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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성상회 Mar 07. 2020

가루약을 먹이다가

엄마를 생각했습니다.

몇 주 전, 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아가에게 항생제와 해열제를 먹일 때의 일이다. 시럽에 가루약을 붓고 휘휘 저어 숟가락으로 먹이는 것은 아가가 네 살이 되도록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터였다. 하루에 세 번 일주일 치의 약이라 약봉지 뭉치는 지긋지긋하게 길었다. 복동이를 힘으로 붙들어 약을 흘려 넣으며 아름답지 못한 마무리를 한 어느 밤, 아가 옆에 누워 잠들기를 기다리다가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아유 지겹다. 이놈의 약. 며칠이나 더 이 노릇을 해야 하나 헤아리던 참이었다.


문득, 가루약을 섞는 내 모습에 겹쳐 스텐 숟가락에 흰 가루약을 새끼손가락으로 물에 풀어 먹여주던 우리 엄마가 떠올랐다. 마당에서 약탕기에 한약재를 달여 소고채 같은 막대 두 개와 면포로 솜씨 좋게 찌꺼기만 남겨놓고 한약을 짜내던 엄마의 손과, 마루에 앉아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어린 내 모습도.


소아천식 때문에 아주 어릴 적부터 자주 앓았던 나는 수시로 여러 가지 종류의 약을 달고 사는 아이였다. 얄궂게 나의 증상은 버스 한 번이면 되는 읍내 병원이 아닌, 시외버스를 한번 더 갈아타야 하는 옆 지역의 소아과 처방에 수그러들곤 했었다. 고된 농사일에 집안일,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는 일, 거기에 잦은 병원행.


아직 아기였던 동생은 등에 업고, 걸을 수 있었으나 숨을 꺽꺽대는 나는 앞으로 안고, 언니는 손을 잡고 걸려 버스를 두 차례 갈아타고 병원에 다녔다고 했다. 버스 안에서 그릉거리는 내 숨소리 때문에 어르신들로부터 걱정 섞인 꾸지람도 자주 들었고, 동생 기저귀라도 갈 일이 생기면 진땀이 나더라고 했다. 병원비가 모자라던 어느 날에는 고맙게도 외상을 해주어 위기를 모면했다는, 용감무쌍하던 우리 엄마는 그때 서른을 갓 넘긴 나이였다.


아직 한창나이에 하고 싶은 일도 갖고 싶은 것도 많았을 그 시절의 엄마는 스스로를 꾹 눌러놓고 고물고물 자라나는 새끼들을 위해 살았다. 대체로 즐거운 세월이었다고 하면 좋겠지만, 엄마도 별 수 없이 저절로 밝아오는 날을 지겨워하고 이따금씩 몰래 울기도 했을 것이다. 쉴 새 없는 일과 사이사이 수시로 한약을 달이고 가루약을 챙겨 먹이던 숱한 날들을 사무치는 책임감으로 견뎠을 엄마라도 가끔은 나처럼 투덜거리며 지겨워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났다. 그때로 돌아가 커피 한잔 같이 마시며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은 기분이다.


엄마의 나이를 처음 외워 말할 때 엄마는 서른일곱이었는데 어느덧 그 자리에는 아직도 어린애 같은 내가 있다. 그리고 청춘이던 엄마는 이제 어르신 대우를 무척 속상해하는 ’할머니’가 되었다. 엄마의 귀한 세월을 먹고 자라난 그녀의 자식은, 제 새끼에게 가루약을 처음 먹여보는 날에야 비로소 그 시절의 엄마를 진지하게 떠올려 본다. 그리운 마음은 이렇게 선명한데 햇빛에 색이 다 바래서 형상만 남은 사진처럼 이미지가 너무나 희미하다. 이제는 젊은 엄마의 얼굴과 목소리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 참 서글픈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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