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꿈꾸던 냄새

갖지 못한 것을 가진 후에

by 한시영


아이를 재우려고 침실로 들어와 개켜놓은 이불 끝자락을 잡고 힘껏 펼쳤다. 침대와 이불 사이의 틈에서 바람이 불어나온다. 그 바람에 힘이 실려 머리가 날리고, 냄새가 코로 실려온다. 방금 세탁한 듯한 기분 좋은 냄새. 그래 이거. 내가 갖지 못했던 냄새.


살림을 하다보니 도대체 얼마나 빨래를 자주 해야 집안에서 기분 좋은 냄새가 나는건지 궁금했다. 네 식구 옷은 일주일에 세네번, 이불과 시트는 적어도 일이주에 한번 정도 세탁을 하지만 집에 기분 좋은 향이 남아있기란 쉽지 않다. 볕이 좋은 날 베란다에 이불을 널면 그 잔향이 베란다와 거실까지 뻗쳐도 요즘처럼 물기 가득 머금은 날들이 지속되면 방금 세탁한 빨래에서도 큼큼한 물냄새가 난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이 집은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그런 냄새를 갖고 싶었다. 이 공간이 때 타지 않고 어지럽혀지지 않도록 보이지 않게 쓸고 닦는 누군가의 수고가 숨어있는 집. 아이의 체취만이 희끗하게 남은 가벼운 여름에 실려온 냄새에 생각이 길어졌다.


엄마는 살림에 취미가 없었다. 물론 빨래도 하고 음식도 했지만 그게 본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은 것 같다. 집보다는 집이 아닌 곳에 있던 날들이 많았으니까. 그렇게 집을 가꾸는 몫은 할머니에게 돌아갔다. 살림의 범주 안에 있는 빨래도 할머니의 몫이었다. 때 묻은 교복 깃과 손목, 목이 닿는 부분에 비누를 짓이겨 애벌 빨래를 한 뒤 통돌이 세탁기에 넣고 마지막에 유연제를 추가해서 탈수까지 한 후 빨랫감을 너는 일.


할머니는 유연제 양 조절에 자주 실패했다. 어느 때는 너무 많이 넣은 나머지 집 안에서 유연제 냄새가 진동을 했고 머리까지 아파왔다. 빨래가 다 마른 후에도 기분 좋은 냄새가 아닌 유연제 향이 너무 진해 꼬릿꼬릿한 냄새가 나는 경우도 허다했다. 살림을 하고 보니 그런 냄새에 더 민감해진다. 그런 옷을 입고 다녔던 나에겐 어떤 냄새가 났을까. 친구들의 부모님에게 나의 부모는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냄새를 풍긴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갖지 못했던 냄새를 지금 내가 가졌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다가도 어딘가 모르게 허전하다. 단순히 후각을 통해 느껴지는 감각 자체가 아니라 아이가 구김 없이 자랄 수 있는 환경과 아이의 작은 부분까지 돌봐주는 양육자의 손길을 바란 마음때문일 것이다.


며칠 전 잠이 안 온다던 첫째가 내 배에 얼굴을 파묻더니 금새 잠이 들어버렸다. 이젠 팔다리도 길어져 두 손을 뻗으면 어른 허리를 거의 감싸는 아이. 어느새 길어진 아이가 팔다리를 휘저으며 잠과 사투를 벌이다가 엄마 배에 얼굴을 파묻곤 잠에 빠졌다. 내 품에 안겨 한없이 편안한 표정을 하고 있는 아이. 땀에 젖은 얇은 머리카락이 볼이며 귀며 여기저기 붙어있어 정신이 사나웠지만, 이 아이가 뱉는 숨만큼은 참 따뜻하고 편안했다.


아이에게 품을 내어주는 엄마가 된 내가 한없이 뿌듯하다가도 어딘가 모르게 아쉽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채우지 못하는 대신 누군가에게 채워줌으로써 빈자리의 헛헛함을 달랜다. 마음이 잘 달래지지는 않아도 자는 아이 곁에서 눈꺼풀 아래로 빽빽한 아이의 속눈썹과 통통한 볼을 보니 좀 나아진다. 그래. 없으면 없는 대로. 굳이 있어보이려고 하지 말고 채우려 하지 말고. 없으면 없는 대로 내 마음 보듬어주면서.

keyword
이전 05화엄마 없는 결혼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