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6일

고도의 아버지는 노망과 구분할 수 없다.

by LYN


고도의 아버지는 노망과 구분할 수 없다. 고도의 가부장은 노망과 구분할 수 없다. 조선왕조실록에 그런 이야기가 나온단다. 나도 잘 모른다. 또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다. 출처는 인터넷 사학도들이 찾아 시시비비 가려주길 바란다. 하여간 기록을 유심히 살피다 보면 영조가 나이 60부터 노망끼가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단다. 딱 자기 아들을 죽인 그쯤인 듯하다. 그런데 하도 정정하고 무서워서 사람들이 감히 노망이니 뭐니 말도 못 꺼냈다고 한다. 영조는 나이 40에 얻은 아들 세자를 제대로 잘 키우고 싶어서 손바닥에 넣고 들여다보았다. 장가도 간 아들을 들들볶고 꼬치꼬치 간섭했다. 나는 아주 악의를 품고 이런 말을 하고 싶다. 그 아버지가 너무 나대면 자손들이 일찍 화를 입는다! 그리고 나서는 다들 알다시피 그 손주 되는 놈이 복수라도 하듯 서울서부터 아버지 묘까지 가는 조선 최대 퍼레이드를 했다는 이야기다. 죽은 하늘에 대고 주먹감자를 들어 올리듯이. 노친네, 부디 엿드쇼. 한편 지금은 독일이 된 무슨 공국에도 비스무리한 시대에 비스무리한 부자가 살았는데, 그 아들 되는 놈은 그 공국의 소문난 명군이 되었지만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의 무시와 간섭, 지나친 훈육에 질려 살았단다. 그는 어떻게 뒤주에 안 들어가고 살아남았을까? 바로 열몇 살 되던 해 아버지를 존나게 두들겨 팼던 것이다. 아버지가 맞더니 그다음부터는 아주 깍듯이 대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하게 된 까닭은 우리 외할아버지가 노망이 나서 인데, 그러나 갚을 주제도 없으면서 돈 빌리고, 버럭버럭 소리 지르고 마누라 패고 무시하고, 하나밖에 없는 딸을 개똥 보듯 보는 것이 그저 평생 해오시던 것과 다름이 없어 헷갈렸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가 마누라를 데리고 온양에 가서 사업 설명회(그의 나이 아흔에서 하나 모자라다. 그는 자다가 똥을 지리는 노인이다. 우리 가정은 여러모로 간신히 살아간다)를 듣고 나오는데, 멀쩡히 잘 대놓았던 차가 사라져있었다. 그는 도둑이 차를 훔쳐갔다고 확신했다. 바로 경찰에 전화해 자초지종 말했다. 그런데 경찰이 오더니 되려 피해를 당한 이 불쌍한 노인네를 미심쩍게 보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아니 이 놈들이 노인을 공경하지 못할 망정 운전면허를 달라 그래. 이것저것 묻더니 뺏어 돌려주지 않았다. 노장은 이런 수치스러운 대우를 견딜 수가 없어서 하늘이 떠나가라 윽박을 지르고 어린 경찰 놈들 멱살을 붙잡고 손을 봐주었다. 그랬더니 서장까지 나와서 그제야 미안하다고 사죄를 하는 것이었다.


경찰은 고부를 모시고 일단 서로 갔다. 그 호적을 조회한 바, 어린 아들이 젊어서 죽고(영조부터 증명된 경험적 사실이다!) 딸 하나 있는 것이 전부인데 멀어도 너무 먼 땅에서 살고 있었다. 아마 그 경찰도 불쌍해 혀를 쯧 찼을 것이다. 폴란드 시간은 새파랗게 이른 새벽이었고, 딸이 들은 말은 아버지가 초기 치매이신 것 같다는 경찰의 사려 깊은 말이었다. 아버님을 혼자 두시면 안 될 것 같아요. 한국에 일단 모실 가족이 있으세요? 딸은 사촌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사촌언니는 이미 질릴 대로 질린 상태였다. 고모부와 의절했다는데, 들어보니 죄다 몇 달 전부터 극심해진 폭언에 돈 꾼 이야기였다. 어디서부터 노망이었을까? 차는 평범하게 주차한 곳에서 주인을 내내 기다리다 방전되어 있었다. 사촌언니는 인내심, 독실한 그녀의 사랑을 발휘하여 차를 갖다주었다.


노인이 사고를 내어 차를 완전히 망가뜨리고 겨우 목숨만 살은 것은 겨우 이틀 뒤였는데, 이번에는 대전에 사는 노인의 일흔 난 남동생이 와 사고를 수습했다. 그러자 노인은 택시를 타고 다니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디를 다니는 건지 그 앞도 못 보고 귀도 먼 주먹만 한 마누라를 데리고 온양과 대전과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사업을 구상했다. 그는 신용불량자였으므로 아내에게 대신 싸인을 하게 시켰다. 노인은 굳게 믿었다. 돈. 돈. 가족을 일으키고, 한심한 딸년은 절대 못 하는 일, 대단한 나만 가능한 일, 막대한 돈을 벌어 손손이 먹고살게 할 거야. 아! 너무나 가슴 아픈 가부장이다. 먹여 살린다는 그 고고한 자존심.


어느 수준까지도 엄마는 할아버지가 노망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원래 그러시잖아, 약주하신 것 같은데? 결국에 노인네가 목소리까지 맛이 가서 전화통을 붙잡고 손자에게 3시간 동안 요상한 이야기를 늘어놓자 그때서야 노망을 확신했다. 돈도 몇 백을 날리고서야!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우리 아버지 이야기이다. 엄마가 힘은 40대처럼 센 노인네를 정신병원이든 요양원이든 집어넣려고 한국에 가며, 아버지에게 도움을 부탁했다. 아버지는 참고로 대단한 가부장이었지만 지금은 한풀 꺾인 중늙은이이다. 그 역시 나이는 60이지만 덩치가 좋고, 잘 걷지는 못 해도 힘이 좋아 혹시나 있을 무력 충돌에 대비한 것이었다. 중늙은이 대 대늙은이의 싸움이었다. 우리 아버지로 말하자면 평생 자신의 자존심을 위해 싸우며 살아온 사람인데, 실리주의자인 나와 할머니(그의 어머니), 외할아버지(노망 난), 언니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즉, 거의 대부분의 가족이 그를 이해하지 못했고, 유일하게 엄마와 어린 남동생만이 그의 편이었다. 그는 아직까지도 똥 같은 소리를 하곤 하는데, 예컨대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의절한 동생과 상관없이 혼자 장례를 치르겠다는 둥(어머니는 동생네가 모신다, 동생은 암에 걸렸지만) - 어머니의 몸이 둘도 아니며, 그는 10년 정도 어머니에게 전화한 통 하지 않았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끔찍하게 이기적이다! 할아버지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두 중늙은이 대늙은이가 내내 같은 이야기만 할 거면서 이런 말을 반복한다. "내 얘기 좀 들어! 닥치고 아버지 얘기부터 들어!"


모두가 그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어줘야 한다. 그의 진솔하고 정직한 언어에 공감하고, 놀래줘야 한다. 모두가 그의 자존을 지켜줘야 하며.... 나는 도대체 왜! 하고 묻고 싶은 거다. 당신은 우리 자매를 손바닥 위에 놓고 괴롭혔잖아요. 복수의 마음이 아니라,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준 첫 번째 생의 사실이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 였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당신은 어떻게 아무것이 될 수 있는가? 당신이 아버지라서? 너무 끔찍하게 기능을 제거당한 21세기 가장이라서? 나는 연민 치료도 시도해 보았다. 분노만 쌓였다. 해서 요즘에 와서는 공격 치료를 시도해보고 있다. 독일 그 어쩌고 공국의 왕자처럼 말이다.


사건은 어제였다. 엄마가 노망 난 아버지를 말리러 간 지 4일짼가 3일짼가- 그래, 정말 최근의 일이다- 되는 날이었고, 우리는 마음이 서로 불편하여 매일 밤 영상통화를 하였다. 쫄래쫄래 따라갔던 아버지는 충격이 큰 모양이었다. 아무리 제가 충격이 큰들, 10년 넘은 세월 동안 얼굴도 안 보고 데면데면 살았던 저와 장인장모 사이가 매주 통화하며 챙기던 딸만할까? 그런데도 아버지는 계속 헛소리를 했다. 올해 8월에 14살이 되는 막냇동생에게 "이건 아무 일도 아니야. 네가 심리학에 관심이 많으니 좋은 표본이다 생각하고 분석해 봐"라는 말을 알았대도 5번 10번씩 하는 것이었다. 또 내게는 "이건 아무 일도 아니야, 이걸 글로 써 봐. 아주 재밌는 이야기가 될 거야"라고 엄마가 있는 바로 옆에서 반복해 말하고 또 말했다. 민망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제발 알았다고, 듣기 싫다고 돌려 말했다. 엄마도 반복, 반복하는 아버지 비위를 살피며 장난으로 아 고만 하슈, 이야기했다. 아마 너무 겁이 난 자기 자신에게 하는 소리인 모양이었다. 문제는 아버지의 심리학 타령이 그치지 않는 것이었다. 자기가 심리 상담가도 아니고 우리 중에 심리 관련된 공부를 한 사람은 교육 심리 한 학기 들은 내가 전부인데, 어디 블로그에서 주워 들었을 법한 용어들은 사용하며 자꾸,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엄마는 그 타령 때문에 제대로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엄마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계속해 아버지가 끼어들었다. 아버지의 이야기로 끌고 들어갔다. 자기 말을 듣기를 원했다. 자기가 원하는 주제로 말하기만을 원했다. 당신 부모에 대해 묻는 것도 아닌데, 질문마다 가로채서 자기가 답했다. 나는 참다 참다 끔찍하여 한 마디 했다. "아버지 그 얘기 관심 없어요"

그러자 그가 폭발한 것이었다. 엄마를 앞에 두고서 말이다. 길길이 날 뛰며 몇 달 전 이야기까지 꺼냈다. 이 싸가지 없는 새끼, 너 몇 달 전에 아버지가 뭐 물어봤을 때 알아서 뭐 하시게요 그랬지 다 기억해 니가 감히 무시해? 아마 좀 더 열받았으면 할아버지가 엄마에게 했던 말을 똑같이 했을 것이다. "확 때려버릴까!" 나는 메롱을 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메롱하고 끊고 싶었는데, 엄마가 뒤집어쓸 것을 생각해서 내 조롱하는 마음을 꾹 눌러 내려보냈다.


어제는 그러고 나서 호수 수영장에 다녀오느라 진이 빠져 욕일기를 쓰지 못했다. 나는 막냇동생을 돌보는 임무를 맡았다. 14살이면 다 큰 거 아닌가 싶어도 전 세계 법이 몇 세 이하 청소년이 몇 시간 이상 혼자 거주할 수 없게 되어있다. 엄마는 내게 양육의 권리를 위임하는 각서도 쓰고 나서야 비행기에 탈 수 있었다. 아휴 번잡스럽고 복잡해. 그나저나 할아버지가 빨리 돌아가셔야 할 텐데 노인네 명줄도 길 것 같다. 우리 아버지는 자꾸만 자기가 정신을 놓으면 스위스로 보내달라고 그러는데, 자기 돈으로 가셔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어렸을 때 무등 태워주신 값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어렸을 때 안고 불러주던 자장가 값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나는 아일 적에 아버지가 태워주는 무릎 비행기를 참 많이 탔다. 아버지들은 참으로 가엾다. 그 자신이 그 자신을 가장 많이 괴롭힌다. 사회적으로 스스로 고립시키고, 자꾸만 관계에서 엇나가게 만들고, 비참한 노후로 알아서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완전히 너덜너덜 맛이 갈 때까지도 주변 사람들은 갸웃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약주 한 잔 하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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