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 월요일

학씨

by LYN


그간 많은 일이 있었다. 막냇동생과 폴란드의 북해 그단스크로 여행을 다녀왔고, 공장 노가다를 다녀왔으며, 드라마 3개를 정주행 했다. 아, CAE 시험 준비반도 개강했다. 주말 노가다 이후로 계속 초주검이라 지금도 반수면 상태로 글을 쓴다.


한편 한동안 브런치 로그인이 안 되어 애먹었다. 먼젓번 친구가 클래스 101 강의를 같이 듣자고 카톡 계정을 공유해 주었는데, 결론적으로는 그것도 잘 안 돼 포기했지만, 이후부터 브런치에 로그인할라치면 계속 친구 계정으로 들어가졌다. 그럼 로그아웃은 어떻게 하는지, 계정을 어떻게 바꾸는지 한눈에 들어오지가 않아, 이리 헤매고 저리 헤매다 결국 짜증스러워 집어치우던, 근 한 달이었다. 브런치 팀은 인터페이스를 좀 직관적으로 바꿔야 한다. 아니? 좀만 침착하면 쉽게 해결될 일인데? 할 수도 있겠지만 이처럼 사소한 게 발에 채일 때 갑자기 내부에서 펑하는 기분을 아는가. 그러다가 다 하기 싫어지는 기분을 아닌가. 병원엘 가던지 나 원. 그러던 오늘은 좀 다시 시작하자는 결심이 들었다. 아무래도 노가다가 힘을 다 빼버려 그런 것 같다.


노가다 이야기를 먼저 시작하고 역순으로 기억을 되짚어 봐야겠다.


동유럽에는 한국 공장이 많다. 인건비가 싸서 그런가? 서로서로 가깝기도 하고. 그런고로, 단순 알바를 하자면 할 수 있는데 마침 개중 모 시설에서 엄청난 물량 펑크가 나는 바람에 동네 아주머니, 백수 청년, 유학생, 다 긁어모아 주야로 공장을 돌리는 일이 일어났다. 지인 찬스로 야간작업을 맡아 들어가게 되었는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공주라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나름 먹물걸로 살았다. 해본 일 중 가장 고됐던 것은 영화 일이었는데, 그것은 사랑으로 버티었다. 되려 고됨을 통해 엑스터시에 들어간다 해야 하나... 알바 고민하는 청춘들에게 강추한다. 진짜 개 같고 재밌다.

각설하고, 이야 나이 서른에 처음으로 공장 일이라는 것을 해보았다. 게다가 비상사태 한가운데 들어간 것이라, 관리자들은 초긴장 상태로, 화장실 한번 다녀올 때마다 닦달질이었다. 여러분이 잘못하면 제가 깨집니다. 신경 써주십시오. 며칠 째 추심을 받고 있습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물량이 안 나옵니다. 속도를 올려야 합니다. 쉬는 시간은 없습니다. 화장실만 빠르게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사람이 어떻게 12시간을 내리 일한단 말인가? 게다가 새로 투입된 사람이 업무가 손이 익기까지는 당연히 얼마간 소요되는 것 아닌가?(아닐 수도 있다. 내가 바보일수도)

이제 막 애기 아빠 된 듯한 젊은 주재원이 저 역시 12시간을 서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사정인지 짜증인지 모를 말을 반복 반복하는데, 보는 심정이 복잡했다. 내 알 바인가, 와, 저렇게 열심히 애쓰는데 좀 협조하자, 같은 양가적 마음이 시계추처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했다. 그는 발등에 불붙은 사람- 혹은 모가지가 위태로운 사람치고는 아주 나이스하고 친절했지만(영화 현장에서 개 같이 굴던 나, 그리고 다른 선배들을 생각하면 그는 천사다) 한편 '아이 저 새끼가 진짜' 같은 말이 자꾸 입에서 오물오물 맴돌아졌다. 어쩔 수 없었다. 아주 달콤한 액수였지만 내 성격 상, 며칠 더 있다가는... 글쎄.... 노조 결성... 빨간 머리띠.... 러다이트... 고공농성....


그렇게 이틀하고 도망쳐 나와, 참, 직장 일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공장 일 뿐만 아니라 직장 일도 해본 적 없다. 그러니까, 사기업 근무 경험 말이다. 대부분 학교 내지 연구소에서만 일을 했고, 외에는 공적 자본으로 운영되는 협동조합에서 활동가 일을 했었다. 그러니 이렇게나... 본격 자본주의는 난생처음이었다. 약간 충격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말 이렇게 산다는 말인가? 이렇게 일하고서 입금되는 재미로 살아가는 것인가? 이 모든 것 가운데 조금 더, 조금 더 많은 돈을 점유해 가는 재미라는 건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다 같이 멈춰!

이 시대는 어떤 인간과 어떤 세상인가? 사실 그냥 농부가 현장만 달라진 것뿐일까? 들판에서 공장으로... 착취는 내내 똑같고... 성실하고 순하게 살다 죽는 인생의 반복 또 반복... 본사에서 일손으로 파견한 비상근무 인력 중에는 이미 정년퇴직 했지만 회사의 부탁으로 조금 더 계시던 모 파트 차장님이 있었는데, 쳐다보면 아련한 마음이 드는- 후들후들 할아버지였다. 그런 양반을 댁에나 좀 모시고 예우나 좀 해드리지 굳이 굳이 먼 나라 이국으로 야간근무를 보내다니, 이거 아주 예의 없는 새끼들 아닌가. 전말은 사람들이 다 출장을 슬슬 피하길래 당신이 부러 나셨다고는 하던데, 고하 간에 아주 개싸가지들이다.

모르겠다. 애사심인지, 뭔지. 무릎도 안 좋은 양반이 얼마나 최선으로 성실하게 임하시던지, 엄숙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대충 태가, 평생을 그리 사신 분 같았다. 진짜 농부이신 거다. 돌아오는 길에 한 차에 탄 다른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웠는데, 그분의 그런 성실함은 애사심이라기 보다도 그냥 태도라고. 한 사람이 사는 태도. 그러니까, "일 하세요" "네" "더 하세요" "네" 이렇게 흘러가는.... 요 "네"는... 얼마나.... 약하고... 순하고... 억울하고... 대단한가.... 그렇게 농부처럼 태어나고 죽는 인간들에 대해서는 경이롭고 짜증스러운 마음이 든다.

혼자 '이게 뭔가' 얼떨떨한 생각이 가시질 않는다. 3살짜리 굴뚝청소부... 거대한 기계 장치가 절대 멈추지 않는 이미지, 21세기이다. 혼자 산업혁명 체험하고 우리 시대에 대해 생각까지 해본, 그런 보람차고 개 같은 시간이었다. 어차피 이게 우리 시대라면 비욘세 여드름 짜주는 일로 취직하고 싶다.



그리고 북해와 드라마에 대해서도 쓰려고 했는데 딱히 할 말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드라마는 다 짜증 났고, 북해에서는 '아, 이거 이렇게 할 걸' '더 좋은 게 있을 것 같은데' 같은 생각을 많이 했다. 바보 아닌가. 시간 내서 드라마 보고 욕해, 돈 내고 여행 가서 욕해, 짜증과 불만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동생은 명상을 하라고 한다. 잘 안 된다. 훈련이 필요하려나?

영어 수업도 듣기 싫다. 줘 패 버리고 싶다. 남김없이 줘 패고 싶다. 자꾸 말을 시키는데, 할 말이 궁하다. 로마 제국과 현대사회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뭡니까? 나는 대답했다... 가부장적이다...? ai 기술에 대해 무엇을 염려합니까? 어디서 읽었는데... 하여튼 안 좋다는데요? 이게 다다. CAE시험은 교양 있는 현대인을 위한 강의였다. 아 알았으면 안 들었지. 나이가 들수록 멍청해진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셨을까? 오늘은 이만. 폴란드어 공부도 해야 한다. 아잇 책도 열심히 읽고 외국어 공부도 하는데 씨바 꺼. 확 그냥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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