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으면 안 돼.

아빠는 양장점 아들이야.

by 칠성상회

요즘 복동이는 콩순이 코디 놀이에 푹 빠져있다. 내가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어깨에 띠가 달린 종이인형놀이와 흡사한데, 종이옷 대신 마그네틱 옷을 콩순이, 밤이, 그리고 송이 몸에 가져다 대면 착 달라붙는 세련된 방식의 인형놀이다.


여느 때처럼 이른 저녁을 먹고 내가 빨래를 개키는 사이, 남편은 아가와 콩순이 코디 놀이를 하며 돌보던 참이었다. 한참 블라우스니 청바지니 옷의 종류를 말해주며 놀아주던 남편이 말했다.


“아빠 진짜 잘 알지? 왜 그러냐 하면, 아빠가 말이야, 양장점 집 아들이라 그래.”


빨래를 개키던 손을 잠시 멈추었다.


“할머니는 양장점, 그러니까 옷 만드는 일을 하셨어. 잊으면 안 돼. 아빠는 양장점 아들이야.”



시어머님은 막내인 복동이 아빠가 고작 중학생일 때에 남편을 여의고 육 남매를 키우셨다. 혼자 벌이로 자식들 모두 대학까지 마치도록 길러내셨으니 얼마나 고생하셨을지 나로선 상상해보는 것조차 어렵다. 마르고 작은 어머님의 체구로 길고 자주 애닳았을 시절을 어찌 헤치고 살아오셨을지 참으로 강인한 분이다.


그런 어머님이 요 근래 몸이 많이 편찮으시다. 지난해에는 한참 동안 휴업상태였던 가게를 자식들의 설득 끝에 아예 정리하셨다. 남편과 결혼할 때에 성큼성큼 앞서 걸으시면서 원단을 함께 고르며 설명해주시고, 세상에서 딱 한 벌 뿐인 원피스를 예복으로 만들어주셨던 어머님인데. 이제 어머님에게 양장일은 과거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어머님이 아직까지 손을 놓지 않고 계신 것은 우리 복동이의 작은 옷가지들이다. 아가가 니큐에서 작은 새처럼 위태롭게 누워 있을 적에 면회 오셔서 ‘아가, 내가 할머니야. 사랑한다.’라고 말씀하셨던 어머니. 커다란 사랑을 담아 하나씩 만들어주시는 아가의 옷들은 옷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보물들이다.


‘잊으면 안 돼. 아빠는 양장점 아들이야.’라는 말, 어쩌면 남편이 본인 스스로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쇠약해지시는 어머니에 대한 애달픔, 속상함, 감사함 같은 것들이 뚝뚝 묻어나 듣는 나조차 잠시 먹먹해지는 말이었다.


아빠가 되어 어깨가 무거워진 막내아들이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언덕으로 단단하게 계셔주시기를. 세 살 아가가 소녀로 자라 ‘할머니, 이런 꽃무늬는 안 입을래요!’ 투정을 부리는 날까지 어머님이 만드신 조끼, 고무줄 바지 같은 것들을 너무 애틋하게 생각지 않으며 입혀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