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랑 같이 있어줘

공허와 결핍을 인정하며 사는 것

by 한시영

은색의 큰 대문이 열리는 소리, 열린 문 사이로 빠르게 나가는 엄마의 뒷모습. 나는 엄마랑 놀고 싶은데 엄마랑 같이 있는 게 좋은데 엄마는 나가는 게 좋았다. 그런 엄마를 둔 나는 할머니 손에 길러졌다. 그날도 엄마는 나갈 준비를 했다. 긴 파마머리를 드라이로 말리고 큰 롤빗으로 머리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큰 굴곡들을 만들어냈다. 엄마는 참 멋지다고, 할 줄 아는 게 많다고 생각했다. 그날도 주황색 불빛으로 가득한 화장실에서 드라이를 하는 엄마를 구경 중이었다. 엄마를 더 잘 보려고 작은 발의 중간 부위만 올려놓을 수 있는 문지방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서있었다. 화장실 문고리를 잡고 체중을 실은 채 문을 열었다 닫았다를 산만하게 반복했지만 바람은 하나였다. 엄마랑 같이 있는 거.


‘엄마, 엄마가 나가는 게 너무 싫어. 할머니랑 할아버지 말고 엄마랑 있는 게 좋아. 나랑 있어줘.’ 나가지 말라고 떼를 쓸 법도 한데 내 기억에 나는 그런 적이 거의 없다. 서럽고 서글픈 어린 마음을 내놓으면 엄마가 싫어했다. 변신하는 로봇 필통을 사달라고 길거리에 주저앉아 울었던 날. 엄마는 네가 나한테 그럴 줄 몰랐다고, 네가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흐느꼈다. 나의 진짜 마음은 엄마를 힘들게 한다는 공식이 내 안에 세워졌다. 힘들어서 흔들리는 엄마는 어린 내게 감당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을 감췄다. 어린아이가 무슨 생각이나 있었을까, 자기도 살겠다고 택한 방식이 관계 가운데에서 마음을 숨기는 일이었다.

집 현관을 나서고 마당을 지나는 구두 소리, 은색 대문이 캉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 내게 가장 무력감과 좌절감을 안겨주는 그 소리가 엄마의 뒷모습과 함께 사라지면 엄마를 며칠 동안은 보지 못했다. 그렇게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지루한 시간들이 시작되었다. 위층에는 삼촌과 외숙모, 그리고 사촌언니들이 있었지만 엄마의 자리를 대신할 존재는 없었다. 친구를 만난다고 사라졌던 엄마는 짧게는 3-4일, 길게는 1-2주 뒤에 느닷없이 나타났다. 어떠한 사과도 없이 본인의 일상, 엄마로서의 자리를 재빨리 찾아나갔다. 엄마에 굶주렸던 나는 엄마의 온기를 느끼고 싶어서 엄마의 속도에 맞춰 재빨리 걸었다. 엄마가 언제, 얼마나, 왜 나를 두고 나갔는지가 너무 궁금했지만 그것보단 엄마가 지금 내 곁에 있다는 게 중요했다. 결국 그렇게 빨리 걸었던 마음의 속도가 내게 여태 체기로 남아있다.

엄마 없이 잠드는 건 지루한 일이었다. 어린아이를 돌보기에 투박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엄마처럼 노래를 부르거나 토닥이며 날 재워주지 못했다. 이부자리를 피고 할머니 옆에 날 눕혀 불을 끄는 일이 다였다. 불이 꺼진 창문에 주황색 가로등 불빛에 비친 나무 그림자가 흔들리는 걸 보면서 혼자 무서워하다가 울음이 터져버렸다. 무서우니까 엄마 생각이 났을 거고, 엄마가 왜 무서운 밤에 내 옆에 없는지 알 수가 없어서 억울한 마음. 아까 엄마가 화장실에서 준비할 때 나가지 말라고 떼라도 써볼걸 후회하는 마음. 내가 떼를 쓰지 않아서 엄마가 나갔다는 아이의 단순한 마음. 모든 일이 나 때문이라고 믿는 어린아이의 마음.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고 베갯잇만 적시다가 울음이 커져서 눈에서 뿐만 아니라 입에서도 울음이 비집고 나왔다. 꺽꺽. 한번 터진 울음은 작아질 줄을 몰랐다. 울음소리에 잠에서 깬 할머니가 안아줄 때면 할머니의 시큼한 냄새 때문에 낯이 설어 더 크게 울었다.

어른이 되면 그들의 입장이 되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나의 경우는 반대였다. 엄마가 되고 나서도 그랬다. 엄마를 더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 없는 시간을 견디고 엄마의 수치를 대신 받아냈던 어린 나에 대한 안타까움. 그 마음은 내 아이들에 대한 마음과 뒤섞여 아이를 향한 과잉보호, 과도한 죄책감 등으로 나타났다. 아이들을 필요 이상으로 불쌍하게 여기고 엄마의 위치에 서있는 나를 자주 벼랑 끝으로 내몬다. 사실은 내 아이들이 아니라 어린 내가 안타까운 건데 자주 헷갈린다. 불쌍한 건 엄마가 있는 나의 아이들이 아니라 나인데. 이대로 남겨두기엔 너무 큰 공허와 결핍. 이미 지났기에 채울 수 없는 엄마의 자리와 내 유년의 시간. 나는 그 결핍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남들은 다 가진 그 시간들을 난 비어진 채로 살아야한다. 긍정적인 생각이 발동하는 날이면 그 결핍을 있는 그대로 힘껏 인정하고 가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실은 굴복하는 거나 다름없는데. 내게 있는 그 결핍과 거절의 시간들에 굴복을 했다가, 의미 없는 저항도 해보았다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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