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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교선 Mar 09. 2021

남미 여행 일지 5. 사막의 오아시스 -2-

20대 중반 남자 4명의 남미 배낭 여행기

해가 지기 전에 오르고 싶었다. 사막의 언덕을.


 일몰 시간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사막의 언덕을 향해 걸었다. 언덕은 생각보다 정말 높았다. 나무까지 심어져 있다면 오르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마 작은 산 정도로 느꼈을지 모른다. 숙소를 벗어나 사막에 발을 내디뎠다. 바람이 불 때마다 모래 알갱이들이 얼굴을 스치며 지나갔다. 마스크가 없었다면 꽤나 따가웠을 것이다. 모래는 정말 고와서 맨발로 밟고 싶은 충동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바로 맨발로 걷기 시작했다. 바닷가의 가장 고운 모래사장을 걷는 기분이다. 발을 디딜 때마다 푹푹 빠졌다.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 감촉이 재밌었다. 


온통 사막의 언덕뿐인 풍경


 언덕 오르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크기도 크기지만 발이 계속 빠지니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었다. 발은 계속 빠지지, 바람도 불어오지. 심지어 바람에는 모래 알갱이들이 섞여있다. 숨이 두배는 찼다. 그렇지만 즐거웠다. 처음 보는 사막의 풍경과 사막 모래의 감촉이 너무나도 신기했다. 살면서 내가 사막을 맨발로 뛰댕길 날이 얼마나 있을까. 힘들었지만 이 순간을 계속 느끼고 싶었다.


언덕은 생각보다 높았다


 언덕 중간쯤에 오르니 와카치나가 한눈에 보였다. 중앙에 거대한 오아시스가 있고, 오아시스를 기준으로 주변에 식당과 상점가들, 숙박업소들이 모여있었다. 말 그대로 오아시스 마을이다. 풀 한 포기 찾아볼 수 없는 이 사막에서 오직 오아시스 주변만이 푸른 나무를 위풍당당하게 자랑하고 있었다. 언덕 중턱에서 주위를 바라보았다. 광활하게 펼쳐진 사막지대다. 하늘 아래 오직 모래뿐. 오로지 모래 언덕과 하늘만이 눈에 담기는 전부다. 누군가 그려놓은 그림 속으로 들어온 것만 같았다. 한 친구와 나는 모래언덕의 정상까지 올라가기로 했다. 가장 높은 곳에서 풍경을 바라보고 싶었다. 힘든 게 대수랴, 기회는 오늘뿐이다. 


분홍빛 하늘로 마무리하는 사막의 하루

 

거의 다 올라갈 즈음 서서히 해가 지기 시작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양손에는 슬리퍼를 쥐고 올라갔다. 그렇게 중간에 쉬고 있는 관광객들을 지나쳐 언덕 정상까지 올랐다. 힘들었던 언덕 등반 끝에는 붉게 물든 사막의 노을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붉어져 가는 하늘 아래로 모래만이 지평선을 그리고 있었다. 정상에서 보니 와카치나 마을이 더욱 작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거대했던 오아시스는 컵 한잔에 담길 만큼 조그맣게 보였다. 정상답게 바람이 거셌다. 온몸으로 맞았다. 구름 낀 하늘이 다소 아쉬웠지만, 나름의 운치를 더했다. 하늘은 연한 주홍빛으로 하루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지평선까지 펼쳐진 광활한 사막의 풍경이 아름다웠다.




사막의 만찬


 난생처음 보는 사막의 노을을 뒤로하고 숙소에 내려왔다. 사막 언덕은 쉬운 게 아니었다. 내려올 때 어찌나 굴러서 내려오고 싶었는지 모른다. 숙소에서 쉬다가 예약해둔 바비큐를 먹으러 나갔다. 생선, 닭봉 구이, 닭고기와 퀴노아 버거가 제공되었다. 샐러드는 무제한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고기는 정해진 만큼만 받았지만, 충분히 배불렀다. 처음에 고기를 받고 이걸로 배를 어떻게 채울까 했지만 먹다 보니 배가 불러왔다. 바비큐를 하는데 술을 빼놓을 수 있나. 숙소 중앙에 자리 잡은 작은 샵에 가서 얼른 맥주와 칵테일을 사 왔다. 참으로 훌륭한 저녁식사다. 지금까지의 우여곡절을 얘기하며 배불리 저녁을 먹었다.

맥주와 함께 즐기는 사막의 만찬

 

칵테일명: 마추픽추. 달고, 씁쓸한 독주의 알록달록한 만남.
빨리 먹을 생각에 급히 찍다 흔들린 안티쿠초
열대과일을 밑에 깔아준 아이스크림


 식사 후 그간의 빨래를 모아 근처 빨래방에 맡기고 돌아왔다. 부족한 스페인어 탓에 약간의 지체가 있었지만, 무사히 빨래를 맡기고 왔다. 오는 길에 보니 길거리 꼬치 가게가 있었다.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특유의 양념 향을 풍기고 있었다. 어찌 지나칠 수 있겠는가. 안티쿠초라고 불리는 소 염통 꼬치다. 맥주와 곁들일 요량으로 당장 구매했다. 이때 부족했지만 스페인어 배운 덕을 봤는데, 주인이 우리에게 고양이 고기라며 농담을 했고, 나는 고양이라는 단어를 이해하여 주인을 놀라게 했다. 고기의 육질은 되게 부드러웠다. 조개구이를 먹는 식감이었다. 양념 맛이 세지 않아서 딱 꼬치맛으로 맥주와 즐길 수 있었다. 역시 길거리 꼬치는 언제나 맛있다. 디저트는 아이스크림이었다. 여기 아이스크림은 정말 놀라웠는데, 열대과일을 푸짐하게 넣어주었기 때문이다. 볼에다가 과일을 잔뜩 넣고 아이스크림도 같이 주었다. 정말 배불렀지만, 디저트 배는 또 따로 있으니 문제없었다. 맛있는 저녁 코스였다.


 여행에서 즐기는 행복한 순간이다. 낯설지만 맛있는 음식, 낯설지만 신기한 풍경.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언젠가 이 행복을 누리고, 또 이 기억을 원동력 삼아 삶을 살고 새로운 여행을 꿈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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