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 우림의 시점
이별은 항상 슬프면서 왜 늘 슬퍼해야 하는 걸까. 한국을 다녀올 때마다 팔 순을 넘기신 부모님들의 슬픔 앞에선 죄인이 된다. 연세가 드신 부모님께는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것 자체가 불효를 하는 일이다. 막상 함께 머물며 1박 2일만 지나면 서로 잔소리를 하며 티격태격하는 모녀관계인데도 말이다. 할머니가 되신 엄마와 일주일을 함께 머물고 떠나올 때 엄마는 또 그러셨다. 오늘이 오는 날이면 얼마나 좋겠나. 하루만 더 있다 가면 얼마나 좋겠나. 2년 만에 만난 딸을 또 멀리 보내며 그림 한 편 보듯이 일주일이 지나갔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번의 이별은 좀 달랐다. 엄마가 한 마디를 더 보태셨다. 너도 아들을 군대 보내고 외국으로 나가야 하니까 얼마나 마음이 그렇겠나. 하시면서 이별의 아쉬움을 거두셨다. 엄마도 이제 돌더미 같은 마음으로 하는 이별에 면역이 생기신 걸까. 엄마는 나를 싱가포르로 보내고 싱가포르에서 나는 아들을 한국으로 보냈다. 인생이 이런 거다.
2021년 8월은 아들의 군입대가 아니라면 한국을 다녀올 생각조차 하지 못할 시기이다. 신체검사를 받기 위해 입국을 했던 아들이 1월에는 할아버지 댁에서 2주간 격리를 했었다. 싱가포르에 돌아온 후에는 격리 시설에서 2주간 머물렀다. 격리 비용으로 자그마치 $2,000을 지불해야 했다. 그리고 8월 훈련소 입대를 위해서 남편과 나 그리고 아들은 싱가포르에서 각 $160을 코로나 검사비로 지출을 하고 음성 확인서를 한 장씩 받았다. 한국에 도착할 때 제출해야 했다. 도착 직후 보건소에서 코로나 무료검사 1차, 6일 후 2차 검사. 싱가포르에서는 외국인이었지만 모더나 백신 2차 접종을 모두 무료로 마친 상태였다. 다행스럽게도 이 시기에는 한국 입국 시 백신 접종 완료자들이 자가격리 면제를 받을 수 있어서 격리는 하지 않았다. 만약 격리를 해야 했다면 입대하는 아들을 혼자 보낼 생각이었다.
당시 싱가포르는 거주 외국인 포함 전 국민 백신 접종률이 70%를 넘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두기나 외식 금지 등 조금 완화된 때에도 테이블에 앉는 인원수 제한이 철저했다. 어기는 사람은 가차 없이 벌금을 냈다는 뉴스가 나오곤 했다. 도착한 한국에서도 뉴스 속보로 코로나 소식이 들렸고 휴대폰에는 귀찮을 정도로 알림이 울렸다. 2년 만에 한국에 갔지만 부모형제를 만나는 일조차 조심스러웠다. 이틀을 예정했던 형님댁도 하루만 만나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도 차 한 잔으로 그야말로 얼굴만 보고 헤어져야 했다. 행동반경이 축소되었고 간소화되었다. 낯선 풍경들이지만 안전을 위해서는 지켜야 하기에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코로나가 범접하지 않는 곳이 있어 보였다. 남편의 출장기간으로 며칠 묵었던 서울의 호텔에는 호캉스를 즐기는 가족 친구 단위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옆 건물의 백화점도 손님으로 가득했다.
코로나 시대에는 한국에서의 출국 준비도 분주했다. 싱가포르 정부에 제출하기 위해 12만 원을 지불하고 일반병원에서 코로나 검사 후 영문 확인서를 받았다. 싱가포르 정부에는 입국 허가서를 신청해서 받아야 했다. 다행히 한국에 대한 경계가 한 단계 풀려서 자가격리 7일만 하면 되었다. 운이 좋았다. 살림살이가 있는 싱가포르에 입국을 하지 못할 것으로 각오하고 한국에 갔었다. 아들 군입대는 따라가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 강행했었다. 싱가포르에 도착하자마자 공항에서 검사를 받았다. $160을 지불했고 결과는 음성이다. 7일 격리를 하는 동안 전자팔찌까지 차고 있었다. 재검사를 받을 때는 $120을 냈다. 안전이 중요한 것은 당연한데 해외를 오가는 일에 코로나로 인한 지출이 과하다. 나의 시간과 재정적 지출을 누군가 수입으로 챙기는 건 아닌지. 규칙대로 하고는 있지만 불합리하다는 생각과 불리한 입장이라는 기분이 이 시점에서 슬며시 올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