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지 못하는 사람

동시에 가장 사랑했던 사람

by 한시영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일 것 같은 엄마를 떠올리니 그때의 일들이 머릿속에서 그냥저냥 흘러간다. 아무래도 트라우마로 남았고 크리티컬 했던 기억들을 상담을 하면서 마주치고 그냥 이야기한 것뿐인데. 상담하며 이야기했던 게 아픈 기억들이 내 안의 분노나 증오의 씨앗이 되지 않도록 도움을 준 것 같다. 뜬금없이 상담 선생님께 카톡을 보냈다. 그냥 카톡 보내고 싶었다고, 고맙다고.

“엄마.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가장 사랑했거나 마음껏 사랑하지 못했던 사람일 확률이 크대. 나의 성장기에 엄마가 했던 잘못들은 사실 어느 정도 마음속에서 흘려보낼 수 있게 되었어. 용서하지 못했다기보다는 아쉬운 정도로 남았다고 말하고 싶은데. 나도 내 마음을 잘 몰라. 그런데 그거 알아? 엄마의 비참함은 나의 비참함이었고 엄마의 아픔이 내 아픔이었다는 것을. 엄마가 많이 불안한 사람이라 자신의 불안을 혼자 처리하지 못한 채 딸인 내게 흘려보냈겠지. 의도하지 않았지만 말야.

어릴 적 내 기억의 엄마는 매우 똑똑하고 손재주가 좋았던 사람이었어. 아직도 기억나. 내가 잠들고 나면 엄마는 쉬이 잠들지 못한 채 내 머리맡에서 일기를 쓰고 시를 쓰고, 읽었어. 노래도 불렀고. 진짜로 잠에 든 경우도 있었지만 쉬이 잠들지 못하는 엄마를 실눈을 뜨며 봤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기억난다. 우리 엄마가 왜 잠에 못 드는지 일찍 철이 든 나는 어쩌면 불안감으로 엄말 지켜봤는지도 모르겠어.

엄마가 남긴 노트만 20권이 넘을 정도로 엄마는 그렇게 모든 것을 다 글로 써내려갔어. 내가 글을 읽기 시작한 후, 단순한 글이 아니라 비유와 은유를 알아가고, 문장과 문장 사이, 단락과 단락 사이 여백에 담긴 의미를 상상할 나이가 되었을 때 엄마 일기를 본 적이 있거든? 너무 슬펐어. 아팠어. 날것으로 기록된 엄마의 감정과 상황이 내 가슴속에 꽂히는데 엄마가 아팠던 만큼 나도 막 가슴이 저미더라고. 우는 거 들키면 혼날까봐 몰래 숨어서 울었어, 작은 방에서. 그런 엄마였기에 팍팍하고 잔인한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힘이 없었겠지. 그래서 술을 선택했겠지. 술로 인해 전두엽이 망가지고 판단능력을 상실하면서 자식인 내게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했겠지. 나중에 알았어. 엄마가 날 많이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술과 스트레스로 전두엽이 망가져서 그랬다는 거. 나중에 엄마 주치의가 보여주는 뇌 사진 보고 알았어. 용서란, 사랑을 동반하는 걸까? 내 경우엔 그래. 사랑했기에 용서도 필요하고 용서했기에 사랑도 할 수 있나봐.

나는 이렇게 멀쩡한데 똑부러지게 살아가고 있는데, 아니 사실은 너무 힘든데도 어떻게든 살아내려 발버둥 치는데 할머니 말로는 사람 구실 못하는 엄마가 많이 미웠어. 용서해야 할 일인진 모르겠고 내 지붕이 되어주지 못하는 것이 미웠어. 근데 엄만 엄마 자신도 지키지 못했으니까, 날 지키지 못했던 거 이해한다고 말해줄게. 그래도 나 알아. 내가 엄마의 도움이 필요했던 어린 시절, 엄마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했던 거. 어린 내가 엄마의 그늘이 필요 없어지면서 엄마는 삶의 의미와 목적을 잃은냥 나락으로 떨어졌던 것 같아. 어쩌면 내가 엄마 삶의 목적이었고 방향이었나봐. 내 존재가 그런 존재였다니. 그걸 왜 이제서야 알았을까. 바보같다.

사고뭉치 술 먹는 엄마 뒷바라지하느라 나 되게 고생했잖아. 그래서 엄마가 사라지면 좋겠단 생각도 했거든. 임신한 몸으로 술 취해 쓰러진 엄마 데리러 가는 것도, 앰뷸런스 타는 것도 힘들었어. 그런 차들 되게 과속하잖아. 그 차 한번 타고나면 배도 뭉치고 사고날까봐 무섭더라고. 아픈 사람들이 모여있기에 발생할 수밖에 없는 병원에서의 환자들과의 문제, 주치의들과의 문제들도 너무 힘겨웠어. 병원에서 엄마 면회하고 나오면 나 늘 주저앉아 울었어. 집까지 걸어오면서 흘리는 닭똥 같은 눈물을 아스팔트가 받아냈어. 우리 엄마 상처 주는 사람들 다 없애고 싶다가도, 이런 상황을 만든 엄마가 싫었어. 양가감정이라고 하잖아. 공존할 수 없는 그런 극단의 감정들이 자리 잡는 거. 증오와 사랑 이런 거. 내 안에 이 감정이 충돌하니까 난 엄청 혼란스러운 사람이 돼버렸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니까.

근데 그리워. 가끔. 아주 가끔. 솔직히 좋았던 것보다 힘들었던 게 많아. 그래서 돌아가고 싶진 않아. 그치만 같이 목욕탕 갔던 거랑 더운 여름이면 잘 때 차가운 엄마 살갗을 부볐던 거. 나 자고 일어나면 “자고 나면 이쁘고~ 자고 나면 이쁘고~” 해줬던 거. 그래서 내가 솔이한테 그거 써먹어. 솔이 그 말해주면 되게 좋아해. 자기 이쁘다고 하는 거라 그런가봐.

엄마, 내가 나이 드니까 엄마를 100% 이해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미워할 수도 없겠더라. 100% 용서할 순 없어도 100% 증오할 수도 없겠더라고. 나이가 들며 이해되는 게 싫다가도, 이해되는 지점들을 마주칠 때면 놀라기도 하고, 마음이 무너지기도 해. 내가 우리 아이 좋아하고 아끼는 만큼, 엄마도 나 그렇게 좋아했지? 넘어진 아이 보고 내 가슴이 철렁한 것처럼 엄마도 그랬을 거고, 아이 목욕시키며 비누칠한 살갗을 만질 때 그 기분.. 엄마도 그랬을거야. 엄마가 술 먹고 나 힘들게 한 거랑 날 사랑하는 정도랑 매일 연결 지어 생각해왔었는데. 아닌 것 같아. 엄마가 날 사랑했던 것과, 술 먹었던 거. 그거 별개였다고 생각하려고. 사실 그게 좀 더 마음이 편해. 그리고 정말 그랬을 것 같아.

엄마도 어쩌지 못했을 인생살이의 고단함 몰라줬던 거 미안해. 엄청 외로웠을텐데 엄마 편 되어주지 못한 거 미안해. 나를 던져 엄말 사랑할 자신이 없었어. 사랑은 내리사랑이래잖아. 대신 내 자식 그렇게 사랑할게. 엄마가 그렇게 사랑했던 우리 아이, 내가 그렇게 사랑할게. 엄마가 좋아했던 우리 남편도. 무엇보다 엄마 딸인 내가 잘 살아갈게. 외롭게 살다 간 엄마를 추억하며 아파하는 것 어쩔 수 없겠지만, 엄마 가기 전에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했던 거 계속 후회하며 살아가겠지만, 그래도 잘 살아갈게. 나 낳아줘서 고마워. 환영받지 못했던 존재였을텐데 낳아주고 이 세상 빛 보게 해줘서, 지금 이렇게 두 아이 엄마 만들어준 거, 엄마 같아. 고마워. 나중에 만나자.”


keyword
이전 03화불행을 쓰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