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저씨와 여름휴가를 떠났다.

불쾌감과 호기심을 동반하는 기억에 대해

by 한시영

이번 추석은 동해로 여행을 왔다. 바다 앞에 아이 둘을 데리고 서 있는 남편의 등이 참 넓다. 바람이 세차게 부니 밀려오는 파도가 거세다. 바다 앞에 서있는 남편과 아이들 모두가 인생에서 닥칠 각자의 파도를 저 몸으로 맞서고 때론 휩쓸릴 생각을 하니 코 끝이 찡하다.


어릴 적 휴가라는 것을 떠나본 적이 거의 없다. 방학이 시작되면 친구들은 짧게는 1박 2일, 길게는 일주일 정도 가족들과 휴가를 떠났다. 아이들은 산과 바다 혹은 시골에 있는 할머니 집에 다녀왔다. 나의 경우 할머니 집이라고 해봐야 이미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집이었다. 엄마는 운전을 못했기 때문에 엄마와 내가 둘이 떠나는 여행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는 일을 한 것도 아니고 외갓집에서 보태주는 생활비로 생활했기에 시간은 있었어도 여행은 엄두를 내지 못하는 영역이었다.


위층에 사는 삼촌과 숙모, 언니들은 여름이면 휴가를 다녀온다며 며칠씩 집을 비우곤 했다. 짐을 양손에 가득 들고 대문을 나서는 언니들의 모습이 사라지고 문이 닫힐 때까지 우두커니 서있었다. 어디에 가는 걸까? 가면 무슨 일들을 할까? 수영복 입고 튜브를 타겠지? 오랫동안 입지 못해 이미 작아져버린 서랍 속 내 빨간 수영복이 떠올랐다.


열한 살의 여름. 엄마가 낚시 아저씨와 함께 여름휴가를 가자고 했다. 낚시 아저씨는 엄마가 꽤 오래 만나던 아저씨다. 낚시를 좋아해서 엄마와 나를 데리고 낚시터에 자주 갔었다. 우리 가족들은 그 아저씨를 ‘낚시 아저씨’ 혹은 ‘낚시’라고도 불렀다. 아저씨는 몇 번을 만났어도 여전히 낯설었다. 아저씨도 어색했지만 아저씨와 함께 있는 엄마의 모습이 더 낯설었다.


우리는 아저씨 친구가 주지스님으로 있는 마석에 위치한 절로 휴가를 떠나기로 했다. 아저씨 차를 타고 가던 중간중간 멀미를 몇 번 했던 것 같다. 백미러로 운전하는 아저씨의 얼굴을 몇 번 훔쳐보았고 엄마와 아저씨가 차 앞좌석에서 하는 이야길 들으며 뒷좌석에 무릎을 굽힌 채 잠이 들었고 깨보니 주차장이었다.


차에서 내려 몇 분 걸으니 숲이 나왔다. 나무로 연결된 다리 하나를 조심스레 건넜고 그 아래에는 비가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불어있는 물이 뭉텅이씩 흘렀다. 다리를 넘으니 집이 한 채 있었고 그곳이 절이라고 했다. 몇 백 년이 되었다는 큰 나무가 있던 마당은 꽤나 넓었다.


웃는 얼굴로 우리를 맞이하던 스님 아저씨와 키가 작고 말랐지만 동글동글하게 생긴 여자 스님이 있었다. 오랜 여행길에 멀미로 속이 채 가라앉기도 전이라 그저 고개만 까닥 숙였던 것 같다. 나는 엄마와 아저씨와 함께 그곳에 있는 방 하나를 쓰기로 했다. 엄마와 내가 둘이서 한 방을 쓸 줄 알았는데 아저씨와 한 방에서 지낼 생각에 도망가고 싶었다. 그렇다고 티를 내진 못했다. 본능적으로 불편함을 감춰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방은 생각보다 넓었다. 행거에는 누군가의 옷이 가득 걸려있었고 어른 대여섯 명이 누울 수 있는 크기였다. 방이 커서 다행이었다.


절에는 화실이 하나 있었다. 그림이 그려진 종이들이 수북이 쌓여있었고 곳곳에는 벼루와 붓, 문진들이 놓여있었다. 그곳은 스님들이 달마도를 그리거나 붓글씨를 쓰는 공간이라고 했다. 우락부락 생긴 달마의 모습이 험악해 보였다. 그림을 그린다던 젊은 남자 스님은 벼락 맞은 대추나무로 만든 달마가 새겨진 목걸이를 내게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벼락 맞은 대추나무는 나쁜 기운을 물리쳐주는 성질이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아침이 되면 절에 놀러 온 동네 아이들과 붓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스님을 따라 달마도를 그리고 싶었으나 그린 것은 늘 집에서 그려봤던 물고기, 구름, 나무 같은 익숙한 것들이었다. 아마 그것들을 그리며 집을 간절히 원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곳에서 특히 화실이 기억나는 이유는 먹을 갈다가 입고 있던 옷에 먹물이 튀겼기 때문이다. 며칠 전 선물을 받아 처음 입은 옷이었다. 가슴팍에 튀긴 먹물 자국이 선명했다. 곧장 물을 묻혀도 봤지만 먹물 자국은 살짝 옅어지기만 할 뿐 오히려 넓어졌다. 그날의 당황스러움은 지금껏 놀랄 만큼 생생하다.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늘을 향한 채로 누워있던 내 얼굴을 향해 벽에 난 창문에서 아침을 알리는 빛이 새어 들어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저 쪽 벽에 엄마와 아저씨가 서로 안은 채로 누워있었다.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 방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문을 열다가 혹시라도 엄마와 아저씨가 잠에서 깰까 봐 그러지 못했다. 내가 그 모습을 보았단 사실을 엄마와 아저씨가 알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그들이 불편해지고 그래서 내가 불편해지는 상황을 피하고 싶었다. 결국 나는 자리에 다시 누웠고 도저히 견디지 못할 즈음에 ‘큼큼’ 거리며 내가 깼다는 신호를 엄마에게 보냈다.


산속에서의 하루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었다. 절에 자주 오는 한 남자아이와 어울려 놀았다. 화실에 들어가서 수북이 쌓인 화선지를 들출 때마다 나오는 각기 다른 표정의 달마도를 보며 깔깔 웃었다. 그림 몇 장이 그 사이에서 빠져 바닥에 떨어질 때면 원래 있던 위치가 기억이 나지 않았고 아무 곳에나 쑤셔 넣었다. 우리는 얼굴만 한 붓을 들고 몸짓을 과장하며 그림 그리는 시늉을 하며 스님들을 따라 했다. 물건들을 맘대로 만지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금지한 일을 몰래 할 때 느끼는 쾌감이 들었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아이가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면 엄마는 그 아이가 이 동네에 사는 시골아이이며 그래서 그런지 순진하다고 말했다. 아직 해가 지기 전이지만 먹구름이 몰려와 마당은 어둑어둑해졌고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곳의 비는 도시의 비와는 달랐다. 높게 솟은 나무의 잎사귀가 비를 맞아 내는 빗소리는 두 배로 컸다. 후두둑 후두둑. 나무와 잎사귀와 땅을 때리며 시끄럽게 비가 내렸다.


그날 저녁 엄마와 아저씨는 방 안에서 소리를 높이며 싸웠다. 나는 방 밖에서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상황을 파악하고 그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바깥에 서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높아진 언성이 이어지다가 ‘턱’하는 소리가 났다. 놀란 마음에 방 안을 들여다보기도 쉽지 않았다. 겨우 용기를 내어 한 걸음 걸어 들어간 방 안에는 엄마가 주저앉아 가슴을 치며 숨을 가쁘게 내쉬고 있었다. 아저씨가 엄마를 때렸고 그것에 대한 반응으로 호흡곤란이 온 것이다.


지금 와서 보면 그런 통증이 올 만한 폭행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심리적 요인 때문인지 엄마는 금방이라도 죽을 듯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거친 숨을 엄마가 들이쉴 때마다 내 숨도 가빠왔다. 엄마가 혹시라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상황을 지켜보던 여자스님이 엄마와 내 짐을 챙겨 우릴 빠르게 차에 태웠고 그 길로 우리 집으로 출발했다. 비가 많이 와서 와이퍼가 끽끽 소리를 내며 빠르게 움직였다. 여름이었지만 세찬 빗줄기와 차 안의 에어컨 바람에 몸에는 한기가 돌았다. 무엇보다 뒷좌석에 등을 기댄 채로 가슴을 부여잡고 숨을 쉴 때마다 이상한 소리를 내는 엄마가 무서웠다. 울음을 가득 머금고 있는 내게 여자스님은 침착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지금 상황을 설명해주기도 했고 네가 있어 엄마가 다행이란 이야기를 했다.


그날의 기억은 이십 년이 지났음에도 문득문득 떠올라 불쾌감과 함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아침에 마주한 엄마와 아저씨의 모습은 거북함을 동반한다. 지우고 싶지만 불현듯 예고 없이 떠오르는 그 모습은 동시에 호기심을 가져온다. 엄마와 아저씨가 싸운 이유는 무엇이었고, 달마를 그린다던 스님들은 정말 스님들이 맞는지, 석가보다 달마를 믿던 그 절이 지금도 그 곳에 있을지 해를 거듭할 수록 더더욱 궁금하다.


차가 멈췄고 자동차 창문 너머로 우리 집이 보였다. 비를 맞고 뛰어가 은색의 커다란 대문 옆에 있는 벨을 눌렀다. 할머니는 비를 맞으며 뛰어나왔다. 웃는 얼굴로 떠난 여행에서 눈코입이 퉁퉁 부어 들어온 손녀딸을 할머니가 꼬옥 안아주었다. 걱정 가득한 할머니 눈빛이 오히려 나를 안심시켰다. 눈물이 뭉탱이로 눈가에 번질 때마다 할머니는 까끌까끌한 손바닥으로 내 뺨을 만지고 눈물을 닦았다.


집에 도착하고 할머니는 엄마를 안방에 눕히고선 따뜻한 물로 나를 목욕을 시켰다. 평소에 내가 잘 먹던 소고기 넣은 된장찌개를 저녁으로 내왔고 나를 보며 연신 “딱한 것, 불쌍한 것”이라고 말했다.


며칠 후 엄마에게 낚시 아저씨를 절대 만나지 말라고 했다. 엄마도 약속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뒤 엄마는 다시 낚시 아저씨를 만나러 나갔다.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 파도 앞에서 평안하고 고요한 시간을 갖는 중에 파도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휩쓸리던 때가 흘러나왔다. 저 멀리서만 왔다 갔다 하던 바다가 오후가 되자 모래놀이를 하던 아이들 앞까지 바닷물이 밀려왔다. 그 자리에 있던 아이들이 쌓아놓은 모래 몇 줌이 부서졌다. 부서지고 산산이 흩어져 모래는 다시 바다로 휩쓸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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