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 남자네명의 남미배낭 여행기
고산을 느껴본 적 있는가
아레키파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숨 쉬는 것부터 달라졌다. 이것이 고산이다! 할 만큼 급격하게 숨 쉬기가 힘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뭔가 뭘 속에서 숨 쉬는 것처럼 마냥 편하지 않았다. 이제 고산도시에 온 것이 느껴졌다. 그동안의 리마, 와카치나, 나스카는 모두 평지 도시라 큰 차이가 없었는데, 아레키파는 뭔가 달랐다.
터미널은 생각보다 잘 되어있었다. 생각보다 넓었고, 중소 도시의 터미널 같은 허름한 듯 있을 것은 다 이었다. 다만 공용화장실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화장실에 갔는데 변기커버가 없었던 것이다! 급한 배를 움켜잡고, 공용화장실을 찾았다. 근데 문을 열고 보니 커버 없이 변기가 나체 그대로의 모습으로 덩그러니 있었다. 순간 머리는 사고를 멈추었다. 공사 중인가! 하고 옆칸, 그 옆칸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반대편 화장실로 가보았다. 불안한 예감은 늘 맞는지,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깊이 생각할 만큼 나는 여유롭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렇게 남미 공중화장실에서의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터미널을 나서려는데, 콜카 캐년 투어를 홍보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동양인 넷이 몰려다니니 관광객으로 보였다보다. 마침 우리도 현지에서 콜카 캐년 투어를 예약하려 했기에, 한번 드러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다가갔다. 콜카 캐년은 아레키파 부근에 위치한 골짜기로 자연경관이 아주 훌륭하다고 한다. 그런데 조건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우리 호텔 앞으로 픽업도 온다고 한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예약을 확정했다. 덕분에 시내에서 투어사를 돌아볼 시간도 아꼈다. 투어에는 입장료, 아침식사와 점심식사, 온천 이용까지 포함되어 있었고 교통이 전부 지원되었다. 뜻밖의 투어 예약을 완료했다.
터미널들이 으레 그렇듯 출구에는 택시들이 손님들을 태우기 위해 대기 중이었다. 동양인 넷을 부르는 호객행위가 다시 시작되었다. 우리는 다소 저렴한 개인택시보다 안전하게 인증받은 회사 택시를 이용했다. 돈보다는 안전이다. 정찰제로 운영되는 것이라 좀 비싸긴 했지만, 뜻밖의 깜짝 이벤트를 경험하고 싶지는 않았다. 호텔에 도착했다. 들어가니 호스트가 현지 스페인어밖에 할 줄 몰랐다. 최대한 소통을 하려 했는데,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대뜸 우릴 옆 호텔로 가라고 내쫓았다. 아니, 분명 예약도 하고 이름도 확인하고 들어온 것인데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같은 이름의 호텔이 외국인용과 내국인용으로 나뉘어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외국인용 호텔 호스트는 영어를 유창하게 했고, 체크인을 무사히 마쳤다. 싱글 침대 4개인 쾌적한 공간이었다.
아레키파 도시의 풍경
짐을 풀고 나서 환전하러 숙소를 나섰다. 어느새 환전한 돈을 다 써서, 다시 환전할 때가 왔다. 역시 돈 쓰는 건 금방이다. 시내도 둘러볼 겸 발품을 팔기 위해서 아레키파 곳곳을 구경했다. 아레키파의 풍경은 하얗다. 중앙의 대성당과 뭔가 주변 건물들이 대부분 백색이라 그런 느낌이 들었다. 백색보다는 밝은 회색에 가까웠지만,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도시의 풍경은 하얗게 느껴졌다. 도시는 깔끔했고, 현대와 근대 그 어디쯤에 있는 그런 도시 같았다. 해를 받아 선명한 도시가 좋았다.
아레키파에서도 현지인들의 시선을 피할 순 없었다. 동양인 관광객이 적은 지 우릴 쳐다보는 시선들이 강하게 느껴졌다. 이제는 슬슬 익숙해지려 한다. 차들이 적지 않았으나 경적소리가 적었고, 보행자들을 우선하는 문화가 퍼져있는 것 같았다. 한마디로 걷기 여행하기에 정말 쾌적한 도시였다. 도시 역시 그리 크지 않아서 한나절이면 구석구석 다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저곳 발품을 팔아가며 환율을 비교했는데, 큰 차이 없이 비슷했다. 그래서 4번째 가게에서 그냥 더 둘러보지 않고 환전했다.
남미에서 먹은 중국음식의 추억
아침을 안 먹은 터라 뱃속에서 음식을 달라 아우성이다. 처음 보는 도시의 풍경에 잠시 허기를 잊었으나 점심때가 오자 식당만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간 곳은 Chaufa라는 중식당. 한국의 중화요리처럼 이곳도 중국음식이 현지화되면서 저렴한 식당으로 통하는 모양이다. 생각보다 중국식 볶음밥을 파는 곳이 꽤 많았다. 가이드북에서도 저렴하고 양 많은 식당을 찾는다면 중식당을 추천하기도 했다. 그런고로 우리가 여기 왔다. 저렴하고 양 많은 곳을 찾았기에.
식당 안은 한적했다. 당연하게도 중국인은 없었다. 메뉴 그림 역시 평소 알던 중식과는 뭔가 달라 보였다. 과연 현지화된 중국요리는 어떻게 나올 것인가. 면요리보다는 볶음밥이 주력상품인 것 같았고 매콤한 것보다 짭짤하고 달콤한 요리가 더 많아 보였다. 온통 스페인어로 적힌 메뉴판을 해석하기 위해 알고 있던 스페인어 능력을 총동원해야 했다. 사진에서 느껴지는 감에 의존하여 음식을 주문했다. 나는 닭튀김과 샐러드, 그리고 계란 볶음밥을 주문했다. 다른 친구들은 복숭아 소스를 뿌린 닭튀김, 간장 소스로 볶은 닭, 통으로 튀겨낸 닭고기 등을 주문했다. 닭을 튀겼는데 맛없을 리가 없을 것이라는 우리의 지론이었다.
확실히 가이드북의 말이 맞았다. 양이 어마어마하다. 저렴한 가격에 배를 채운다면 이만한 곳이 없어 보였다. 닭튀김 역시 무난하게 상상한 맛이었다. 뭐 이 정도면 훌륭한 한 끼 식사다. 통으로 튀긴 것이나 간장소스에 볶은 닭은 정말 맛있었다. 하지만 복숭아 소스는 아니었다. 탕수육 정도의 소스를 생각했지만, 시럽 정도로 달달했다. 탕수육 소스도 밥과 먹지 않는데, 이 복숭아 소스는 더했다. 먹다 보니 짬뽕국물이 생각났다. 역시 한국인은 얼큰한 국물과는 뗄 수 없나 보다. 다른 친구는 매콤함이 당기는지 챙겨 온 고추장 튜브를 꺼내서 같이 먹었다. 한국식 치킨이 너무나도 우수한 탓에 여기 닭튀김은 그냥 그랬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맛은 있었다.
먹는 도중에 간간히 현지인 한 두 명이 들어와서 밥을 해결하고 나갔다. 혼밥 명소인가 보다. 식사를 마치고 길거리로 나섰다. 전통복장을 한듯한 여성분이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었다. 홀리듯 다가가서 입가심으로 하나씩 사서 입에 물었다. 부드러운 바닐라 아이스크림이다. 정오가 넘어가니 날씨는 더워지기 시작했고, 아이스크림은 안성맞춤이었다. 신기하게도 계핏가루를 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