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삶의 고통에 대한 비평
1. 격기3반에서 말하길, 삶은 신체를 소모하므로 인간의 기본값은 고통이다. 유사한 맥락에서, 하루를 살았다는 것은 하루를 죽어간다는 뜻이다. 텔로미어의 기적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노화는 인간의 숙명이며, 죽음으로 향하는 과정이다. 낡고 병들어가는 육신은 고통을 수반한다. 신체는 정신을 지배한다. 신체의 고통이 인간을 지배한다. 그러므로 삶의 기본값은 고통이다.
2. 신체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유물론적 사고가 아니더라도, 생즉고의 관념은 역사적으로도 국경을 초월한 스테디셀러였다. 내가 매번 인용하는, 내 18번 레퍼토리를 담당하는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삶을 쾌락과 고통의 반복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그 중 쾌락은 찰나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시간은 고통으로 가득차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것을 보면, '삶은 고통'이라는 명제를 참이라고 선언하고 싶은 - 논리학 전공자들이 알면 극대노할 - 욕구가 무럭무럭 차오른다.
3. 그렇다면 삶은 왜 고통과 견련성을 가지는가. 하이데거는 답한다. 우리는 세상에 던져진 존재다. '납골당의 어린 왕자'의 저자, 퉁구스카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우리는 원한적 없는 모습으로 세상에 던져졌다. 그러므로 삶의 한계는 명확하다. 욕망은 끝이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나'의 모습은 원한적 없는 초라함이다. 그러므로 매번 욕망을 충족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 때의 갈증과 굶주림이 우리를 괴롭게 한다. 삶은 곧 욕망의 골짜기에서 헤매는 과정이다.
4. 삶이 고통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견뎌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주는 일화가 존재한다. 미스터 갈리폴리는 조울증에 시달렸는데, 본인의 우울함과 부정적인 정서, 자살 충동을 블랙 독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평생을 투쟁했다. 미스터 갈리폴리의 이러한 의지는 곧 생의 전반으로 이어졌고, 이는 곧 나치라는 인류의 공적에 대한 결연함으로 이어져 2차 대전의 승리를 이끌게 된다. 고통에 대한 투쟁, 끝없는 저항과 결연한 항전만이 승리와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 미스터 갈리폴리는 답한다. 삶은 고통과 그에 대한 투쟁의 연속이다.
5. 작년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 역시 검은 강아지를 입양하게 되었는데, 그 활동력과 힘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럴 때마다 미스터 갈리폴리에 대한 예찬인 영화 '다키스트 아워'를 보곤 했는데 그 중 이 장면, 이 대사가 내 마음을 떨리게 하곤 했다.
"우리는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6. 삶이 너무나 고통스러울 때, 내 안의 빨치산(partisan)이 고통이라는 적에 의해 궤멸되려 할때. 농담은 그만두고, 내가 차라리 죽는게 낫다고 여길 정도로 괴로울 때 이 말을 반복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제안해본다. 인간의 기본값은 고통이다. 그렇지만 삶의 기본값은 투쟁이다.
7. 우리는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