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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교선 Mar 30. 2021

남미 여행 일지 7. 경이로운 나스카 -2-

20대 중반 남자네 명의남미 배낭 여행기

 비행기 투어를 마치고 오니 도시는 정전이었다.


 투어를 마치고 수료증 비슷한 것을 받았다. 별 의미는 없었지만, 기분이 좋았다. 비행기 조종사와 가이드, 그리고 다른 여행객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이제는 작은 경비행기와 작별을 하고 공항을 나왔다. 다시 택시를 타고 크루즈 델 수르 터미널에 도착했다. Juan 아저씨에게 감사를 표하며, 기념사진을 찍고 우리도 한글로 후기를 작성해주었다. 덕분에 나스카 투어까지 별 힘들이지 않고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나스카에 도착하고 보니 시내 전체가 정전이란다. 그래서 버스 터미널 안은 어둑어둑하고 에어컨도 없었다. 강렬한 햇살은 지상의 공기마저 덥히고 있었다. 버스 터미널에서 계속 대기할까도 했지만, 예약해둔 저녁 시간까지 아직 여유가 많았다. 생각보다 나스카 투어를 빨리 마친 덕분에 시간이 붕 떴다. 역시 쉬면서 체력을 회복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근처 숙박업소를 돌았다. 한나절 정도 머무를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몇몇 가게들은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지만, 한 호텔이 1박보다 약간 저렴한 가격으로 흥정해주었다. 운이 좋았다. 덕분에 우리는 잠시 마나마 쉴 수 있었지만, 여기도 에어컨이 안 켜지기는 마찬가지. 날이 더운 탓에 밖이나 숙소나 큰 차이가 없었다.


푸드트럭으로 점심을!


 결국 우리는 나가기로 했다. 짐을 놓고 나스카 시내로 찬찬히 걸어갔다. 나스카는 그리 큰 마을이 아니었다. 옛 마을의 모습이 남아있는 듯했다. 가는 길에 세비체를 파는 푸드트럭을 발견했다. 점심은 이거다. 트럭의 이름은 세비체리아. 한국의 패스트푸드점 롯*리아가 떠올랐다. 우리는 세비체, 해물볶음밥 그리고 치차 모라다라는 옥수수로 만들어낸 음료수다. 보랏빛을 띠는 이 음료는 새콤달콤해서 시원하게 마시기에 좋았다.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삼삼오오 앉아서 식사를 했다. 이전에 먹었던 세비체보다 평범했지만, 독특한 맛에 먹게 되었다. 새콤한 회무침과 해물볶음밥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점심을 해결했던 세비체리아 푸드트럭


 중심지까지 가보려다가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햇빛이 너무 강렬해졌기 때문이다. 땡볕에 돌아다니다간 열사병에 걸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해가 살짝 질 때까지 숙소에서 쉬기로 했다. 피부를 태워버릴 햇볕을 피해 호텔로 다시 돌아왔다. 에어컨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늘이 나았다.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해가 질 때 즈음 다시 나가기로 했다.


나스카는 뜨겁다. 에어컨이 없다면 더욱


 와카치나 사막의 열기를 떠올리게 했다. 열기가 지나가고 난 뒤  해가 슬슬 붉게 물들 즈음에 다시 나왔다. 시내 쪽에는 역시 광장이 있고, 성당도 있었다. 어느 도시를 가도 중앙에는 광장과 성당이 있다느 것이 정말 신기할 따름이었다. 광장에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마을 사람들 거의 모두가 모인 듯 남녀노소 앉아서 쉬고 떠들고 놀며 광장을 채우고 있었다. 해가 져물어가니 다들 나와서 시간을 보내는 모양이다. 한창 퇴근길에 복잡해질 서울의 풍경을 생각하자면 너무나도 대비되었다. 

 

 박물관에 가려했으나 막상 가보니 입장료가 비싸서 다시 돌아왔다. 애초에 계획에 없던 곳이기에 돈을 함부로 쓰기에는 부담이 되었다. 나스카의 토착 유물을 전시하는 곳이었으나, 아직 여행 초반이기에 기분 내키는 대로 돈을 쓸 수는 없었다. 다시 시내를 통해서 광장으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작은 슈퍼마켓을 몇 개 보았는데, 한국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었다. 철창 같은 카운터 뒤쪽으로 물건들이 보였고, 돈을 내고 말해야만 건네주었다. 한적해 보이는 분위기와는 달리 다른 슈퍼마켓 문화는 다소 낯설었다.


 광장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여느 아이들처럼 뛰며 떠들며 놀고 있었다. 어른들은 쉬는 것인지 대화를 하는 것인지 그늘과 벤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저녁때가 가까이 왔는데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광장을 관통하니 동양인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익숙해질만도 한데,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느낌은 여전히 새삼스럽다.


 한 친구는 컨디션이 안 좋아서 숙소에서 쉬기로 하고, 나머지 셋은 저녁을 먹으러 갔다. 숙소 근처 식당인 RicoPollo란 곳이었는데 한국말로 번역하면 맛있는 닭고기쯤 되시겠다. 파스타와 살타도를 먹었는데, 이 집의 대표 메뉴는 간판에서도 보이듯이 닭고기인 모양이다. 그러나 비싼 가격은 배낭여행객들의 선택을 좌절케 했다. 주방에서는 정말 먹음직스럽게 익어가는 닭고기가 우릴 유혹했다. 마치 한국의 전기구이 통닭을 숯불로 굽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파스타와 살타도로 만족했다.


밥을 곁들인 고기볶음, 살타도


파스타


짧은 머무름, 깊은 인상. 나스카


 슬슬 밤이 되었다. 버스 시간이 다가왔고, 터미널로 향했다. 야간 버스라서 밤 내내 타고 가야 했다. 간식으로 간단하게 햄버거와 음료수를 산 뒤 야간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나스카와 이별의 순간이다. 경이로운 경험을 선사해준 나스카에 감사를 표한다. 마을은 큰 임팩트가 없어 정이 들진 않았지만, 낯선 땅에서 느낀 유적의 충격은 이미 뇌리에 자리 잡았다.


 우리는 침대형 버스를 선택했지만 완전히 의자를 젖힐 수는 없었다. 아레끼파로 향하는 밤은 버스에서 보내게 되었다. 잠자리가 불편했던 탓인지, 중간에 악몽을 꾸었다. 가위에 제대로 눌렸는데 그 탓에 웃지 못할 해프닝이 발생했다. 꿈에 귀신이 나왔고, 나는 내게 다가오는 귀신을 밀쳐내기 위해 있는 힘껏 발로 귀신을 얼굴을 걷어찼다. 그런데 귀신을 찬다는 게 현실에서는 앞좌석을 신나게 차고 있었던 것이다. 소리까지 지르면서 앞자리를 발로 차대는 탓에 주변 사람들이 전부 일어나고 말았다. 내 옆 좌석 친구가 나를 진정시켰고, 나는 급히 정신을 차려 앞좌석 사람에게 거듭 사과를 했다. 나는 다시 잠을 청했고, 밤은 여전히 깊었다.


 달리다 보니 어느새 해가 밝아왔고,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음을 느꼈다. 나는 내리면서 다시 한번 앞좌석 여행객들에게 사과했다. 다행히도 외국인 여행객은 친절하게 그럴 수 있는 일이라며 미소로 답해주었다. 한밤중에 정말 불쾌했을 텐데, 너무나도 미안했다. 그럼에도 저렇게 웃으면서 괜찮다 해주다니, 친절한 사람을 만나 기분이 좋았다. 언젠가 나도 다른 여행객을 만나면 꼭 친절히 대해주리라. 그렇게 인상 깊었던 야간 버스에서 내렸고, 우리는 고산도시 아레끼파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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