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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성상회 Nov 16. 2020

복동이는 용기왕

수술 D-2

수술 이틀 전 밤이다. 입원한 지 나흘 차, 복동이는 너무나 의외로 잘 먹고 잘 자고 잘 논다.


지나가는 오빠에게 같이 가자며 따라가기. 장난감과 스티커에 미련 한 보따리인 복동이를 위해 편의점 사장님께서 문 닫을 시간이라며 불꽃 연기. 남의 병실이나 간호 데스크 구경하러 뽈뽈 들어가기. 주스 가게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춤추기.


잘 먹고 잘 자는 것도 고마운데 하루에도 몇 번씩 큰 웃음을 주는 우리 복동이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최고 멋쟁이 용기왕이다.




그런데 오늘은 오전부터 간호사 이모가 항생제를 들고 올 때마다 팔을 내주기 싫어하고, 오후엔 땀을 흘리더니, 저녁엔 울기 시작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작은 혀가 파르르 떨리는 진짜 울음이었다. 아주 독한 약이라 하루도 못 채우고 주사 라인을 바꿔야 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라고 하는데, 나는 그걸 울음이 터지는 걸 본 이후에나 알았다.


팔이 붓기 시작했다고 하여 다른 손으로 바꾸어 라인을 잡을 때에 서러운 눈물이 복동이의 눈에서 코에서 줄줄 흘렀고 목덜미는 땀으로 흥건해졌다. 그리고 이 대단한 꼬마는 주사를 새로 잡은 후 금세 통증이 가셨는지 잠투정 한번 없이 잠이 들었다.




병원에 와서는 낮잠과 밤잠을 매번 내가 재우고 있다. 수술 후에 며칠 밤낮을 중환자실에서 혼자 자게 될 아가가 맘에 걸렸기 때문이다. 복동이가 코잠을 자는 동안에도 엄마가 계속 옆에 있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집에선 복동이가 눈을 감을 때까지 지켜본 적이 드물었는데, 달리 할 일이 없는 병원의 좁은 침대 위에서 나는 딸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건넸다. 작은 몸을 모로 세워 물끄러미 내 얼굴을 보다가 어깨에 얼굴을 묻고, 한참 눈을 끔벅거리다 복동이는 대체로 매번 행복하게 잠이 들었다.


오늘 밤도 역시 복동이 옆에 누워 잔뜩 잠이 온 옆얼굴을 바라보는데, 뺨에 한 줄 소금기가 반짝거린다. 마음이 좋을 리 없다.


아무것도 없는 입원실 천장을 보면서, 링거 바늘 위에 감긴 반창고를 만지작 거리면서, 튀어나온 주사 줄을 손가락으로 튕겨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제발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라. 사랑받았던 기억만 남기고 자라면서 금세 잊어버려라.


이제 열두 시가 넘었으니 수술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꽤나 큰 확률로 이것이 끝이 아닐 수도 있음을 알기에 두렵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 가족에게 직진 말고는 선택지가 없다. 잠이 오질 않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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