슥슥 북북. 거친 손끝이 등의 살갗을 스칠 때면 꼭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매일 아침 손녀를 깨워 아침을 먹이고 학교에 보내던 사람. 잠에서 쉬이 깨어나지 못하는 어린 손녀의 등을 긁어주던 사람. “애비는 없고, 애미는 저 모양이고 너를 두고 내가 어찌 죽어.”라고 자주 말하던 사람.
갈라지고 벌어진 손끝의 틈들이 등에 닿을 때의 그 깔깔함이 좋았다. 여름날 아침, 서늘하고 축축한 냄새에 해가 떴다는 걸 알아챘지만 할머니의 손길이 좋아 반쯤 감긴 눈을 한 채로 한참을 누워있었다. 등을 왼쪽으로 돌렸다가 다시 오른쪽으로도 돌렸다가. 작은 몸을 이리저리 굴리며 골고루 긁어달란 몸짓을 보내면 할머니는 옷 안으로 넣은 손의 방향을 바꿔 손바닥만 한 손녀의 작고 여린 등을 한참이나 만져주었다.
김혜진 작가의 장편 ‘딸에 대하여’를 읽고 작가의 표현처럼 두더지게임마냥 튀어 오르던 생각들. 자식, 부모, 늙음에 대한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더니 할머니에게까지 번졌다.
엄마의 죽음을 꽤 오랫동안 할머니에게 알리지 못했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의 충격을 생각해서’라고 가족들과 이야기했지만 실은 자식의 죽음을 그 부모에게 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없었다. 당장 엄마의 죽음 조차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던 내가 할머니에게 그 딸의 죽음을 이해시키는 일 또한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마침 할머니는 늙었고, 딸의 죽음이 그녀의 건강에 미칠 영향이 클 수도 있다는 사실에 힘입어 모두들 침묵을 지켰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자 아무래도 이상한 게 느껴졌는지 할머니는 엄마를 많이 찾았다. 살아있다면서 왜 엄마를 보러 오지 못하느냐고. 내가 딸이 있는 사람인데 그 딸 어디 있냐고. 설마 죽은 거 아니냐고. 할머니는 매일 엄마를 찾았다. 잘 지내고 있다, 어디 가 있다, 병원에 입원해있다. 매번 시원치 못한 대답과 함께 할머니와 실랑이하는 것에 지쳐갈 때 즈음 할머니에게 엄마의 죽음을 알렸다.
세 살 난 딸아이를 데리고 남편과 함께 할머니가 계시는 큰집으로 향했다. 할머니, 몇 개월 전에 엄마가 몸이 안 좋아져 하늘나라에 갔어요. 엄마 있는 곳으로 가게 옷 입고 나오세요. 차 안에서부터 연습했던 말들을 딱딱하게 입으로 뱉었다. 할머니의 눈을 피하며 내가 했던 말들을 마치 예상이라도 했듯이 차분히 옷을 골라 입던 할머니. 드디어 올 게 왔구나 하는 표정이었다.
납골당이 가까워져 오면서 딸의 죽음이 실감이 되었는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던 할머니. “네가 어떻게 나보다 먼저 가니, 네가 어찌 그럴 수 있니.” 하며 연신 혼잣말을 뱉으셨다.
말 못 했을 손녀의 마음이 안타까우면서도 이젠 딸을 볼 수 없다는 현실에 모두가 원망이 되었겠지. 손녀사위가 있는 앞에서 마음껏 울 수도, 욕을 할 수도 없었겠지. 할머니는 우리가 나쁘다고,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 말하면서도 가슴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그 무엇을 삼키느라 힘들어 보였다.
술 먹고 앞가림 못하는 자식이어도 할머니에겐 그래도 자식이 살아있는 게 더 나았을까. 난 없어지길 바랬는데. 무결한 내 삶에 유일한 오점이었던 엄마가 차라리 없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하던 딸이었는데. 이게 자식과 부모의 차이일까.
자식을 떠나보낼 수 없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떠오른다. 할머니는 가슴에 묻은 엄말 하루에 몇 번이나 꺼내볼까. 마음껏 울 수나 있을까. 차라리 치매가 와서 딸의 죽음을 망각할 수 있다면 그것이 그녀에겐 더 나은 상황일까. 요즘 할머니와 영상통화를 하면 그 너머로 정정하신 모습에 마음이 아플 때가 있다. 삶 속 모진 시간들, 자식의 죽음을 마음 끝자락까지 쌓아 올리고 되뇌며 살아가는 할머니의 시간은 어떤 시간일까.
어린 손녀에 대한 안쓰러움을 담아 손끝으로 표현하던 사람. 매일 아침 책이 가득 든 내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메고 나를 학교에 데려다주던 사람. 어린 손녀가 입맛이 없어 밥을 먹지 않을 때면 시장으로 달려가 김밥을 사 왔던 사람.
그녀의 손끝으로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고 사랑을 담던 어린 손녀의 마음으로, 그녀의 사랑과 헌신에 감사하며 그리고 가늠치 못할 그 마음에 평안을 빌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