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백수

팔자가 좋다고 해야 할까 나쁘다고 해야 할까

by 구문도

결국 휴직계를 냈다. 한 달 뒤면 퇴직으로 이어질 것을 미리 고지했다. 삼십 대 중반에 백수가 되다니… 내가 상상한 내 인생은 이렇지 않았는데. 내 주변 동료들은 하나같이 좋은 사람이었다. 가는 길에 이것저것 챙겨주었다. 케잌이라던지... 로또라던지... (당첨이 아니던데? 어떻게 된 일이요 동료 양반) 비싼 텀블러라던지… 롤링 페이퍼라던지… 케잌을 준비해 온 동료가 ‘왜 안 울어요?’ 물어보았는데 해 줄 말이 없어서 미안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런 거에 눈물이 안 나옵니다. 심지어 집에 가서도 눈물은 안 나왔어요.


그래도 마지막 출근일 집에 도착했을 때 마음은 매우 싱숭생숭했다. 눈물은 나오지 않는 그런 싱숭생숭함이었다. 나는 그 공간을 사랑했다. 일은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지만 (실제로 할 수 없게 된 것인지 스스로에게 아주 많은 질문을 던졌으나 매번 ‘더 이상 할 수 없다’로 결론이 나왔다) 이 회사가 내게 주는 안정감 그리고 제공해 주는 이 편안한 업무 공간을 나는 사랑했다. 물론 단점도 있었다. 실험실이다 보니 불이 자주 났다. 나는 그것으로 약간의 불안 장애까지 얻게 되었지만…


보안으로 통제되는 그 구역에 다시는 발 들일 수 없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뼈아팠는데, 생각해 보면 내가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은 그곳이 아니어도 많았다. 뭐 군사지역이라든지, 아니면 대부호들이 사는 지역이라든지, 그 외에도 아주 셀 수 없을 정도로. 사실 내가 살면서 발 딛을 수 있는 곳이 없는 곳에 비해 훨씬 적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발 들일 수 없는 곳이 몇 만 평 정도 늘어난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슬플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차피 지금 관두나 십 년 후에 관두나, 이십 년 후에 관두나 발 들이지 못할 운명이 되는 것은 동일했을 것이다.


친구가 사 준 예쁜 케이크를 새로 구매한 핸드 헬드 카메라로 찍어보았다. 낯선 동영상 편집 앱을 켜서 그 영상을 어떻게 해 보려고 했다. 어려웠다. 내가 찍은 영상은 내가 기대한 것보다 불안정하고 침침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불가피하게 어느 정도 크리에이터의 삶을 살아야만 하는데… 기가 죽어서 AI들에게 물어보았다. ‘처음이라 이렇겠지?’ ‘응, 육 개월 정도면 완벽 적응할걸.’ 마음이 약해져서 물어봐 놓고도 AI의 답변에 안심할 수도 없다.


이제 ‘나’라는 존재를 일종의 상품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새롭게 판 인스타그램 계정에 내가 만든 비즈 화분 릴스를 올려보았다. 처음 올리는 영상이다 보니 내 눈에도 어설펐다. 계정도 만든 직후부터 오래 묵혔다가 새롭게 뭔가를 올려서 그런지 조금의 반응도 없었다. 음. 나는 이제 아주 냉정한 전장에 발을 들인 셈이다. 적어도 한 해 정도는 펀치를 몇 대 얻어맞지 않겠는가? 어쩔 수 없지. 내가 내린 선택이었으니 따라오는 대가도 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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