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장례식

돈으로 환산되는 죽음

by 한시영

사무실에 들어가 앉으니 직원이 따뜻한 둥글레차를 종이컵에 내왔다. 옆에 앉은 남편과 내 앞으로 클리어 파일을 한장 한장 넘기며 설명을 한다. “수의는 삼베나 인견으로 된 게 있어요. 인견은 500만원이고, 일반 기계로 짠 삼베는 50만원이에요. 가격 보시고 결정하세요.”

죽은 사람 옷을 고르는 건 처음이었다. 평소 옷을 고르듯이 가성비를 따지며 저렴한 걸 고를 수도 있었지만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500만원 짜리 수의가 있다는 사실도 놀라운데 그 안에서 가격 차이가 열 배 이상 난다는 것은 더 놀라웠다. 고인의 옷을 고르면서도 다른 사람의 눈이 신경쓰였다. 내가 고르는 수의가 나의 경제적 수준을 드러내고 그 가격은 살아생전 고인이 살았던 삶의 가치를 대변할 것 같았다. 한참을 고민하는 내 모습에 직원은 상황 파악이라도 된 듯 가장 아랫줄에 위치한 50만원짜리 삼베를 권해줬다. 드라마에서 누가 죽으면 영정 사진 앞에 주저앉아 슬퍼하는 장면만 나오던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엄마를 잃은 내가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슬픔이나 상실감이 아니었다. 빈소는 특실로 할 지 일반실로 할 지, 향을 피울지 국화로 할 지, 관은 뭘로 할 지와 같은 당장 치룰 장례에 대한 크고 작은 선택들이었다.

스물 일곱, 상주로서 처음 치르는 장례였다. 검은 한복을 입고 흰 리본이 달린 실삔을 꽂은 나는 누가 봐도 가족을 잃은 사람이었지만 정작 나는 엄마의 죽음과 유족이라는 지위가 와 닿지 않았다. 누군가를 상실하고 잃어버린 지위가 익숙해질 수 있을까. 사진조차 마련하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떠난 엄마의 영정 사진은 젊었을 때 찍은 주민등록증 사진으로 대신했다. 언제 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엄마의 생기 어린 미소가 담긴 사진을 옆에 두고 조문객을 맞았다. 내 옆엔 검은 양복에 검은 넥타이를 맨 남편이 있었고 내 등 뒤엔 8개월이 된 딸 아이가 업혀 있었다. 막 낯을 가리기 시작한 아이는 눈만 마주쳤다 하면 울음을 터뜨리는 통에 엄마의 분향실은 손녀의 울음소리로 가득찼다.

“딸 키우면서 엄마 생각이 얼마나 많이 날까.” “너희 엄마는 뭐가 그렇게 급해서 빨리 갔다니.” 오십대에 맞이한 요즘으로 치면 이른 죽음을 안타까워는 친척들. “국희야.” 이름 한 번 부르고선 자기들이 먼저 목이 메어 우는 친구들. 조심스럽게 인사를 하고 무거운 마음을 전하던 회사 동료들. 검은 옷을 입고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쭈뼛쭈뼛 서서 허릴 굽혀 국화 한송이씩을 집어들었다. 그리고선 짧은 묵념이나 기도를 한 후 사진 앞에 내려놓았다. 애도를 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여전히 엄마의 죽음은 낯설기만 했다. 그럴 때면 엄마의 사진을 한번 쳐다보았고 사진 속 엄마는 웃고 있었다.

장례 마지막 날은 입관식이 진행됐다. 장례지도사가 시체를 깨끗이 닦아 수의를 입히는 염습 후에 관에 들어가기 전 고인과 가족들이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는 순서다. 입관식이 진행되는 곳은 검은 한복을 걸친 몸이 으슬으슬 떨릴 만큼 온도가 낮았다. 아마도 시체의 부패를 막기 위함인듯 했다. 방 안 가득한 락스 냄새 사이론 비릿한 냄새가 비집고 나왔다. 죽은 사람의 냄새였다. 발부터 머리까지 얼굴만 빼놓고 온통 수의로 둘러싸인 엄마의 모습. ‘엄마가 맞다고? 정말 엄마가 맞아?’ 살아있는 엄마만 봤던 나는 숨을 거둔지 삼일이나 지난 엄마의 모습이 낯설어 도망가고만 싶었다. 나라면 이런 모습은 아무리 가족이라도 보여주고 싶지 않을 것만 같았다. 마지막 말을 전하라는 장례지도사의 말에 “고마웠어, 고생했고, 우리 천국에서 만나자”라는 피상적인 인사만을 시신 앞에서 전할 수 있었다.

벽제천이라는 가느다란 강 줄기가 앞에 흐르는 추모공원에 엄마를 모셨다. 그곳에서도 유골함은 어떤 재질로 할 지, 유골을 납골당 몇 단에 둘 지에 대한 결정이 남아있었다. 남편과 함께 고른 유골함을 어른 눈높이 되는 6단 높이에 안치한 후 5년치 납골당 관리비를 계산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장례 절차는 모두 끝이 났다. 집에 도착해서야 네모난 상자에 담긴 유품들을 꺼내볼 수 있었다. 상자 안 물건들은 아까 영안실에서 봤던 엄마의 마지막 모습과는 다르게 온기가 느껴졌다. 양 쪽 모서리가 닳아 벗겨진 지갑, 평소에 고인이 두번째 손가락에 끼고 다니던 반지, 죽는 순간까지 목에 두르고 있었을 스카프. 반지를 꺼내 가운데 손가락에 껴보니 꼬옥 맞았다. 손가락을 두른 반지는 차가웠고 그제서야 엄마가 내 옆에 없다는 게 느껴졌다.

5년 전 치룬 엄마의 장례. 비용으로 이어지는 크고 작은 결정들 앞에서 고인의 죽음은 자주 돈으로 환산되어 다가왔다. 입관식에서 갑작스레 마주한 차가운 엄마의 모습이 떠오를 때면 잠이 오지 않을 만큼 등골이 서늘했다. 정해진 장례 절차는 당연히 따르는 거라 여겼는데 돌이켜 보니 좀 달랐으면 어땠을까 싶다. 죽은 이의 옷과 관을 선택하고 유골함을 고르는 일이 고인과의 추억을 회상하는 시간으로 채워졌다면 어땠을까. 엄마가 한창 예뻤을 시절 사진을 가족들과 함께 본다거나 유품을 정리하고 고인에게 편지를 쓰며 보내는 이의 마음을 정리한다거나.

곧 초등학교에 가는 큰 아이에게 때를 봐서 미리 말해줄 생각이다. 엄마가 죽으면 거친 삼베로 만든 수의 말고 평소에 아끼던 옷을 입혀달라고. 죽은 후 퉁퉁 부은 얼굴을 사람들이 보는 건 싫으니 죽더라도 프라이버시는 지켜달라고. 사람이 많은 곳 말고 조용한 곳에서 장례를 치뤄달라고. 고인이나 조문객이 아닌 남겨진 가족이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공간이 좋겠다고. 그런 장례식, 그런 이별이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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