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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성상회 Mar 01. 2020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이제 만 세 살이 된 복동이와의 입원생활은 예상했던 바를 가뿐히 넘어서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해가 바뀌며 생떼가 늘고 예민해진 내 딸의 컨디션을 어느 누가 고려해줄 것인가. 심장초음파와 엑스레이를 찍느라 녹초가 되어 (무려 칠 인) 병실로 돌아오자마자, 복동이의 손등에는 내 검지 손가락만큼 긴 주삿바늘이 꽂혔다. 겨드랑이 체온계는 질색인 복동이라도 별 수 없이 수시로 체온과 혈압을 체크받아야 했다.


자정부터는 전신마취를 대비하여 금식이 시작되었다. 끼니를 잘 먹지 못한 데다가 병원복, 주삿바늘, 좁은 침대 등 모든 상황이 스트레스였던 아가는 그때까지도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수액을 연결했다가 몸부림치는 바람에 바늘의 절반이 빠져 피를 본터라, 복동이는 허옇게 마른 입을 쩍쩍거리며 우는 수밖에 없었다. 남편과 나는 날카로워진 마음을 주체 못 하고 애꿎은 서로에게 티 내느라고 피곤을 한 술 더 끼얹었다. 병동에서 보내는 복동이와의 그 밤은 참으로 길고 길었다.




이튿날 아침, 수술은 열 시. 딸을 들여보낸 지 사십 분이나 흘렀을까. 복동이의 보호자는 수술장 앞으로 오라고 한다. 오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수술장 앞 한 귀퉁이에 웅크려 앉아 있던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문이 열리고, 수술복 차림에 마스크를 쓴 교수님이 언제나 그러했듯 의중을 읽을 수 없는 눈빛으로 우리를 찾았다. 몇 개월간 수도 없이 상상해 보았던 순간이었다. 피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어도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 남편과 나는 교수님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토씨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하여 바싹 다가섰다.


"... 기도가 꽉 막혀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아직 많이 좁지만 구멍이 좀 생겼어요. 그동안 소리가 안 났던 것은 캐뉼라 위 쪽으로 덧살이 생겨 막고 있어서였을 거예요. 덧살을 제거했으니 소리가 올라올 것 같습니다. 성대 한쪽의 움직임이 좀 둔하기는 하지만 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예요. 아기가 윤상연골이 잘 발달되지 않아 연골 이식 수술을 할 건데요. 수술은 대여섯 돌까지 기다리지 않고 좀 당겨서 올여름에 해봐도 될 것 같습니다...”


매 외래 진료마다 이제 그만 나가시라는 무언의 압박을 견디면서 악착같이 물어보던 엄마였는데, 얼어붙은 입으로 고맙다는 말 말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소리를 낼 수 있다고 하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여보세요, 사람들! 우리 딸이 소리를 낼 거라고 하네요! 말할 수 있답니다!


“고맙습니다." 얌전히 인사를 하고 나와 빨개진 눈을 마주친 우리는 잠깐 울었고 서로 꼭 껴안았다. 눈물은 나지 않고, 그 간의 긴장을 몸 밖으로 내보내듯 긴 한숨을 연거푸 내쉬었다. 수술 소견을 한마디 한마디 되새겨보는 사이에 전투력 만렙 상태로 몸부림치는 꼬마 폭군이 회복실 밖으로 나왔다.


약기운에 취해 자고 있을 틈에 짐도 싸고, 점심도 챙겨 먹으려 했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병원에 하루 이틀 더 머물러야 한다지만 그런 것쯤은 아무 상관없었다. 우리 딸이 소리를 낼 수 있다고 하여, 나는 우리 복동이와 이야기 나눌 날을 꿈꿔도 되는 사람이 되었으므로. 누가 상상할 수 있을까. 믿을 수 있을까. 그날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이들은 바로 우리 두 사람이었다는 것을.


나를 잠식하던 가장 큰 불안을 떨치고, 그 자리에 희망을 들여놓을 수 있다는 것, 딸에 대한 연민 대신 더 순도 높은 사랑을 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병원을 다녀온 지 여러 날이 지나도록 스프링 없는 침대에 몸을 던진 듯 아득하기만 하다.


이제 나는 다가올 시간을 기대하고 있다. 거짓말처럼 돋아날 잎들, 한여름 쏟아지는 빗소리, 눈부신 오렌지색 가을 햇살 같은, 한동안 나에게 별 의미가 되지 못했던 계절의 빛과 냄새를 복동이와 함께 새로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이런 글을 쓸 수 있게 되어 정말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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