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갓집에서 독립한 후, 결혼 전 엄마와 둘이 1년 남짓 살던 그 집은 다세대 주택의 1층이었다. 지하는 아니었으나 현관이 땅보다 턱 한칸이 아래에 있었다. 어느 날은 회사를 다녀오면 환하게 불이 켜진 현관문 안에 술에 취해 누워있는 엄마가, 어떤 날은 따뜻한 저녁밥을 차리고 기다리던 엄마가 있었다. 그러다가도 엄마는 어느샌가 사라져 일주일 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다. 나중에 집에 들어온 엄마는 며칠 간 술에 취해있었는지 옷과 몸에 술냄새를 가득 묻혀 들어왔다.
결혼식을 일주일 앞두고 엄마는 여전히 병원에 있었다. 이 때도 스스로의 힘으로 술을 멈추지 못하고 실려온 병원이었다. 결혼식은 일주일 남았고, 엄마는 병원에 있고. 혼주인 엄마가 내 결혼식 도중 술이라도 먹을까봐 며칠 마음을 졸였다. 내 이야길 들은 정하언니와 슬기언니는 언니들 자신이 엄마를 집중마크 할 수 있다며 모였다. 교회 소년부실에 모인 언니들은 하나같이 비장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불안 가득한 눈을 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남의 엄마를 돌봐야 하는 일을 앞두고서도 언니들은 태연하게 이야기했다. 어떻게 엄마 옆에 최대한 티 안나게 붙어있을지, 피로연에서 엄마가 술을 먹지 않도록 할지. 결혼식이 끝난 후엔 엄마를 어떻게 병원에 데려다줄지. 택시를 탈지 운전을 할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걱정마. 됐어 됐어, 언니들한테 맡겨.” 라고 말하는 슬기언니의 말이 그렇게 듬직할 수 없었다.
결혼식에서 입을 엄마 한복을 맞추고 엄마 머리도 손질할 겸 병원에 있는 엄마와 함께 외출을 했다. 한복을 맞춘 후 파마를 하러 미용실에 왔다. 엄마 머리카락이 얆아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미용사의 말에 나는 잠시 집에서 쉬다가 끝날 시간에 엄마를 데리러 가기로 했다. 다시 찾아간 미용실엔 엄마가 없었다. 미용실 원장님은 엄마가 머리를 말고 있는 채로 나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결혼식이 5일 남고, 4일 남고, 3일 남고…. 결국 엄마는 결혼식 이틀 전 취한 채 집에 돌아왔다. 경찰이 데려온 것으로 기억한다. 머리엔 말려 있던 파마 롤들이 꽤 오랫동안 말려있었는지 엄마는 전에 본적없는 우스운 머리를 하고 있었다. 마치 태생이 곱슬인 것처럼 엄마의 두피에 머리카락이 바짝 꼽슬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서둘러 병원차를 부르고 엄마와 병원에 갔다. 어디서 마셨을까. 무슨 일이 있던 걸까. 어릴 때부터 늘 궁금했었다. 내가 보지 못하는 엄마의 시간은 어떻게 흘렀을까. 어떤 고초를 당한 것은 아닐까. 여자 혼자의 몸으로 집밖에서 버텨냈을 엄마의 시간이 내 마음을 깊게 할퀴었다.
엄마 대신 혼주석에는 나를 키워준 외숙모와 외삼촌이 앉기로 했다. 외숙모와 삼촌은 그 어느때보다 멋진 한복과 양복을 입고 머리를 한 채로 결혼식에 도착했다.
시부모님은 나와 엄마를 뭐라고 생각할까. 남편은 우리 엄마 몸이 안 좋아서라고 말했지만 시부모님은 우리 엄마가 우리의 결혼을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고 여기신 듯하다. 하지만 지금껏 결혼한지 8년 동안 그 일을 입밖에도 꺼내지 않으셨다.
이숙자의 딸, 한열음이라고 되어있는 청첩장과 결혼식 안내판과 다르게 숙모와 삼촌이 앉아있는 혼주석을 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 날, 언니들과 소년부실에서 엄마 마크하기 대작전은 왜 짠 것이고 엄마 한복은 왜 예약하러 갔을까. 부질없게.
엄마를 생각하면 한없이 비참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결혼식은 시끄러웠고 가득찼으며 행복했다. 대학교 과, 동아리, 교회, 회사. 속한 집단만 여러 곳이다보니 결혼식은 발 디딜틈 없이 붐볐고 친구들이 많아서 사진을 두 세번 나눠서 찍었다.
결혼식 전날 우리집에서 같이 잠을 자고 새벽 4시에 샵으로 가준 유하가 있어서 참 좋았고, 웨딩카를 마련해준 동원오빠가 참 좋았고, 축의금을 걷어준 형부들, 손수 축가를 지어 불러주던 08 동기들이 좋았고, 결혼식 서약을 내가 읽을 때 여기저기서 숨죽여 울던 내 친구들의 울음과 훌쩍이는 소리가 좋았다. 엄마의 부재가 이따금씩 떠올랐지만 사람들의 환호성과 축하의 말소리로 인해 엄마 생각은 금세 덮였다.
웨딩카를 타고 동원오빠와 낙탁이, 그리고 남편과 신혼집에 왔다. 신혼집은 이런거구나, 하는 두 남자동기들은 신기하게 우리집을 구경했고 그들까지 떠난 집은 고요하고 삭막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환호성과 폭죽이 터지는 한 가운데 서있던 신부가 맞나 싶을 정도로 고요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엄마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이 난다. 엄마가 밉기도했지만 차마 엄마가 없이 결혼식을 마쳤다는 말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다음 날 발리로 신혼여행을 떠났고 이곳의 겨울과는 반대인 여름의 나라에서 일주일 보낸 후 엄마의 병원을 찾았다. 엄마를 볼 용기가 나지 않아 엄마가 필요한 생필품과 간식들, 그리고 간식비를 넣어주고 돌아온 기억이 난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던 것 같다. 엄마는 하나 뿐인 딸 결혼식에 못가게 했다며 날 원망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자 여러 생각과 감정들이 가슴을 조여왔다. 하나밖에 없는 딸 결혼식에도 못간 엄마가 가여웠고, 엄마가 가여울 때면 미움의 화살이 내게로 향했다. 엄마가 불쌍하고 안타까울 수록 왜인지 나 때문인 것 같아 내 자신이 미웠다. 술 마신 건 엄만데 딸 결혼을 앞두고서 머리에 구르프까지 말고서 도망간 건 엄만데 왜 내가 죄책감을 가져야 하는 건지. 결혼식을 엄마에게 보여주지 못한 딸이 되어 한참을 앓았다. 이 마음을 엄마는 알았을까.
결혼식을 앞두고 발을 동동 구르던 스물다섯의 나. 넘치는 축하와 축복의 말들 속에서도 엄마를 떠올리며 울음을 참았었다. 혼주에는 엄마 이름이 쓰여있었지만 혼주석에 외숙모와 외삼촌이 앉아있는 사실을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기는 것은 아닌 지 긴장이 되어 제발 몰라주길 바랐던 결혼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