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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츄리닝소년 Jul 20. 2020

대학원에 대하여

1-4-2. 내 전공. 과연 있을까?

예전에 사촌 누나가 얼마 만났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일이 있었다. 왜 헤어졌는지는 잘 알지 못했지만 그런 사촌누나에게 엄마가 '결혼해서 살아보니까 그사람이 그사람이더라, 정말 운명같은 만남은 거의 없어'라고 말했던게 아직까지 기억이 나는걸 보면 그 말이 되게 인상적이거나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대학원에서의 전공도 마찬가지다. 운명처럼 나에게 잘 맞는 전공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전공이 내가 그동안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전공일 수도 있고, 그 전공을 공부하면 굶어죽을 것이라고 예측될 수도 있고, 너무 재밌고 공부할수록 설레지만 나와는 너무나 맞지 않는 전공일수도 있다.


나의 이야기로 예를 들어보면 나는 고등학생 때 과학탐구 영역에서 지구과학을 정말 재미있게 공부했었다. 그래서 대학에 가서 천문학과 수업을 설레는 마음으로 들었는데 천문학이랑 물리학이 거의 비슷한 전공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나는 수업시간 내내 고통을 받았었다. 그렇게 2학년 전공 기초 수업임에도 불구하고 고통받았던 나와 매우 잘 이해하던 원래 천문과 학생들은 몇번 수업을 더 들었었다. 그러던 중 교수님께서 한번은 학회였나 출장이었나 아무튼 이유가 있어서 천문연구원에서 중력파에 대해서 연구하시는 연구원분을 강사로 초빙을 하셨던 적이 있었다. 그때 당시 천문학계에서 전 세계적인 이슈는 중력파의 관측이었는데 그날 연구원님이 미국에서 중력파를 관측하게 된 스토리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다. 다음에 말할 기회가 있다면 말할텐데 나는 매우 많은 전공을 거쳐서 대학원에 오게 됐는데 단 한번도 그때만큼 수업을 들으면서 가슴이 뛰었던 적이 없었다. 아니 그 이전에도, 그 이후로도 한번도 수업을 들으면서 가슴이 뛰었던 적은 없었다. 그 때 중력파 연구라면 내 젊음을 갈아 넣어서라도 도전할 가치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물리를 어마어마하게 못했다. 결국 그 수업은 다 듣지 못하고 중간고사 즈음에 중도 포기해버렸고, 그 때 들었던 생각은 '좋아하는 것을 잘하게 되는 것 보다 잘하는 것을 좋아하게 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천문학에 대한 꿈을 접고 그냥 내가 잘하는 것 중에서 졸업했을 때 사장산업이 되지 않을만한 것을 골라 대학원에 진학했다.  


또 다른 내 얘기는, 나는 현재 다니는 학과의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에 다른 연구실에서 인턴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앞에서도 얘기했었지만 그 때 나는 '대학원이 어떤 곳일까'라는 생각을 전혀 해보지 않고 대학원 인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하는 모든 일들이 익숙하지 않았고 너무나 어색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수능이나 대학에 와서 학점을 따기 위한 공부처럼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정해져 있는 싸움에 대해서는 그 일들을 성실히 해나가는데 대학원처럼 (물론 연구실 중에서도 사수나 교수님이 해야 할 일들을 알려주고 그 일들만 해도 학위를 받을 수 있는 곳들도 존재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곳은 내 인생에서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근데 나는 그 지겹고 지루했던 순간들을 노력을 해서 헤쳐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단순히 그 전공이 나와 잘 맞지 않아서 내가 이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연구실에서 인턴을 하면서 나와 정말 잘 맞는 전공은 무엇일지 고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결국 졸업했을 때 잘 먹고 잘 살수 있을 것 같은 전공을 찾아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인턴을 했던 그곳과 같은 시간을 보냈었다. 인턴을 하면서 '대학원'이 나와 맞나를 고민했어야 했는데 '학과'가 나와 맞나를 고민했었기 때문에 학과를 옮겨도 결과는 같았다.


대학원에 진학한 이후에 정말 해보고 싶었던 것이 생기기도 했다. 근데 뭔가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해서 친구들이나 여러 선배들에게 고민상담을 했을 때의 반응도 제각각이었다. 내가 지금 하는 전공은 학위를 받으면 잘먹고 잘사는 길이 좀 보장이 되어보이는 길 같은데 내가 좋아해서 정말 해보고 싶었던 일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때는 정말 그걸 공부해보고 싶었지만 막상 그걸 공부하면 또 다를수도 있을 것이다. 원래 가보지 않은 길은 꽃길같고, 내가 현재 걸어가는 길은 가시밭길 같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어딘가에 있을 내 전공을 찾기 위해서 많은 도전을 해봐야 한다. 어른들이 학생들을 보면서 뭐든지 할 수 있으니까 좋은 나이라고 말하는 것 처럼, 학부생 때는 모든 도전을 해볼 수 있는 좋은 기간이다. 대학원에 A 전공으로 진학했다가 갑자기, 또는 석사를 받고 B 전공으로 전공을 바꿔 도전하는 것을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어딘가에 있을 나의 전공을 나처럼 대학원에 진학하고 나서 고민하지 말고 미리미리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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