 무척 사소한 것들이다. 오래전 나와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생활공간을 공유했던 엄마와의 장소와 시간. 어린 나를 기쁘게 해 주던 엄마의 말들. ‘모녀’라는 관계는 연인이나 부부 그 이상으로 강력했다. 때론 엄마가 나이고 내가 엄마인 것처럼 엄마와 나를 혼동하기도 했다. 나는 엄마의 기쁨과 슬픔을 온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엄마를 흡수하던 딸이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날 때면 “자고 나면 예쁘고, 자고 나면 예쁘고.” 세상에서 가장 예쁜 존재로 나를 만져주었던 일. 2차 성징 때문에 가슴에 몽우리가 질 때 스포츠 브래지어를 사러 함께 시장에 갔던 일. 엄마와 목욕탕에 다녀온 날 첫 생리가 터져 팬티에 묻어있는 갈색피를 엄마에게 말했던 일. 나의 시간과 장소 곳곳엔 엄마라는 존재가 있어 덜 외롭고 덜 당황스러웠다.


엄마는 샤워할 때 몸을 어떻게 구석구석 씻어야 하는지. 좌욕은 어떻게 하는 건지, 팬티는 주기적으로 어떻게 삶아야 하는지. 생리대를 버릴 땐 돌돌 말아 새로 가져온 생리대의 비닐로 꽁꽁 묶어서 어떻게 버리는지와 같은 일들을 알려줬다. 그럴 때면 엄마는 마치 엄청난 영업 비밀을 알려주듯 비장했었다. 요즘 8살인 첫째에게 스스로 샤워하는 법을 알려줄 때 쓸데없이 비장해지는 나를 보면 그때의 엄마가 생각난다.


그래도 딸과 함께 살아보겠다고 회사에 취직하고 온 날, 기쁨에 취해 엄마가 사 온 통닭을 먹으며 잠시나마 밝은 미래를 그려보았던 날들. 비록 그것은 일주일짜리 꿈이었지만 늘 엄마가 나 때문에 애쓴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술을 먹고 길에 있었어도 엄마로 인해 받을 창피함보다는 엄마의 걱정이 앞섰으니까. 뛰어가는 순간에도 엄마 생각에 마음이 닳아 평소 두 세 걸음으로 걷던 거리를 한 걸음에 냅다 뛰었으니까.


엄마가 죽고 1년째 되던 해에 갔던 납골당에선 그냥 눈만 꿈뻑꿈뻑대다가 왔고, 두 번째 해엔 눈물이 찔끔 나더니 세 번째 해엔 할 말이 생겨 잠시 아이들이 남편과 나가 있는 틈을 타 사진 속 엄마에게 몇 마디를 속삭였더랬다. 네 번째 해엔 그 해에 태어난 둘째를 데리고 갔었다. 한창 옹아리를 하는 예쁜 둘째를 엄마가 보고 가지 못한 것이 그렇게 아쉬워 울었다. 어른 눈높이에 있는 엄마의 유골함 앞에 둘째를 번쩍 들어 올려 엄마에게 보여줬다. “엄마 얘가 둘째예요. 좀 보세요.“


8살 첫 째가 며칠 전 나에게 말했다. “엄마 나는 엄마를 사랑하지만 사랑하지만은 않아. 엄마를 미워할 때도 있고 그래. 백프로 사랑은 아닌 것 같아.”


사랑과 미움이 병렬로 놓인 문장에 당황스러웠지만 그게 당연한 거니까.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기도 하고 미세하게 다른 감정의 결들을 알아가는 아이가 기특했다.


“괜찮아. 어떤 사람을 백프로 사랑하기만 하긴 힘들더라고. 좋지만 싫을 수도 있고, 또 싫으면서 좋을 수도 있어. 엄마가 친절할 땐 좋다가도 혼낼 땐 싫지?”


내 말을 들은 아이의 표정이 밝아진다. 이제 내게 말해줄 때다. 엄마가 잔뜩 미우면서도 그리울 수 있어. 엄마를 미워하면서 사랑했던 거 그래서 힘들 수 있어. 네 아이에게 말해준 것처럼 너도 괜찮아. 그럴 수 있어.


그래서 엄마가 밉다는 건지 좋다는 건지 미우면서 좋다는 건지 참 애매한 글이 되어버렸다. 쓸수록 엄마를 나쁜 사람 만드는 것 같아 죄책감에 짓눌릴 때도 있지만 미우면 미운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쓰려고 한다. 쌓인 것들을 내놓다 보면 네임텍을 붙여 정리라도 가능할까. 조화로운 통합까진 아니어도, 그것이 증오와 사랑같이 어울릴 수 없는 극단의 것들이어도 서로 동거할만한 여유나 자리가 내 마음에 생기지 않겠나. 여유를 가지고 싶다. 마음의 자리와 여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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