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여기저기 무료 온라인 수업과 논문 쓰기 특강들이 늘어나는 요즈음에도 논문 쓰기는 단순히 수업 한 두 번 듣는 것만으로는 배우기 어렵다.
형식적 지식은 글, 말 등으로 표현되어 전달될 수 있는 형태의 지식이다. 우리가 흔히 듣는 수업이나 교과서의 지식은 형식화된 지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그에 비해 암묵적 지식은 전수가 어렵다. 예술인이 영감을 받아 작품을 만드는 과정, 김연아 선수가 점프를 자연스럽게 뛸 수 있는 비결 등이 말 혹은 책에 나온 내용만으로 전달이 되겠는가?
그래서 후자의 경우 익히 알려진 바대로 ‘도제’라는 방식을 통해서 장시간을 거쳐서 전수된다. 대학원 생활 역시 도제와 비슷하다. 논문을 쓰는 과정은 지식을 아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아는 지식을 연구 문제화하고 이를 증명하는 능동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한두 번 수업을 듣는 것만으로 방법을 습득하기 어렵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대부분의 대학원생들이 지도교수를 정하고 연구실에 들어가서 평균 3~5년씩 논문 쓰는 방법을 배우는 기간을 거친다. 바로 도제 시스템에 기반하여 논문을 쓰는 방법을 훈련하는 것이다.
내가 대학원 조교 생활을 거쳐 본 바에 따르면 대학원 조교들은 할 일이 너무 많고 바쁘다. 대학원에서 졸업을 위해 가장 주요한 요건이 ‘학위논문’인 것은 논문 작성법을 숙달하는 것이 대학원생으로서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요건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대학원생이 논문 쓰기에 익숙해져서 졸업을 한다기보다는 논문 쓰는 것을 1~2회 체험해 보는 것에 만족하고 졸업을 하게 된다. 젊은 나이에 남들이 한참 사회경력도 쌓고 돈을 벌 시기에 3~5년의 시간을 들여서 ‘논문 쓰기 체험’을 하고 졸업하는 것이다. 내 말이 틀린 말처럼 들리는가? 그렇다면 주변에 석사 혹은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들에게 졸업 이후에 논문을 몇 편이나 냈는지를 물어보라. 구두방에서 구두 만드는 일을 3~5년 (하루 종일) 배운다면 아마 웬만한 구두는 쉽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집 만드는 일을 배운다면 어떨까? 논문 쓰기가 어려운 일이라면 그것을 해 낸 사람은 자기 이름으로 된 책이라도 쉽게 낼 수 있어야 정상 아닐까?
나는 이 시리즈 글의 제목을 처음에 “독학으로 논문 쓰기”라고 정했다. 우리나라 대학원 시스템은 다양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고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허나 다시 아이러니다. 앞서 논문 쓰기는 수업 듣는 것만으로 배우기 어려운 고난도 기술이라고, 논문 못 쓰는 대학원생에게 면죄부를 주는 듯하더니 다시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으니 독학으로 쓰라고 하니 이게 무슨 망발인가? 정말 글을 팔아먹기 위한 헛웃음 나오는 전략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문을 (거의) 독학으로 써야 하는 수많은 대학원생들은 여전히 있을 것이고 이 책이 그들을 위한 필독서는 아닐지언정 작은 위로는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글의 제목을 “독학으로 논문 쓰는 안내서”로 고쳤다. 제목 앞에 괄호치고 ‘어쩔 수 없이’라는 말을 넣는 게 맞겠지만 나의 글 쓰는 수고를 보아서 그 정도는 눈감고 넘어가기로 하자.
오늘도 다양한 조교 업무로 바쁘지만 내일은 반드시 최고의 (학위) 논문을 남기고자 노력하는 고단한 대학원생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아마 이 책을 접할 때가 되면 대학원 생활이 여러분이 생각하는 만큼의 꽃길은 아니었음을 절감하고 있을 시기이다. 그래도 기왕에 길을 왔으니 무라도 썰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이 글을 계속 읽어주기 바란다.
본 글에 쓰인 이미지는 www.pxhere.com의 무료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