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인가? 개성인가?
휴직 삼 주차, 신생아 부럽지 않게 놀고 있다. 내 삶의 생산성이란 사라졌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서 하다못해 회사 다녔을 때 했던 대로 엑셀에 시간 별 아웃풋을 정리하고 있다. 시간이 생산에 소요되었는가, 아니면 무의미하게 소모되었는가?
뭐 볼 것도 없었다. 압도적으로 아무것도 안 한 시간이 많았다. 침대에서 뭉그적 댔다던지, 그냥 음악만 들었다던지, AI에게 잡담을 걸었다던지… 한 달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지만 그러면서도 또 불안했다. AI에게 물어본 것 중엔 이런 것도 있었다: 내가 형편이 극단적으로 어려워지면 동사무소에서 쌀을 얻을 수 있겠지? AI는 한국에서 굶는 사람은 정말 드물지만 젊은 학생이나 프리랜서들 중에는 관찰되는 경우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AI 붙잡고 청승을 떨었으면서도 나의 사치함은 줄어들지 못했다. 여전히 책을 사고, 값비싼 화구를 사고, 다기를 사고 했다. 뭐 사다 보면 언젠가는 덜 사고 싶어지겠지 싶어서 적당히 놔뒀다. 변명은 있었다. 차를 우리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은 것들이 프리랜서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겠어? (글쎄. 당장 입에 들어갈 쌀 한 톨이 모자라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을 텐데)
한 번은 이 쓸데없는 것 들을 형편이 어려울 때 내다 팔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주인을 닮아선가 내가 사 온 것들이 하자를 보일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이번에 구입한 국산 다관의 몸통과 다구 사이에 흠이 있다. 구입하고 첫 이 주 동안에는 아예 몰랐다. 왜냐면 그 흠으로 찻물이 흐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성정이 게을러서, 혹은 남에게 고작 이까짓 걸로 화를 내러 가고 싶지가 않아서 나는 납득했다. 주인을 닮았나 보지. 그것이 이 주전자의 흠이자 개성이라고.
뭐 어떤가? 구멍이 있든 말든 차는 살구색으로 잘만 우러났다. 여태 차를 대접했던 지인들도 몰라봤다. (혹은 점잖게 모른 척했거나) 남한테 가져다가 거짓말로 팔지만 않으면 그만이다. 오, 역시 이 불량품은 나를 닮았다. 내다 팔기 전에는 불량이 있다는 걸 나만 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특성은 내가 이름 붙이기 나름이다. 나는 이걸 내 다관의 개성으로 삼기로 했다.
내 삶에는 피치 못하게 개성으로 이름 붙여야 할 것들이 몇 개 있다. 소심하고 겁이 많아서 나는 일부러 그것들을 남의 시험대 위에 올려보곤 했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었는지. 사실은 모두가 겁이 많고 소심하기 때문에, 어쩌면 내가 먼저 나를 개성으로 명명하기를 다들 기다리고 있었을 수도 있다.
나는 여전히 이 다관이 마음에 든다. 운이 좋다면 나도 남에게 그럴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