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예지몽을 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by 한시영


1층, 2층, 뒷채. 우리 가족은 마당을 앞에 두고 1층은 할머니와 할아버지. 2층은 외숙모와 외삼촌, 언니들, 뒷채는 엄마와 나까지 일곱이서 살았다. 물론 적은 뒷채에 두고 있었지만 엄마의 잦은 부재 탓에 1층이 주된 나의 생활공간이었다.


그날도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이에 요를 깔고 누운 밤이었다. 열려있던 1층 현관문으로 머리엔 검은 삿갓을 쓰고 짙은 검은색 한복을 입은 사내 둘이 들이닥쳤다. 밀가루를 뒤집어쓴 듯 허옇다 못해 퍼런 얼굴.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눈가. 누군가를 찾듯이 고개를 양옆으로 돌리며 그들이 안방으로 들어오려던 순간, 직감했다. 저 둘은 나쁜 사람이구나. 초등학교 3학년의 작은 몸으로 에네르키파, 불꽃파. 만화영화에서 보던 모든 파워란 파워는 모조리 끌어모아 손바닥을 펴고 손목을 마주 대며 발사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치열한 접전 끝에 결국 나는 패했고 두 남자는 검고 짙은 두루마기를 흩날리며 할아버지가 계신 안방으로 들어갔다.


꿈을 꾸고 며칠 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내가 꾼 꿈이 단순한 무협지가 아니란 생각을 어렸어도 했던 것 같다. 한동안 가슴속에만 간직하던 그 꿈을 장례가 끝나고 어른들에게 전했다.


“근데요, 제가요, 며칠 전에 꿈을 꿨는데 까만 사람들이 안방에 들어왔어요. 제가 못 들어오게 했는데도 기어코 들어갔어요. 그러고 나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할아버지가 살아서도 너를 예뻐하더니 네가 그 꿈을 꿨구나. 아마 임종도 네가 있었지. 어린것, 아유 이 어린것이.”


할아버지는 게보린을 자주 먹었다. 하얀 바탕에 보라색 글자가 쓰인 약상자는 안방 서랍 위 늘 같은 자리에 놓여있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큰 병원에 다녀왔다. 엄마는 그동안 할아버지가 앓던 두통이 그냥 두통이 아니라 머릿속에 종양 때문이라고 했다. 늘 내 오른쪽에 누워 나보다 먼저 눈을 감고 코를 골던 할아버지가 급하게 입원을 했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늘 할아버지가 누워있던 자리로 굴러가 차가운 방바닥 위에 볼을 댄 채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아이가 몸으로 느낀 상실이었다. 수술을 마친 할아버지는 중환자실을 거쳐 집으로 돌아왔다. 아마 얼마 남지 않았다는 병원의 판단에 집으로 보내진 것 같았다.


병원에서 돌아온 할아버지는 예전 같지 않았다. 전처럼 마당에 나와 호스를 한 손으로 잡고 화초에 물을 주지 않았고, 내 손을 잡고 한아름 마트에 가서 빠다 코코넛을 사주지 못했다. 거실에 있는 어항 속 물고기들에게 밥 주는 일도 잊어버린 듯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티브이에선 전국 노래자랑의 투박한 반주 소리가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그때 할아버지가 갑자기 기침을 했고 그 입에서 밥풀이 몇 알 나왔다. 기침은 쉬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안방 장농 옆에 있던 인터폰을 눌러 2층에 있는 어른들을 불렀다. “할아버지가 밥풀을 뱉었어요.” 그러자 어른들이 내려왔고 안방에 있던 나는 어른들에게 자리를 빼앗겨 부엌으로 밀려났다. 어른들로 둘러싸인 할아버지가 궁금해 까치발을 들었지만 할아버지를 볼 수는 없었다.


다급한 사이랜 소리와 함께 하얀 구급차가 오고 어른들이 썰물처럼 밀려 나갔다. 작은언니와 나만 집에 남겨졌다. 나와는 네 살 차이 나는 중학교 1학년 사촌언니. 늘 장난이 심해 언제나 나를 울리고야 마는 작은언니. 평소 같았으면 벌써 몇 번을 놀려서 울음을 터뜨려야 했지만 언니는 잠자코 내가 하는 말에 대답만 했다. 창문 밖 해는 점점 기울고 집안이 어둑어둑 해질 즈음 전화가 왔다. 수화기를 들고 가만히 듣고만 있던 언니가 말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대.”


그 말을 듣자마자 ‘으아앙’ 하며 긴 울음이 터진 걸로 기억한다. 내 울음을 들은 언니는 울지 말라고 다그쳤다. “우는 거 아니야. 이런 일로 울어야겠어? 울지 말고 기다리고 있으랬잖아. 응?” 그러면서 언니는 한참 동안을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내 울음을 막았다. 울지 못하게 하는 언니가 무서웠고 미웠다. 혼나기 싫어서 억지로 울음을 멈춰도 보았지만 그게 잘 되지 않아 서러워 더 울어버렸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동생의 울음을 막은 언니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짐작이 간다. 내가 울면 언니도 울 것 같아서였을까. 할아버지의 죽음을 동생에게 전하며 슬피 우는 동생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언니.


언니와 나는 성모병원에 도착했다. 까만 한복 같은 걸 입고 머리엔 흰색 실삔을 꽂았다. 아직 몸이 작아 그런지 치마가 길어 화장실을 한번 다녀오면 치마 끝이 축축해져있었다. 장례를 치르는 5일 동안 장례식장은 붐비고 또 붐볐다. 밤이 늦도록 어른들이 가득했는데 할아버지가 사업을 하셔서 그렇다고 했다. 새벽이 되어도 수그러들지 않는 어른 남자들의 소리, 코끝을 에워싸는 술 냄새와 비릿한 반찬 냄새 속에서 누군가의 무릎을 벤 채 잠이 들었다. 엄마, 혹은 외숙모, 언니들, 할머니. 그들의 무릎에 번갈아 머리를 누이고 잠이 들었다.


마지막 날 나는 작은언니와 또 둘이서만 남겨졌다. 어른들은 할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를 한다고 가버렸다. 당시 고1 이었던 큰언니는 어른 축에 들었던 건지 늘 어른들이 가는 곳에 함께 했다. 나중에 이야길 들어보니 엄마는 다신 술 먹지 않을 거라며, 맹세한다는 장문의 편지를 수십 장 써서 누운 할아버지의 가슴팍에 놓았다고 했다. 엄마는 할아버지 가슴팍에 놓인 편지가 무색할 만큼 장례가 끝나고 다시 술을 마셨다.


겨울방학을 마치고 봄방학을 위해 다시 돌아온 학교. 곧 4학년을 앞두고 있었다. 짧은 종례 후에 금색 선이 그려진 쥐색의 복도를 빗자루를 쥔 채 휘휘 젓고 있는데 선생님이 와서 물었다. 무슨 일이 있냐고. 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 이후의 대화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3학년 짜리 아이에게 할아버지의 죽음이 어떻게 다가왔고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세상이 전과 같진 않았다. 복도를 쓸면서 황량했고 어딘가 비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비현실적이었던 싸늘한 복도가 생각난다.


가끔은 내가 정말 그 꿈을 꿨는지 그 두 남자가 까만 두루마기를 입었는지, 내가 쏜 파워가 에네르기파가 맞는지 헷갈린다. 그래도 꾸역꾸역 그때의 일을 꺼내 쓰는 것을 보면 허무맹랑한 이야기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작은 몸에 켜켜이 쌓여있던 것을 꺼내고 보니 이제야 알 것 같다. 어리다고 모르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개념화된 언어가 아닌 몸으로 그 상황을 흡수하고 느끼는 어린 아이의 세계에 대해. 할아버지가 눕던 자리의 장판에 한쪽 볼을 대고 엎드려 전해지는 차가움에 상실을 배우는 열살 아이의 세계. 그렇게 불화와 상실과 죽음. 또는 따뜻함과 겸손과 존중이 어린 아이의 몸에 쌓여 한 사람을 만든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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