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 추석

열대 우림의 시점

by 익소라


추석이다. 싱가포르에서는 명절이 아니고 평일이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남편은 작은 방으로 출근을 하였다. 아직도 집 밖은 코로나가 사람들을 집 안에 가두고 있다. 아침에 한국에 계신 부모님들께 전화를 드렸고 이제 시댁도 친정도 명절을 간소하게 지내고 있다. 나는 며칠 전 남편의 생일에 먹은 딤섬을 뭉뚱그려 명절 음식으로 간주하기로 한다. 아침 식사는 빵과 커피로 했다.


어린 시절의 명절을 떠올리면 이보다 더 즐거운 날이 없을 정도로 신나는 날로 기억을 한다. 일 년 중 새 옷을 입는 날이고 멀리 사는 친척들을 오랜만에 만났다. 어른들은 용돈을 주셨고 사촌 육촌 아이들과는 하루 종일 논밭과 산을 뛰어다니며 재잘거렸다. 때가 되면 차례 음식으로 배를 불리고 놀다가 배가 고프면 명절 음식으로 무엇을 집어 먹어도 맛이 있었다. 이런 추억은 초등학교 시절로서 지금 생각해보니 길지가 않다.


중고등 학생 시절 그 쯤 어디엔가 사춘기가 잠적해 있었을 것이다. 명절에도 학교에서 받은 숙제거리가 산적처럼 꽂혀 있었다. 국영수 과목으로 예체능을 대체시켜 버렸고 입시과목에 밀려 소설책도 금지서에 해당되었다. 영어 점수가 나쁜 편은 아니었는데 해외에 살고 보니 그 영어는 벙어리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무튼 숙제를 하다가 문득 맏며느리인 엄마를 볼 때면 거지꼴이었다. 맏며느리는 명절 며칠 전부터 명절을 치렀고 명절 당일에도 예쁜 한복을 입기는커녕 몸배바지만 펄럭거렸다. 엄마를 위하여 스스로 부침을 부쳐 드렸던 나의 십 대.


둘째 아들에게 시집을 갔다. 아뿔싸 어머님이 맏며느리이시다. 명절만 되면 시댁의 부침을 부치고 있었다. 부침을 부칠수록 어른이 되어가는구나 싶었다. 쌓인 그릇을 닦는 일이 인생이구나 싶었다. 그래도 나의 아이들이 명절 음식을 먹고 제 사촌들과 재미있게 지내니까 그 모습이 흐뭇했다. 어린 시절의 즐거운 명절이 내게도 있었듯이 수고하신 엄마의 모습대로 나도 해야 하는 일이라 여겼다. 가치라는 것은 늘 상대적이다. 타국에서의 이 시점에 내가 명절을 평일로 지내는 대신 아이들은 대추가 익는 가을날의 추석 그리고 어우러지는 보름달이 무슨 맛인지 잘 알지 못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