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대신 하는 이들
첫째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때는 7월이었다. 회사 사람들 모두 부푼 마음으로 휴가지를 고민할 때 나는 입덧에 시달려 물 한 모금 조차 시원하게 마시지 못했다. 식사를 남편이 챙겨줬는데 그마저도 잘 먹지 못했다. 6일간 주어진 여름휴가 기간 동안 시댁에 가 있기로 했다.
어둑한 저녁이 돼서야 시댁에 도착했다. 며칠간 밥은 입에도 못 댔는데 신기하게도 어머니가 해주신 고등어 구이와 닭백숙이 오물조물 속으로 들어갔었다. 끼니마다 어머님이 차려주시는 밥을 먹고 나서 어김없이 구토가 올라왔다. 해가 떠있는 낮부터 내내 토한 뒤 느지막이 해가 지는 여름밤에 슬슬 배가 고파왔다. 냉장고를 열어 어머님이 막내 시누 먹으라고 사놓은 초콜릿 우유도 꺼내 먹고 어머님이 낮에 데쳐 놓은 느타리버섯을 꺼내 초장에 찍어 먹었다. 물을 머금어 통통한 버섯기둥은 촉촉했고 질겅질겅 씹는 재미가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결혼을 앞두고 아직 추운 초봄에 상견례를 했다. 남편 쪽에선 시어머니와 시아버지, 우리 쪽은 엄마가 나와서 함께 식사를 했다. 말끔한 음식이 나오는 한정식집이었다. 그날도 엄마는 말이 많았다. 말만 하면 외려 다행이지 하는 말마다 감정이 가득 묻어 부담스러웠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혼자서 딸 키운 이야기, 본인의 성장사, 본인의 부모가 얼마나 자기를 아꼈는지 까지 이야기가 전개됐다. 무릎 아래가 널찍하게 뚫려 있는 좌석 아래서 티 안 나게 발로 엄마를 툭툭 쳤었다. 그만하라는 시그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본인 이야기에 취해 계속 말을 했던 엄마였다. 남편의 부모님은 엄마의 이야기를 마치 듣기 평가를 보듯 놓치지 않기 위해 정성스럽게 들었다.
결혼 이후 우리 엄마가 시부모님과 연락하는 일은 없었다. 그때 엄마는 술로 인해 병원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다. 내가 결혼하고 2년 뒤 나와 동갑인 첫째 시누가 결혼을 했다. 시댁에 갔던 날 시누 결혼 이야기를 어머님께 들었다. 혼수며 예단이며 하는 것들을 준비한다고 하셨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도 하고 추임새도 넣었지만 마음속은 엉키고 설키기만 했다. 어머니처럼 딸의 결혼에 신경 쓰지 못했던 나의 엄마가 떠올랐다.
첫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이 끝난 후 아이 육아를 위해 1년간 어머님과 같이 산 적이 있다. 그때 어머님이 늘 그 자리에 있는 게 신기했다. 아침이면 출근하는 나와 남편을 위해 우유에 찐 고구마를 갈아주셨다. 내가 잠에서 깨 샤워하러 화장실에 갈 때면 거실에서 스트레칭을 하며 오늘의 날씨를 보고 계셨다. 그리고 내가 화장실에서 나올 때면 오늘 춥다더라 또는 덥다더라 하며 옷 입을 때 신경 쓰라는 말씀을 덧붙였다.
어머님이 내게 주는 안정감이 낯설었고 신기했다.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아직 학생이었던 늦둥이 막내 시누를 챙겨주는 엄마로서의 시어머니 모습을 볼 때면 부러움을 넘어서 질투가 나기도 했다. 괜스레 시누가 미워졌었다.
그래도 나를 많이 신경 쓰셨던 것 같다. 시누이와 나를 대할 때 최대한 차이를 두지 않으려고 하셨다. 무엇을 먹을 거냐고 물을 때면 내 이름을 먼저 부르셨다. 사소하지만 그게 좋았다. 늘 먹는 양이 적은 내가 음식을 남길 때면 그 음식을 드시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시어머니가 내 엄마면 어땠을까란 생각을 했다. 불안이 아닌 안정감을 주는 엄마를 가진 느낌은 어떤 것일까. 그런 엄마를 가진 남편과 시누이의 어릴 적 시간이 자연스레 그려졌다.
이번 설에도 어머님은 우리 집에 택배 몇 상자를 보내셨다. 전복장부터 시작해서 배도라지즙, 견과류. 그리고 항상 잊지 않으시는 내 영양제. 종합 비타민, 비타민 D, 오메가. 늘 보내면서 한마디 하신다. 이건 네 시누도 안 사준 거야. 말하지 말어라. 너만 먹어라.
뱃속에서 잘 있던 첫째가 출산을 한 달 앞두고 갑자기 역아가 되었다. 제왕절개 수술 날짜를 잡고 불안해서 이도 저도 못 할 때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에게 힘들다고 속을 토해내며 엉엉 울었다. 잘 될 거라고 걱정 말라고 내가 매일 새벽에 나가 기도하고 있으니 울지 말라고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나의 불안을 두 세배로 만들었던 엄마가 아니라 나의 불안을 끌어안는 어머니였다.
설 당일에 어머님 댁에 다녀왔다. 지방에서 일하시는 아버님과 지난주에 미리 모인 터라 설에 모이지 않기로 했지만 그래도 혼자 계시는 어머님이 맘에 걸려 다녀왔다. 어머님은 설 바로 전 날 손을 다쳐 깁스를 하고 계셔서 냉장고에 있던 재료를 가지고 내가 떡국과 불고기 간단한 것들로만 간단히 상을 차렸다.
어머님에게 늘 도움만 받다가 도움을 드리는 위치에 놓이니 어딘가 모르게 어깨가 펴진다. 생색이라기보다 나도 어머님께 도움을 드릴 수 있구나 싶어 뿌듯하다. 요즘은 손이 다치시고 여간 성가신 게 아니라며 자주 전화를 하셔서 하소연을 하시는데 그마저도 그리 싫게 들리진 않는다.
우리 엄마 이야기가 늘 궁금하셨을 텐데 혹여라도 내가 마음 쓸까봐 묻지 않으셨던 그 마음. 물어보고 들추어내기보다 늘 기다려주셨던 마음이 새삼 감사하다. 살면서 이렇게 따뜻한 일들만 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돌아보니 서운했던 것보다 좋은 일들이 먼저 생각나는 것 보니 어머님께 사랑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누군가 이야기했다. 엄마가 주는 사랑은 엄마에게만 있지 않다고.
연인 또는 친구와의 관계 속에서 혹은 아이와 남편과의 관계 속에서도 모성 혹은 부성이 작동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나에게 어머님은 또 다른 엄마였다. 나의 엄마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내 마음 한 구석을 채워줬던 사람.
엄마가 주는 사랑이 엄마에게만 있지 않다면 나 역시 누군가의 마음 한구석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두 아이의 엄마를 넘어서서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로 확장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작게만 느껴졌던 나의 존재가 한없이 커 보인다.
다른 이들을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은 그냥 생긴 것이 아닐 테다. 나의 추운 날을 견디게 해 주던 이들. 그들이 내게 남긴 것들을 잘 기억하며 누군가가 쉬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를 넘어서서 더 확장될 수 있는 존재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