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디자인: 형태의 전환>展
세종이 <훈민정음>을 통해 백성들에게 새로운 문자를 알린 것이 1446년이다. 한국인이 한글을 사용한 지도 500년이 넘은 것.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세종의 거대한 디자인 작업이었던 한글은 여전히 동시대를 살아가는 디자이너들에게 큰 영감을 주고 있음이 분명하다. 지난 9월 9일부터 오는 2020년 2월 2일까지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열리는 <한글 디자인: 형태의 전환> 특별전은 읽기 위한 도구를 넘어 창조적 영감으로써 기능하는 한글 디자인과 실용 디자인을 위한 ‘한글 실험’을 주목한다.
<한글 디자인: 형태의 전환>은 2016년부터 진행되온 ‘한글 실험 프로젝트’의 세 번째 전시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강주현, 박길종, 박철희, 이석우 등 국내외 정상급 작가ㆍ디자이너 22개 팀은 한글 조형에 내재한 고유의 질서와 규칙, 기하학적 형태를 해체ㆍ조합하고 뒤틀며 공간에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일상 속에서 매일 접하는 한글,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써 사용되어온 한글이 크리에이터의 감각적인 세계와 만나 유희의 대상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특히 이번 전시는 시각적으로 아름답고, 우리 삶에 쓸모 있는 것을 만드는 데 뛰어난 디자이너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단순히 보는 것으로 끝나는 특별전이 아닌 즉, 한글의 형태가 가진 상징성을 넘어 상용화 가능성을 실험하는 방식으로 패션 분야를 도입하고 분야별 협업(그래픽×제품)을 진행하였다.
구체적으로 본 전시를 통해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모아쓰기 방식에 대한 그래픽 실험을, 패션 디자이너들은 한글의 유연성과 모듈적 결합방식의 적용을, 제품 디자이너들은 평면에서 입체로 전환된 한글의 공예적 미감을 보여준다.
협업의 대표적 예로 유혜미, 박철희 디자이너가 함께 진행한 작업인 ‘한글 마루’가 있다. 한글의 모아쓰기 구조를 이용해 글자 표현lettering을 개발하고 이를 ‘마루’에 적용해 실용 디자인의 소재로써 한글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박신우 디자이너는 모아쓰기 원리를 이용한 그래픽 패턴 작업을 진행하고, 프래그 스튜디오(을지생산)와 협업하여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여 선보인다.
이 외에도 한글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한 참여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장을 가득 채우며, 그중 일부를 아래 소개한다.
그래픽 디자이너 강주현은 한글 모아쓰기의 구조를 서로 다른 모양과 색상으로 시각화한 작업을 전시한다. 초성, 중성, 종성의 영역을 사각형으로 시각화하고 각각의 역할에 따라 색상을 지정했다. 여러 개의 실크스크린 인쇄를 조합해 아홉 종류의 모아쓰기를 하나의 기하학적 형태로 볼 수 있게 했다.
함영훈은 ‘한글, ㄱ부터 ㅎ까지’를 통해 한글 자음의 조형 요소를 모듈화해 한글이 가진 형태와 구조를 조형적으로 살펴본다. 글자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를 사각형으로 정한 뒤, 3×5 모듈 방식을 이용해 한글 자음의 첫 글자인 ‘ㄱ’과 끝 글자인 ‘ㅎ’을 표현하고 이를 겹치게 배치했다. 한글의 조형을 다각형으로 모듈화해 구조적으로 해석하고, 이를 다시 평면에서 보이는 입체 구조로 표현하여 한글 자음이 가진 조형미를 찾고자 한다.
박길종은 ‘자음과 모음의 거실’을 선보인다. 그는 훈민정음 28자의 형태를 가구의 기본적인 구조로 사용했다. 한글의 형태를 의자, 탁자, 옷걸이 등의 가구로 만들어 가까이에 두고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자음과 모음의 조합’ 역시 주목할 만하다. 서정화는 본 작품을 통해 한글 자음과 모음의 형태적 구분이 사물의 기능을 구분하는 시각적 기준이 될 수 있도록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자음과 모음의 간격, 자모음 각각의 부피와 비례를 변형해 기능적 사물로서의 합리적 적용이 가능하도록 했고, 그와 더불어 한글의 실용 미학 정신을 계승하여 새로운 조형적 가치를 모색한다.
이렇듯 총 52점의 다채로운 전시 작품은 익숙했던 한글을 익숙하지만 낯선 시각으로 경험하는 시간을 선사한다. 더 나아가,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동시대 크리에이터들은 조선의 크리에이터 세종이 만든 한글의 형태적 ∙ 실용적 우수성을 자신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증명한다.
<한글 디자인: 형태의 전환>
장소 | 국립한글박물관 기획전시실, hangeul.go.kr
기간| 2019. 9. 9.(월) ~ 2020. 2. 2.(일)
참여 작가 | 강주현, 곽철안, 김지만, 대기앤준, 머드케이크, 박길종, 박신우, 박철희, 박환성, 서정화, 양장점, 워크숍워크숍, 유헤미, 이석우, 임선옥, 장광효, 장응복, 정용진, 천종업, 티엘, 한현민, 함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