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의 조건
금요일에 연차를 사용하고, 목요일 밤부터 친구와 모여 내 집에서 함께 놀았다. 넷플릭스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노트북을 하다가, 그림도 그렸다. 그림은, 요즘 인스타그램 같은 곳에서 많이 광고하는 ‘번호를 따라 물감을 바르면 자연스럽게 명화가 완성되는’ 스타일의 그림이었다. 즉, 실력은 필요하지 않고 인내와 지속적인 흥미가 필요했다. 우리는 처음 세 시간 정도는 집중을 유지하며 잘했지만 나는 이내 흥미를 잃어버렸다. 반면에 친구는 식음을 전폐하고 매달렸다. 토요일 오후 붓을 놓은 친구는 ‘48시간이 날아가버렸다, 너무 무섭다’고 했다.
친구와 나는 영상물을 볼 때도 취향이 많이 다르다. 나는 요즘에 영상을 오래 보는 걸 잘 못한다. 2시간짜리 영화를 보거나, 내용이 많은 유튜브를 보거나 하는 것들이 좀 버거워졌다. 뉴스에서 곧잘 언급하는 ‘쇼츠에 중독되어 집중력을 잃어버린 어린이’의 확장판일지도… 쇼츠도 많이 보지 않지만. 친구는 내 집에 오면 뉴스 채널을 틀거나 무서운 이야기를 끊임없이 읽어주는 채널을 튼다. 나는 이게 좀 버겁다. 끊임없이 새 정보를 강요받는 기분이 든다. 사실 따지자면 친구가 정상이겠지. 뉴스를 보는 것은 어른의 소양이니까?
한 끼는 함께 밖으로 먹으러 나갔는데, 동네에 좀 궁금하던 일식집이 있었다. 왜냐면 맨날 망해서 나가는 자리이기 때문이었다. 본래 나는 음식을 먹으면서 초 치는 소리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럼 같이 있는 사람조차 맛 없어지게 된다) 이 음식점은 내 기준에는 미달이었다. 젓가락들이 음식이 닿아야 하는 곳이 손에 잡히도록 배열되어 있었고, 나온 생맥주는 충분히 차갑지 않았고, 음식을 전달해 주면서 된장국을 흘렸고, 연어 덮밥의 연어가 너무 얇았고, 한 끼에 만 삼천 원 이상의 접시를 표방하면서 내놓은 반찬 종지들이 섬세하게 골라진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친구는 그냥 잘 먹었다. 평소에 이 친구도 불평이 많은 편인데… 이번엔 나만 불평을 하니까 혼자 모난 사람이 된 느낌이 들었다.
누가 묻는다면, 이 친구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다. 그렇지만 이런 관계에서도 이질감은 느껴진다. 결국 그 누구도 ‘나’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주변에서 계속 물어본다. 왜 남자를 만나지 않냐고. 나는 ‘나’가 될 수 있는 사람을 원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노력을 하지 않아도, 그리고 상대방도 어떤 노력을 하지 않아도 서로 정확하게 퍼즐의 짝이 맞듯이 공존할 수 있는 그런 존재를 원하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에 그런 사람도 사이도 없는 것을 안다. 그러니 나는 만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애정은 조건부이다. 내가 애정을 주기로 결정할 때 그것은 애정이 되고, 결정을 철회하는 순간 그것은 이질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