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 남자 4명의 남미 배낭 여행기
사막이여 안녕~
일찍 조식을 먹고 정들었던 숙소와 헤어졌다. 간이숙소 같던 우리 방도, 낮잠 자던 해먹도, 한낮의 열기를 식혀주던 수영장도 뒤로한 채 와카치나를 떠났다. 숙소 앞까지 픽업하러 오신 Juan 아저씨의 택시를 타고 나스카로 출발했다. 올 때는 낯설었던 풍경이었다. 이제는 익숙한 풍경이 되어버려 섭섭함을 더했다. 언제 또 올 수 있을까. 언젠가는 올 수 있겠지. 인생 처음 만난 오아시스 마을 와카치나를 그렇게 떠났다.
작은 공항과 작은 비행기
다음 목적지는 나스카. 미스터리 서클로 유명한 그 나스카. 나스카까지 택시 타고 가는 길은 상당히 졸렸다. 택시로 거의 두 시간 반 정도를 갔다. 졸다가 깨다가 밖을 보다가 다시 졸다가 떠들면서 갔다. 가는 길엔 사막의 풍경과 암석으로 된 산들이 가득했다. 거대한 화물 트럭들이 도로를 오고 갔다. 일직선 도로도 꽤나 많아서 화물차 수만큼이나 추월도 빈번히 일어났다. 기차가 발달하기 힘든 지형이라 그런지 화물 운송 트럭들이 정말 많았다. 암석 지형이 많이 보이고, 간간히 작은 마을들이 보이기도 하였다. 휴게소 같은 것은 기대하기 힘들었고, 화장실을 가려면 정말 희귀하게 있는 주유소에 들려야 했다. 그렇게 뜻밖의 자동차 여행을 하게 되었다.
나스카는 생각보다 작은 도시였다. 관광도시로 유명해서 시끌벅적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작고 조용했다. 우리는 바로 나스카 유적을 볼 수 있는 경비행기 공항에 갔다. Juan 아저씨가 현지인의 포스를 풍기며 티켓 구매를 도와주셨다. 우리는 그냥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였다. 처음에 가격을 한꺼번에 합의 봤기에 바가지는 없을 것이라 믿었다. 아저씨는 우리에게 티켓을 주었고, 간단하게 설명해주셨다. 그리고는 투어가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온다고 하셨다. 정말 쿨하시다.
대합실 같은 작은 공항에서 우리는 티켓 인증숏을 찍으며 차례를 기다렸다. 간단한 수속 절차 후 다른 여행객 2명과 함께 경비행기에 탑승하러 갔다. 간단한 짐 검사와 건강체크를 하였다. 그렇게 오래 기다리지 않고 바로 비행기에 탈 수 있었다. 현지인의 파워인가, 새삼 Juan아저씨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마치 공항처럼 간단하게 검사 후 활주로로 나갔다. 햇살이 좋다. 날씨가 좋아 유적도 더 잘 보일 것이다. 아스팔트 활주로 위에 하얀 경비행기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경비행기를 타보는 건 이번 생에 처음이다. 긴장과 설렘이 온몸을 감돌았다. 비행기 내부는 정말 작았다. 남자 6명이 뒤에 타니 정말 꽉 찬 느낌이었다. 엔진 소음이 심해서 헤드셋을 착용해야만 대화할 수 있었다. 강렬한 태양빛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탓에 기내는 살짝 더웠다. 헤드셋을 통해 안내사항이 흘러나오더니 비행기는 슬슬 앞으로 가기 시작했다. 이륙하는 느낌은 일반 비행기를 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소음과 함께 떠오르는 기분이 든다. 놀이기구를 타는 기분이다. 밖을 보니 땅이 점점 멀어진다. 이륙하고 나니 흔들림이 심했다. 멀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힘들었을 것이다.
대지를 배경으로 그린 거대한 그림
유적 구경 시작이다. 어느새 트럭마저도 개미처럼 작게 보일만한 고도에 이르렀다. 저 멀리 지평선이 보인다. 산지밖에 없는 한국에서는 보기 힘들겠지. 헤드셋을 통해 가이드의 설명이 흘러 들어왔다. 약간의 비행 이후 바로 유적 구경에 들어갔다. 그렇게 땅만 바라보고 있다가, 유적이 시야에 들어왔다. 정말 신기하게도 비행기 위에서 보니 마치 그림을 그려놓은 것처럼 선명했다. 스케치북에 그려놓은 것처럼 정말 그림이었다. 어린아이가 낙서한 거라기엔 너무 기하학적으로 정교하고, 공들여서 그렸다기엔 너무나 단순했다. 트럭이 저렇게 작게 보이는데 이 유적은 얼마나 거대한 걸까.
경이로웠다. 육안으로 이걸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세계사에서 스쳐 지나가듯 배울 때에도, TV 다큐멘터리에 나올 때에도 그냥 이런 게 이는 갑다 싶었다. 막상 실제로 보니 이렇게나 신비롭게 느낄 줄이야. 사실 그렇게 큰 기대를 안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너무나도 신기했다. 처음 장난감을 접하는 어린아이처럼 눈을 뗄 수 없었다. 저 땅 위에 새겨진 그림들이 왜 이리도 신기하게 느껴진 건지. 하늘 위 구름이 만들어낸 그림자조차 아름답게 보였다. 손 모양, 외계인 모양, 나무 모양, 강아지, 원숭이 그리고 벌새들. 마치 기호처럼 그려놓은 것이 아무리 봐도 외계인이 아니고선 만들 수가 없어 보였다. 사람이 의도적으로 그렸다기에는 너무 거대하고, 건축학적이나 실용적인 의미를 모르겠다. 어떤 주술적인 의미가 있다기엔 너무 규칙성이 없어 보였다. 거대한 건물이 들어설만한 공간에 유적이 있으니 정말 외계인이 내려와서 땅을 스케치북 삼아 낙서인지 문양인지 그려놓고 떠난 게 아닐까. 딱 봐도 알아볼 만큼 만들어냈다는 게 너무나도 신기했다.
나스카 여행의 목적은 정말 이 경비행기 투어 하나뿐이었다. 마을을 구경할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경비행기 투어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경험이었다. 멀미가 있다면, 멀미약을 한 사발을 마셔서라도 꼭 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 경이로운 경험을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나도 아쉽다. 경이가 가시기 전에 비행기는 슬슬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고, 투어는 그렇게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