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에 엄마가 있다.

굳게 닫힌 철문 안에 있는 엄마를 만나러

by 한시영


88번 버스를 타고 부천 소사경찰서에서 내린다. 횡단보도를 한번 건넌 후 건물에 들어가 1층 원무과에 들러 면회를 예약했다고 말한다. 원무과 직원이 주는 확인증을 받아 엘레베이터를 타고 6층에 오른다. 그 곳에 엄마가 있다.


굳게 닫힌 철문 바깥에서 벨을 누르면 남자 보호사 한명이 문을 열어준다, “이영숙씨 보호자요.”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 들어가는 병실. 엄마의 보호자란 말이 입에 붙지 않아 어색하면서도 어색함이 티나는 것이 싫어 아무렇지 않은 듯 무심하게 내뱉는다. 열린 철문 사이로 면회 확인증을 받은 보호사와 함께 면회실로 향한다.


면회실까지는 10-20 미터 정도 될까. 하얀 불빛이 내리 쬐는 복도를 지나 침대가 놓여있는 병실을 지난다. 면회실에 가는 동안 마주치는 수많은 눈동자들. 잔뜩 경계하는 눈빛, 호기심을 가득 담아 쳐다보는 눈빛, 초점 없는 눈빛. 종종 내게 다가와 말을 거는 환자도 있지만 그럴 때면 옆에 있던 보호사가 즉시 환자를 제지하는데 괜히 미안해진다. 한달에 두 세번씩, 면회 갈 때마다 마주치는 눈빛들이지만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엄마도 나와 같을까, 나처럼 이 곳이 어색하고 불편할까. 나를 보는 여러 눈동자들을 지나쳐 가면 파란색 바탕에 흰 글씨로 쓰여진 ‘면회실’이 나온다. 보호사는 수십개의 열쇠가 걸려있는 고리에서 열쇠 하나를 골라 문을 연 후 “곧 오실거에요, 기다리세요.” 라는 짧은 말만 남긴 채 돌아선다. 의자 대여섯개, 큰 탁자가 놓인 밝은 방. 방의 가장 안쪽의 까만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엄마를 기다린다.


하얀 바탕에 분홍색 스트라이프 무늬가 새겨진 환자복을 입은 엄마가 들어온다. 이번이 몇 번째야, 안 그러기로 했잖아, 도대체 언제까지 그럴거야. 원망과 한탄과 애원이 섞인 여러가지 말들이 턱 끝까지 차오르지만 이미 그 말들은 소용이 없다는 걸 잘 안다. 가만히 앉아 “엄마 잘 지냈어?” 라고 인사를 건네면 쭈뼛쭈뼛 나를 쳐다보기만 하던 엄마의 입에서 “너는 잘 지냈어?” 라는 대답이 그제서야 나온다.


2주만에 보는 얼굴. 2주 전 술에 취해 혼자서 음주를 멈추지 못해 결국 앰뷸런스를 불러 병원으로 온 엄마. “엄마가 할 말이 많은데, 괜히 너랑 싸울까봐 편지로 썼어. 여기선 볼펜도 구하기 힘들더라. 나 좋게 봐주는 보호사한테 볼펜 구해서 썼고, 편지지는 매점에서 샀어. 자, 여기. 가져가. 꼭 편지 꼼꼼히 봐줘. 알았지?”


술이 깬 채로 마주하는 엄마의 얼굴을 보며 잠깐이나마 생각했다. 우리 엄마 참 예쁘구나. 조막만한 얼굴에 콧대도 높고 얼굴도 참 갸름해. 내가 아빠가 아닌 엄마를 닮았다면 더 예뻤을텐데. 이렇게 예쁜 얼굴로 엄마는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는걸까.


엄마를 보면 그동안 참아왔던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이번만큼은 엄마에게 무뚝뚝하게 대하리라, 그래서 엄마가 경각심을 갖게 하리라, 마음을 먹고 가도 엄마를 앞에 둔 내 마음은 늘 무장해제된다. 이번에 자취방을 바꾼 이야기, 같이 자취하는 친구의 엄마가 반찬을 챙겨준 이야기, 엠티 다녀온 이야기. 그렇게 몇 분을 떠들어대면 마지막엔 늘 같은 멘트다. “엄마, 알지. 나는 엄마랑 행복하게 살고 싶어. 제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고쳐서 나오자.” 엄마는 “다 편지에 있으니까, 얼른 가봐.” 라는 대답만 한다.


병실에 엄마를 두고 나오는 발걸음. 아무렇지 않은 듯 시선을 한 곳에만 고정한 채로 걸어나왔다. 아까 들어올 때 문을 열어줬던 남자 보호사는 출입문까지 나와 내가 엘리베이터에 타면 그때서야 철문을 닫는다. ‘철컹’하는 소리를 듣자마자 잔뜩 힘을 줘 유지했던 얼굴의 근육이 풀린다. ‘어후’ 한숨과 함께 큰 산이라도 넘은 듯한 기분에 긴장이 풀린다. 그제서야 내 손에 쥐어준 엄마의 편지를 열어본다. 스킨, 로션. 엄마가 좋아하는 볼펜과 노트 같은 필기용품. 새우깡, 짱구, 꿀꽈배기 같은 간식들을 자세하게도 써놨다. 편지를 읽을 때면 가지런히 쓰여진 엄마의 글씨체. 나만 아는 엄마의 바르고 예쁜 글씨체가 눈에 띄어 편지지를 손바닥으로 한번 쓰윽 훑어 만져봤다. 엄마 냄새가 나는 것만 같다.


병원에 다녀온 날이지만 나의 하루는 똑같았다. 강의실에서 경제학 원론 수업을 들었고, 수업 후에는 팀 프로젝트를 했고, 저녁엔 친구들을 만나 낙산공원에 올라 서울 야경을 보았다. 정자에 누워 새까만 하늘 가운데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별을 볼 때면 엄마가 떠올랐다. 그러면 철문 안의 눈빛들이 차례대로 그려졌다. 그 곳의 시간은 나의 시간과 같을까. 좀더 빠를까, 혹은 느릴까. 친구들과 시원한 밤바람을 맞는 평온한 순간에도. 맛있는걸 먹고 한껏 고양된 순간에도. 데이트를 하며 설레는 순간에도. 늘 엄마가 떠올랐다. 특히 행복할 때면 맘 속 깊은 곳에서 불안이 스멀스멀 침습했다. 이렇게 혼자 좋으면 안될 것 같았다. 내가 행복한만큼 행복하지 않아 보이는 엄마의 모습은 크게만 보였다. 그렇게 나의 행복은 늘 불안을 동반했다. 반토막짜리 행복을 마음 졸인 채로 조심스레 누렸다.


며칠 전 시댁에 다녀오는 차 안에서 엄마가 있던 병원 앞을 지나쳤다. 밤이라 그런지 길가는 어둑했지만 가로수 불빛 몇 개에 의지해서 보는 병원 모습은 그 당시 그대로였다.


엄마가 이 곳에서 보냈던 시간들을 그려본다. 여기서 울기도 많이 울었지. 입원하고 나면 이 병원싫다며 퇴원시켜달라고 애원도 했고. 어느 날은 공예시간에 만든 본인 백조가 제일 예쁘다며 자랑도 했었지. 공예 시간에 만든 컵받침이나 인형들 중 예쁜 것들을 골라 내게 주기도 했었는데.


환자복을 입고 나를 만나던 엄마는 어땠을까. 어린 나이에 졸지에 얻은 보호자 딱지를 붙이고 심통이 가득 난 딸 아이의 얼굴. 내 딴에는 감춘다고 했지만 감춰지지 않는 딸의 표정을 보며 엄마는 어땠을까. 내 맘처럼 되지 않는 엄마의 인생이 싫고 때론 엄마가 바보같아서 병원에 다녀온 날이면 어둑한 시간을 한참 통과해야만 했다. 분하기도 억울하기도. 한없이 엄마가 안쓰럽기도 한 나의 시간을 통과하다보니 엄마의 시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엄마가 환자복을 입은채 만났던 나. 스무살의 앳된 얼굴을 한 딸의 모습. 엄마의 눈으로 본 그 때의 나는 어땠을까. 비록 보호자 딱지를 붙여준 것이 못내 미안하면서도, 어엿하게 커서 엄마의 보호자 역할을 하러 온 딸이 든든했을까. 병동에 면회를 오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도, 편지를 쓰면 사오라는 편지 속 물건들 중 항상 한 두개씩은 빠뜨리는 게 있었어도 다음 면회 때 두 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오는 딸이 고마웠을까.


엄마의 눈으로 내 모습을 그려본다. 엄마 눈에 비친 내 모습이 한없이 앳되고 예쁘다. 나는, 엄마에게 그런 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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