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심판의 날
심판의 날이다. 갑자기 하늘에서 우박이 떨어진다. 저 멀리서 천둥 번개도 친다. 쨍하다가 돌연 이런다. 작년 여름, 처음 폴란드 생활을 시작했을 때도 놀랐던 기억이 난다. 휙휙 변하는 게 무섭다. 종말, 이라는 단어를 자꾸 떠올리게 하는 날씨이다.
6월 첫 주. 온도는 고작 이십몇 도지만 건물 통풍이 잘 안 돼서 실내가 찜통 같다. 전유럽이 개 같은 창문을 사용한다. 방충망도 안 단다. 왜? 요 며칠 속에서부터 너무 열이 올라서 화장실 갔다 오는 척 계속 교실문을 열어두는데 - 바람 통하라고, 선생님이 계속 닫는다. 하여튼 맘에 안 든다. 5살 이후 선생님이란 직군의 사람들을 좋아해 본 적이 없다. 나의 미국인 친구, 당돌한 L은 선생님이 너무 좋아서 헤어질 때 울 거라는데. 나는 최근에 무엇에 울었나? 기억도 안 난다. 아마 그가 24살이라서 자주 우는 걸 수도 있다. 맨날 애인과 싸우고 울고, 술 먹고 울고, 트럼프가 당선돼서 울고. 나는 이제 그럴 힘도 재미도 없다. 그래도 우리 깍쟁이 선생님이 노래 반 콘서트에도 와주었다. 못 온다고 하시더니 왔다. 교원 평가를 잘 받고 싶으셨던 걸까? 아! 사랑하는 건 어렵다.
폴란드도 얼마 전 대선을 마쳤다. 우리 대선보다 3일 빨랐다. 극우당이라고 한다. 반이민자 반유대 반유럽연합 반무슬림 반... 하여튼 나날이 격화되는 반이민시위 때문에 유학생들 사이에서 몸조심하라는 말이 떠돌던 차, 굉장한 스트레스였다. 우리 대선이 끝난 수요일에 콘서트를 했고, 뒤풀이까지 했는데, 그곳에 모인 친구들은 죄다 고통스러워하는 중이었다. L의 친구를 주축으로 하는 모임이었던지라 공감하는 가치가 대개 비슷했다. (우리 선생님은 그 바로 전날 아주 만족한다고 말하셨다. 사랑하기 힘든 이유) "이렇게 5년이라니 제기랄" 하는 폴란드 친구에게 다른 미국인 친구가 위로했다. "그 맘 잘 알지... 잘 알아... 우리는 이제 10년째야..." 너무 재밌는 대화였다.
그런데 그런 모임에 한국인 남자애들 스물 다서여섯된- 이 같이 왔고, 나 혼자 조금 안절부절 싶었다. 왜냐면 그들은 이준석을 "형"이라고 부르는 다소 전형적인 아이들이어서. 바가지가 셀까 봐 조마조마했다. 그들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그냥 고등학생 같은 아이들이다(이것 역시 마음이 아프다. 25살이다. 25살.). 되게 착하다. 이렇게 여러 사람들과 만나고 여러 관점을 접하면서 좀, 서로 좀, 알지? 좋은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다행히 친구들은 귀찮아서 재외국민 투표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한시름 놓았다. 그래, 귀찮은데 그런 걸 뭐 하러 해. 집에서 쉬어 다들, 알았지?
한국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드는 요즘이다. 대선 때문은 아니고, 사실 조금 있다. 어쨌거나. 너무 꾸역꾸역 사는 기분이 들어서이다. 그런데 그 느낌은 한평생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여기 온 것 아니었나? 나 정확히 친구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죽어라 헤엄을 치는데 온 곳도 간 곳도 안 보이지만 한가운데서 나아가지 않는 느낌이라고. 이번 주 내 태도가 불량하자 선생님이 한 소리 했다. 폴란드 공부를 우리랑 같이 안 하게 되더라도 포기하지 마. 안 하는 순간 다 까먹을 거야. 너 하고 싶은 공부, 커리어 여기서 쌓아 봐. 되게 좋은 기회가 될 거야. 기회, 기회, 기회. 어떤 의미의 기회? 기회라는 건 물고기 같은 건가? 아니면 숨겨놓은 보석 같은 건가? 아니면 땅이나 들 같은 건가? 사는 방법에 대해, 가장 충격적이었던 대화는 작년에 재적된 대학원에서였다. 선생님 한 분이 그러셨다. 원래 영화를 하시던 분이셨는데, 인문학 공부를 좀 해야겠다는 필요성에 대학원에 오셨다가, 한문문학으로 강의까지 하게 되신 것이었다. 선생님 말씀에, 영화를 할 때는 마음이 늘 괴로웠다고, 너무 좋아하니까. 근데 한문문학을 하면서 이상하게 인생이 물살을 타듯이 자연스럽게 부드럽게 흐르기 시작했다고. 문턱이 하나도 없는 느낌. 나는 그런 물살이 기회라고 생각한다. 폴란드로 떠나려는 나를 찾아와 선생님은 굳이 그 얘기를 해주고 가셨다. 아마 당신 어린 시절과 내가 겹쳐 보인 모양이다. 아, 내가 정말 좋아했던 선생님이다. 선생님이라고 무턱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와서 느낀 것은, 폴란드가 어떤 지점에서는 망명지처럼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만난 미국사람 전부 트럼프가 싫어서 온 사람들이다. 만난 중국 사람들 다... 이하 생략. 폴란드어가 손에 꼽게 어렵지만, 어학원이 계속 장사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같은 반에 미국에서 공부하고 일하다 온 베트남 언니가 있다. 굉장히 똑똑하고 재밌는 사람이다. 좀 과묵한 편이지만 나는 속으로 되게 좋아한다. 언니는 여기에 살 각오로 대학공부부터 다시 하겠단다. 나는 왜 그렇게 좋냐고 물었다. 미국을 떠나며, 언니는 고향을 제외하고- 나라 목록을 쭉 만들어봤다고 한다. 그리고 장단점을 꼼꼼하게 비교해 택한 것이 폴란드였단다. 폴란드는 깨끗하고,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하며, 안전한 나라이다. 독실한 가톨릭 국가가 낙태 전면 금지이지만 성에 대해서는 열려있다. 성적 지향에 관해서도 우리나라만큼 혹은 보다 조금 더 열려있다. 적어도 같이 살아가는 모양이 가시화되어 있다. 내가 사는 실롱스크 지역은 전쟁 후 어떤 상처 때문에 장애인에 대한 복지도 상당히 좋다. 모든 버스에 휠체어와 유모차를 위한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 노인들도 행복하다. 다만 횡단보도 바뀌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그건 개 같다. 그러니까 무슨 말을 하려는 거냐면....
모르겠다. 오늘 남동생이 집에 오다가, 경찰차가 죄다 한 곳으로 모이기에 따라가 보았다고 한다. 가보니 한 남자가 아파트 베란다 환풍기에 올라서 고성을 지르고 있었단다. 여자와 아이들이 뒤에서 보고 있었고, 남자는 계속 뛰어내리려고 했다. 거기까지 올라탔으면 뭔가 할 말이 있었겠지 싶었는데, 그건 또 아니었나 보다. 단어 하나 툭 못 뱉고 소리만 슬프게 악악 질러댔다. 말을 해, 말을. 그게 안 되니까 거기서 그런 걸까? 혹은 그냥 보는 사람도 없이 획 뛰어내리려다가 거기서 툭하고 걸린 걸까? 왜 애들 보는 앞에서 죽으려고 했을까? 겪을 수 있는 사건의 총량. 이상한 사람 재밌는 사람 멋진 사람 슬픈 사람 가엾은 사람 이 세계와 저 세계가 세상이 참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