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상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감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다. 그냥 넘겼을 법한 일들도 혹은 꽤나 심각하게 보았을 일들도 이전과는 다르게 보인다. 다르게 느껴진다. 내가 사랑하고 돌보는 이들은 이렇게 나의 세계를 바꾸어 놓았다. 눈이 왔다는 말에 첫 째는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채로 “엄마 나 손톱에 봉숭아물이 아직 남아있어, 소원이 이루어질 것만 같아”라고 말했다. 요즘 등교 시간에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부쩍 얼굴을 보고 머리를 다시 고쳐 매는 시간이 늘어난 아이. 이제는 자신만의 사고와 나름의 가치관을 만들어가고 있는 아이에게 보여지는 또다른 아이다움. “나 오늘 학교 놀이터 갈거야. 가서 눈을 만져야지, 쓸어야지, 던져야지!”라며 갑작스레 커진 키와 빠진 젖살로 인해 갖게 된 성숙한 생김새에 반해 그렇지 못한 다짐. 눈을 만지고 쓸고 던질 거라는 아이다움이 오늘 아침 내게 준 위로.
창밖으로 눈을 쓸어주는 이웃을 보며 큰일이 났다며, 눈을 없애고 있다며 방방 뛰던 둘째. 십 분이면 갈 수 있는 어린이집을 삼십 분이나 걸려 간 아이. 아직 발자국이 찍히지 않은 새하얀 주차장에 가서 발도장도 찍어야 하고, 차 위에 쌓인 눈들도 만져야 하고 그 눈을 뭉쳐보기도 해야 하고 뭉친 눈을 던져도 보아야 하는 아이. 결국 내리막길에 엉덩방아를 찧어 바지와 내복, 팬티까지 젖어 눈물을 보인 아이. 그 아이를 꼬옥 안아주며 괜찮아 괜찮아 눈 오는 날은 원래 이런 날이야, 라고 말해주자 내게 얹어진 행복.
출근길 차가 막히는 것과 질척대는 바닥으로 인해 옷과 신발이 망가질 것에 대한 걱정보다는 어제와는 다른 모습을 한 세상, 새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있다 휘어져 버린 나뭇가지와 눈발이 흩날리는 하늘을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기대, 그것을 보고 아이들이 보여줄 새로움에 대한 반응. 그것들은 언제나 내게 깊은 자극과 기쁨과 위로를 준다. 그들과 같은 시간을 건너온 내가 잊고 있었던, 하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그 시간들을 흐릿하게나마 만져볼 수 있게 되는 시간.
어린이집에 도착한 둘째는 젖은 옷 때문에 여전히 울상이다. 바지를 말리느라 옷걸이게 걸어둔 것도 여벌옷이 없는 것도 속상한 듯 내게 안겨 자꾸만 엄마랑 다시 집에 간단다. 예측 불가한 상황을 힘들어 하는 성향을 가진 아이라 신나게 논 것과는 별개로 옷이 젖어버린 것이 계획에 없었는지 영 기분을 풀지 못한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우리 강아지 우리 강아지 왜 이러고 있어.” 라며 때맞춰 등장한 선생님이 아이에게 두손을 내민다. 그러자 아이의 작은 엉덩이가 선생님의 무릎 안으로 안착했다. 현이를 달래준다며 어린이집 선생님들 둘 셋이서 마술쇼를 하고 친구들이 모여 괜찮아 괜찮아, 를 하니 아이의 얼굴 근육에 어느새 힘이 빠져 있다. 엄마 이제 갈게? 라는 인사에 답도 하지 않고서 선생님 무릎이라는 웅덩이에 엉덩이를 포옥 담그고선 아침을 시작하는 아이.
아이들은 내가 지나온 시간의 문을 열어 다시금 나의 과거와 만나게 해주고, 새로움이라는 문을 열어 세상 모든 것들을 처음 본 것처럼 신기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해준다. 작지만 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한 나의 두 아가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 그들의 평온함을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