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과 4월 사이
오늘이 5월 24일, 곧 들을 수 있을 거라던 복동이의 목소리는 아직이다. 대신 엄마와 아빠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시작했다. 너무나 신기한 딸의 언어들을 들을 때마다 귀하게 여겨 허겁지겁 적어두었다. 나름 열심히 준비했던 DELF A2를 끝마친 오늘에서야, 복동이의 첫 말들을 다시 한번 들여다본다.
’ 옷 벗겨줘요.’라고 말할 수 있다.
아기 적부터 보아온 책은 읽는 시늉을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숨소리와, 가래소리로만 전화기 옆에 있는 딸의 존재를 확인했었는데, ‘아빠, 고양이 (초콜릿) 사주세요.’라는 메시지를 전화기 너머 남편에게 전달할 수 있다.
속이 쓰려 엎드려 있는 나에게 ‘괜찮아?’ 하고 물었다.
물고기 장난감을 감추며 ‘꽃게랑 문어랑 없지?’라며 장난을 친다.
역시 물고기 장난감을 아침부터 가지고 놀다가 ’ 거북이랑 상어랑 놀아요.’라고 무려 세 단어를 붙여 말했다.
첫 ’ 엄마!’
방에 들어와 공부를 시작하려니 아빠랑 놀던 효원이 외치는 소리. 엄마 엄마 엄마! 두두두 뛰어와 방문을 똑똑 두드리며 엄마! 어찌 문을 열지 않을 수 있을까. 네가 나를 나만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로 엄마라고 부르고 있는데.
놀던 점토가 서랍 아래로 들어가니 ‘여기 아래로 들어갔어.’
잠자기 전 놀던 장난감들에게 ’ 안녕, 복동이 코 잠자러 간다.’
쉬야를 하고 기저귀를 빼온다. ‘ 엄마, 기저귀 갈아 주세요.’
아빠 어디 갔어? ’ 아빠 학교 갔어.’
‘ 아빠 김밥 먹어, 엄마 김밥 먹어.’
’ 얼음은 냉장고에 있지?’
‘ 엄마가 닦아줄래?’
비눗방울 그려보자 ´싫어! 딴 거!´
’ 엄마 씻고 왔지?’
’ 아빠는 화장실 갔지?’
‘귀가 간지러워.’
‘싫어, 안 할 거야.’
‘엄마, 아빠 어디 갔어?’
‘엄마, 펭귄 없어졌네.’
바나나 옷 입을까? ’아니, 싫어.’
’ 아빠, 문 열어주세요.’
’ 아빠, 책 읽어줘.’
’이게 뭐야?’
’ 아기양이 두 마리 있어요.’
‘누구야?’
’ 강아지가 노란 장화 신어.’
‘할머니가 만들어줬어요.’
‘엄마도 좋아.’
’ 고양이 여기 있잖아.’
’ 싫어, 저리 가!’
‘ 세이펜 다 놀았어.’
’ 아빠한테 눈물닦(아달라고 하)기 싫어.’
’ 이거 거북이 아냐, 이거 개구리잖아.’
‘엄마, 복동이 배고파. 밥 먹을래.’
복동이의 말수는 나날이 느는데, 알아듣지 못하여 생떼로 이어지는 순간이 허다하다. 글로는 행복하다고 적어두었었지만 (그리고 진심이었지만) 현실에선 우악! 소리를 지르고 싶을 만큼 답답한 육아의 날들이 꼬리를 문다. 그럼에도, 이만큼의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것에 감사하며 딸의 소리를 묵묵히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탓에 올해의 봄은 무척이나 우울했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소리에 대한 단단한 희망과, 퐁퐁 터지는 아가의 새 말들로, 남편과 나는 복동이를 만난 이래 가장 아름다운 계절을 지나고 있다.
아, 지난 주 아가가 기어다니기 시작했을 때부터 쓰던 원시 안경을 드디어 벗었다.
“아가, 이모들, 고모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다 축하한대. 근데, 엄마랑 아빠가 제일 많이 축하해. “
서울대 병원에 다녀온 날 녹초가 된 남편이 복동이에게 말했다. 나는 분명 행복했는데도 눈물이 났다. 벅찬 기분이라는 신기한 감정을 복동이 덕분에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