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곱게 물들어 가고, 하늘이 파랗던 눈부시게 아름다운 가을날이었다
평안이와 만나기 위해 새벽에 일어난 엄마아빠는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 6시 19분에 병원을 향해 출발했어. 병원에 도착했을 때 평안이가 아침 9시 첫 수술 일정이었지만 새벽에 응급 분만이 두건이 있어서 분만실은 이미 분주해 보였고 간호사들도 지쳐 보였어. 엄마는 수술에 앞서 태동검사와 원장님의 수술 전 진료를 받으며 기다렸고, 다행히도 수술 들어가기 전까지 진통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단다.
그런데 여기서 살짝 섭섭한 문제가 생겼어. 아빠는 8시 35분에 6일 동안 지낼 병실을 고르러 입원실로 올라간 동안 엄마는 수술실에 들어갈 마지막 준비를 하고 있었나 봐. 50분에 엄마가 수술실로 들어갈 거란 얘기를 처음에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입원실을 고르자마자 후다닥 내려왔는데, 분만실 들어가는 문이 열리자마자 엄마가 수술실로 막 들어가려는 순간이었고, 간호사 선생님도 수술장 들어가기 전에 얼굴 보고 들어가라고 말씀해 주셨어. 아빠가 조금만 늦게 내려왔어도 수술실 들어가는 엄마 얼굴을 못 볼뻔했단다.
병원에 종종 올 때 받는 느낌 중의 하나는 병원이라는 공간은 일반인들에게는 인생에서 흔히 겪는 경험도 아니고 건강이라는 문제가 직결되어 있는 데다가 특히 수술의 경우에는 생사가 달라질 수도 있는 문제라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들게 마련이고 그 감정을 소화할 시간이 필요한데, 의료인들에게는 이게 일상이자 업무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불친절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일반인이 보기에는 매우 덤덤하고 사무적으로 보이기도 해. 그러다 보니 그 두 개의 상반된 감정의 온도가 만나서 약간의 불편한 감정이 들곤 한단다
방금의 상황에서도 아빠는 엄마가 수술장 들어가기 전에 용기도 주고 충분히 얘기도 나누고 싶었는데, 아빠가 서두르지 않았다면 보지도 못할 뻔했고 얼굴을 잠깐 보는데도 몇 마디 하기도 전에 커튼을 휙 쳐서 조금 서운했단다.
어쨌든 그렇게 수술이 시작되었고, 15분 후 평안이는 세상에 나왔단다. 기다리는 15분의 시간이 어찌나 길던지. 아빠는 수술실에 못 들어가고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9시 17분에 어떤 간호사가 수술장 쪽으로 들어가면서 열린 문틈사이로 평안이의 우렁찬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단다.
그리고 9시 20분이 되자 간호사분이 나와서 아빠를 데리고 들어가서 평안이를 만나러 갈 수 있었단다. 작고 여린 평안이와의 첫 만남. 벅찬 감정에 눈물이 앞을 가리려고 할 때쯤 역시나 병원에서는 그런 감정을 느낄 틈새를 주지 않았단다.
아빠에게는 탯줄을 자르고 평안이를 잠시 물에서 수영시키는 감동적인 임무를 수술실에 갑자가 불려 들어가서 약간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맡게 되었지. 이미 아빠가 무슨 일은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처음 들어가 보는 공간에서 익숙하지 않은 것을 하려니 쉽지 않았단다. 들어가자마자 탯줄을 자르는데 처음에 반쯤 자르니까 느낌도 이상한 데다가 피가 콸콸콸 흘러서 정신이 없는 와중에 간호사님은 나름 잘 자를 수 있게 잡아주셨는데, 하필 그분의 장갑색이 탯줄 색이랑 너무 비슷해서 탯줄 자르다가 손가락을 자를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과감하게 자르지 못하고 세 번 만에 자르게 되었어. 하도 주저하니까 옆에서 이러면 아기가 아파한다고 농담도 하시더라고
그러고는 옆에서 바로 평안이를 물에 잠깐 씻기는데 처음에 분명히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게 하라고 하셔서 살살 담그고 있는데 또 가슴이 물에 잠겨야 한다면서 푹 담그시더라고. 아빠는 이렇게 작은 태아를 안아보는 게 처음이다 보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데 말이지
이런 에피소드들에도 불구하고 평안이를 처음 봤을 때의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단다. 정말 작디작은 아이가 힘차게 울고 있었고, 또 그렇게 울다가 아빠 목소리를 들으면 울음을 멈출 때의 감동이란. 간호사선생님도 아빠랑 교감이 잘돼있는 것 같다고 하셨단다.
그렇게 평안이를 씻겨서 신생아실로 보내고 아빠는 다시 엄마를 기다리면서, 양가에 전화를 드려 소식을 전했단다. 이게 출산 후 아빠들의 중요한 임무 중의 하나지. 한 시간 정도를 기다리니 엄마가 회복실로 나왔고, 멀끔하게 단장한 평안이 와도 다시 한번 짧은 만남을 가졌단다. 그리고는 회복실에서 엄마의 출혈이 멈추기를 기다린 후 입원실로 올라갈 수 있었어.
이렇게 평안이와의 감동적인 만남이 이루어졌지만, 제왕절개 수술의 고통은 후불제라 했으니 엄마는 마취가 풀리면서 고통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