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바이올린
1980년대 초반이었다. 한 학년에 한 반만 있던 시골 초등학교에서 근방의 소도시에 있는 초등학교로 전학을 나왔다. 부모님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구체적인 교육방법은 제시하지 않으셨지만 그때도 방향은 도시였다. 그것은 지금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듯하다. 아이들에게는 보고 듣는 환경이 교육인 것은 사실이다. 시내에는 옷가게 식당 슈퍼마켓 그리고 대중목욕탕이 가까웠다. 무엇보다도 언니의 눈길을 잡은 것은 청과상회 주인집 딸이 운영하는 피아노 교습소였다. 또래의 여자 아이들이 방과 후에 들러서 수다를 떨던 곳. 캔디 만화책도 보고 소 한 마리만 한 피아노에 손가락을 올리고 눌러대는 악기 피아노가 있던 곳.
언니는 이전 학교에서도 여러 가지 악기에 관심이 많았다. 저학년 때 흔히 다루는 캐스터네츠 탬버린 같은 타악기부터 피리 실로폰 멜로디언까지 재미있어했다. 국어 산수 공부는 하지 않아도 음악 과목은 복습에 예습까지 했다. 새 학기 책을 받으면 음악책 한 권을 하루 이틀 만에 끝장까지 훑어 넘겼다. 시골 학교에서는 풍금이 있었다. 선생님 전용 악기인데 딱 한 명이 방과 후에 지도를 받는 아이가 있었다. 다른 초등학교 교사의 딸이었고 농부의 딸인 언니는 아쉬워했다.
-우리 아버지도 다른 학교 선생님이라면 나도 풍금을 배울 수 있을 텐데…
시내에 살고 보니 선생님의 딸이 아니어도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들이 많았다. 사진관 둘째 딸도 금은방의 숙희도 장의사집 두 딸도 피아노 교습소를 다니고 있었다. 피아노가 원래는 서양악기이지만 우리나라는 애초부터 음악이란 과목을 서양악으로 교육을 시작했기 때문에 피아노의 기원 같은 것은 중요하지도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저 호기심을 사로잡은 피아노 소리는 교습소 앞에서 언니의 발걸음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나도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 피아노를 치고 싶다.
언니는 하루에도 몇 번씩 피아노 피아노 노래를 하며 엄마의 뒤를 따라다녔다.
-피아노까지 가르칠 형편이 안되는구나…
엄마의 대답을 듣더니 언니는 지난달의 큰 달력 한 장을 쭉 찢었다. 반을 접고서 뒷면의 백지에 피아노 건반을 그렸다. 검은건반을 까만색 크레파스로 칠하고 방바닥에 펼쳐 놓았다. 그리고는 종이 달력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소리는 언니의 입에서 나왔다. 손가락 끝에는 까만 크레파스가 묻었다.
-솔 미미 파레 레 도레미파 솔솔솔
엄마가 아버지를 설득했을까. 가을 사과를 팔고 나면 피아노 교습소에 보내주겠노라고 하셨다. 사라지는 말이 겁이 났는지 언니는 엄마의 말을 지켜야 할 약속으로 다짐까지 받아두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바이엘 상권부터 시작해서 졸업할 때쯤 언니는 체르니 30번 교재를 들고 다녔고 하농과 부르크뮐러 그리고 소나티네도 배우고 있었다. 그러나 언니의 친구 중에는 이미 베토벤과 쇼팽을 연주하고 대회에 나가는 또래들이 있었다. 우리나라가 클래식 음악가들의 층이 두텁다고 한다. 왜 아니겠는가. 1980년대 당시 내가 살던 소도시 초등학교 6학년에만 해도 한 학급에 두 세명 정도는 벌써 전공으로 피아노를 치는 아이들이 있는 정도였으니 말이다.
언니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여자중학교에 입학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생떼를 부리는데 요인은 바로 바이올린이었다. 학교에 현악부가 있는데 지금 들어가도 늦지 않다는 것이었다. 다른 학생들은 첫 학기부터 배우기 시작했지만 2학기부터 시작해도 자기는 더 잘할 자신이 있다는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어느 날 언니의 품에는 바이올린이 안겨 있었다. 종이가 아닌 실물 바이올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