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바람 연가
추수가 끝난 논을 기웃거리는 어린 짐승들, 하늘을 날며 쉴 새 없이 공략할 나무 열매를 찾는 까마귀, 까치, 직박구리, 참새들도 가을바람에 마음이 바쁘다. 풀냄새, 새들의 소리, 어딘가에서 짖어대는 짐승들의 소리까지 가을바람은 소란스럽지 않게 실어 왔다. 귀 볼을 스치는 바람은 그 많은 소식을 전하며 자기만의 연민의 소리도 전했다. 함께할 시간이 길지 않아 이 들이 준비가 될 때까지 지켜주기 어렵다고, 떠나는 사람의 안부도 꼼꼼히 챙기지 못하고 그렇게 보내야만 한다고. 어떤 때는 마지막 힘을 내는 작물들에게 비를 몰아오기도 한다. 낙엽이 지는 거리는 쉬어갈 나그네의 벤치를 위해 낙엽을 쓸어 내기도 한다. 곧 더 차가운 친구가 자리를 내 달라고 오면 그렇게 가야 한다. 동면을 준비하는 친구들에게도, 그리움에 마음이 닳아버린 친구에게도 가을바람은 그렇게 연민으로 불고 있다. 아직 갈 길이 먼 친구들이 먼저 간 세상도 위로해 줘야 하고, 곧 변해버릴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싶어 오늘도 그렇게 조심조심 가을바람은 불었다. 마지막 낙엽은 뒤에 올 친구에게 맡기자. 나는 조금만 더 힘을 내 희망의 봄을 훔쳐 와 보자. 아직 다 맺지 못한 사랑도, 익지 않은 이별도 시간이 필요하다. 가을바람은 다 안다. 그래서 더 이 시간이 아쉽다. 얼마 남지 않은 글쟁이의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보고서야 가을바람은 가고 싶다. 시월 하늘엔, 들판엔, 마음속엔 가을바람이 스며든다. 그렇게 가을바람은 연민이다. 그렇게 그리움이고 잊지 못할 사랑이다.
가을바람이 지친 어깨를 쓸고 간 빈처에서 –Sim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