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아무개씨의 작업실 겸 가게
“촌스러워서 좋~아!!” 이 발랄하고 간단한 문구가 가게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곳이 있다. B급 감성과 과한 것들을 사랑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아무개씨가 복작복작한 망원동에서 운영하는 ‘아무가게’가 바로 그 가게. 이 작은 공간은 디자이너가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 촌스럽고 귀여운 문구로 망원동 거리만큼 복작복작하다. 지난 2019년 7월부터 운영을 시작해 아직 채 1년이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수년 된 가게 못지않은 촌스럽고 감각적인 아우라를 한껏 발산하는 가게의 운영자 아무개씨 디자이너를 만나 그의 생각을 물었다.
아무가게 대표
아무가게를 운영하는 디자이너 아무개씨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려요.
B급 감성과 과한 것들을 사랑하는 아무개씨입니다. 학부시절부터 조금 촌스러운 것들에 대한 애정이 있었는데 그렇게 좋아하는 것들을 쫓다 보니 어느덧 작은 브랜드를 갖게 되었고, 지금은 아주 작은 가게까지 운영하게 되었네요.
'아무개' 사전적 의미는 "이름을 알 수 없거나, 공개되지 않은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일반적으로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많은 디자이너들이 셀프 프로모션을 위해 특별하거나 세련된 이름을 짓는 것과는 다른 행보 같은데요. 활동명이 왜 '아무개'인가요?
아무개씨의 시작은 디자인 출처를 알 수 없는 옛날 간판이나 전단지 같은 길거리 디자인의 수집이었어요. 아카이빙의 목적으로 시작했던 활동이었고, 수집한 디자인의 디자이너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아무개씨'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죠. 지금은 제가 아무개(누군가)의 디자인에 영감을 받았듯, 아무개(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활동 중이에요. 하지만 검색이 잘되지 않는 점은 씁쓸한 부분이네요.(웃음) 묘하게 처음 기획에 맞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요.
"촌스러워서 좋~아!!"라고 적힌 가게 벽면 액자에 걸린 문구가 위트 있으면서도 가게의 특징을 잘 보여주네요. 조금 거창하게 표현하면 브랜드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촌스럽다는 것의 아무가게만의 기준이 있을까요?
제가 생각하는 촌스러움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추억, 공감 같은 단어를 떠올리면 편할 것 같아요. 최근에는 거기서 나아가 단순히 레트로, 빈티지가 아닌 아무개씨만의 촌스러움을 가공해내고자 피나는 노력 중입니다!
주로 온라인과 텐바이텐, 오브젝트 같은 편집 스토어, 그리고 퍼블리셔스테이블 같은 크리에이터 마켓에서 제품을 선보여오다가 지난 2019년 7월부터 망원동에서 아무개씨만의 가게를 운영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오래전부터 작업실이란 '나만의 공간'을 갖는 게 꿈이었습니다. 그렇게 막연하게 꿈꿔오던 것이 현실이 되게끔 해준 계기가 있었는데요. 지인의 배려로 2019년 5월 망원동에서 팝업스토어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반응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제 걱정과는 달리 제품들을 보시고 웃고 좋아하는 손님들과 소통할 수 있었던, 늘 꿈꿔왔던 그 모습 그대로의 며칠 동안 오프라인 숍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골목골목 작은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출구 없는 매력을 발산해내는 망원동은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아무가게에 선보이는 제품의 가짓수가 정말 많습니다. 문구류의 디자인, 제작, 판매 그리고 온라인 주문 건에 대한 포장, 배송까지 모두 직접 도맡아 하나요?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지 궁금합니다.
놀랍게도 아직까지는 홀연히 나 홀로 도맡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만큼 정신이 없어서 최근에는 다이어리까지 구매해 시간관리를 철저히 하려고 노력 중이지만 종종 지키지 못해 혼자서 괴성을 지르곤 합니다. 주로 가게에서는 포장 및 배송 cs 업무를 진행하며, 퇴근 후엔 제품 디자인과 제작 등 디지털 작업을 하는 편입니다. 가게가 생긴 이후에는 업무가 늘어나 일이 한 걸음씩 느려졌지만 그 나름대로 이를 즐기고자 열심히 마인드 컨트롤 중입니다.
레트로풍 레터링 디자인도 흥미롭지만, 문구류에 덧붙인 설명글들을 읽는 재미도 쏠쏠한데요. 아무개씨 노트에 적힌 문구 "계획표만이라도 성실한 사람이 됩시다!" "망설이면 이미 늦다. 좋은 일은 지금 착수하라." 같은 것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이러한 글귀도 아무개씨 디자이너가 직접 만든 건가요?
글귀는 주로 옛날 서적이나 잡지를 참고해서 만들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재미있게도 그런 글귀들이 많더라고요. 처음엔 재미 삼아 넣어보았는데 반응이 좋아서 종종 개발하여 넣고 있습니다. 이때 최대한 촌스러운 말투를 사용하는 게 포인트인데 혼자의 머리론 한계가 있어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합니다. 앞서 말씀하셨던 "계획표만이라도 성실한 사람이 됩시다!"의 문구도 사실 광고계에서 일하는 지인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글귀랍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문구류를 선보이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어디에서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는지 묻고 싶습니다.
"신제품을 내야지!" 하고 아이디어를 내는 게 아니라 철저하게 제가 평소에 갖고 싶었던 것들을 주야장천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신제품이 나온다고 느껴진다면 그만큼 제가 욕심쟁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작은 상점이 좋은 의미로 촌스러운 상품으로 가득합니다. 특별히 추천하거나 애정 하는 문구가 있으세요?
아무개씨 제품 중에는 '한 손에 쏙! 스프링 노-트' 라는 노트가 있어요. 어느 날, 한 종이의 재질에 꽂혀 '이 종이로 만든 노트가 갖고 싶어!'라는 생각으로부터 출발하게 되었는데, 그때만 해도 정말 노트 제작에 관한 배경지식이 전무했어요. 결국 양 옆구리에 묵직한 종이들을 낀 채 자전거로 제작소를 왔다 갔다 발품을 팔아 제작했던 노트죠. 심지어 초기에는 제본까지 손수하는 가성비 제로의 제작 방식을 거쳤기에 가장 애정이 가는 제품이에요. 이런 노고(?)와 특별함이 묻어났는지,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 참 다행이에요.(웃음)
아무개씨 SNS 피드를 보니 종종 인쇄소를 차리는 게 꿈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포스터, 리플릿 등 상업 인쇄물을 제작하는 흔히 을지로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인쇄소를 뜻하나요? 아무개씨가 꿈꾸는 인쇄소라 하니 어딘가 특별할 것 같습니다.
종이와 인쇄와 관련된 프로세스를 공부하는 것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데요. 정말 인쇄소를 차리게 된다면 상업 인쇄물을 다루기보단 개인을 위한 소규모 1인 인쇄소 정도의 모습이 되지 않을까요? 종종 작은 인쇄 도구나 기기 등을 구매해보던가 인쇄물들을 만지고 뜯어보며 어떻게 제작되었는지 해부(?)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실제로 집에서 폐지를 찢고 불리고 갈아서 재생지를 만들어 보기도 했는데 너무 재밌더라고요. 이렇게 말하고 나니 인쇄소보다는 <종이를 베이스로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더 명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2018년은 아무개씨라는 이름으로 활동한지 1년이 되는 한 해였고, 2019년에는 아무개씨가 선보이는 문구를 소개하는 아무가게가 문을 열었습니다. 2020년에는 어떤 특별한 계획을 갖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2020년은 아무개씨 <정리의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앞선 인터뷰에서 보셨듯이 깊게 생각을 하고 일을 진행하는 편이 아니다 보니 너무 중구난방으로 뻗어 나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더라고요. 아무개씨만의 아이덴티티를 잘 정립해서 아무개씨를 찾아주시는 모든 분께 명확한 메시지와 감성을 전달하는 게 이번 연도의 목표입니다!
<아무가게>
주소 | 망원동 희우정로 10길 20
운영시간 | 평일 14:00-19:00/토요일 13:00-19:00/일, 월요일 휴무
공식 SNS | https://instagram.com/ahmugae_c?igshid=1f9b0pvv8ufqg
*주로 공식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휴무일을 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