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
시가 있던 날을 기억한다. 바람은 가늘었고 그래서 숲은 가늘게 흔들렸다. 나뭇가지 사이를 뚫고 나온 빛줄기는 희망의 안내자처럼 자기만의 지도를 그렸고,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덩그러니 남아 있던 그 집에서 혼자 서성이던 걸음걸음은 시가 되도록 나를 이끌고 손에 잡히던 모든 것은, 작은 운율이 되어 그곳에 남았다. 구름이 흘러가는 산머리가 보였고, 언덕 아래로 난 외길은 내 마음과 같았다. 오로지 한 곳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건넨 인사들은 그렇게 짧은 단어로 여기저기 흩어졌다. 외로움으로 가득 찼던 그곳엔 벅찬 나의 세계도 함께 있었다. 잠들지 않던 날도 온전히 깨어 온 우주를 안던 그날도 부조화의 조화로 나에게 있었다. 시가 있던 날을 기억한다. 그렇게 많은 말들이 움츠린 채 다소곳이 옆에 있었고, 더 나서지도 않았다.
길가와 마주한 산자락 끝에서 쑥 고개를 내민 도라지꽃은 예쁘다는 말보다는 신비롭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았고 한동안 발길을 멈추게 하기 충분했다. 아무것도 없던 뜰엔 하트모양을 한 잎이 자라길래 이리저리 수소문해서 물었더니 하수오라는 귀한 뿌리 식물이란 얘길 들었었다. 호기심이 늘어갈 무렵 해가 지던 날, 산자락의 노을은 수많은 생각들을 지워버렸다. 황토를 바른 몸을 하고 키위가 자라던 그 집은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만들고 숨긴 채 다른 이의 사랑이 되어가고 있다.
시가 있던 날의 기억은 그대로 남았다. 큰 이별을 한 듯 멀어진 거리를 느끼지만 여전히 시가 있던 뜰과 노을과 바람과 황토집과 마음속 울림 터까지 그대로 있다. 한 번 더 그곳에 가면 포효하듯 무언가를 쏟아낼 것 같아서 겁도 나지만, 이미 심리적 거리는 제로다.
오늘도 새벽바람은 나를 생명의 기운으로 감싸고, 이리저리 발길 닿는 데로 나를 이끌며, 새로운 시를 만들고 또 새 아침을 선물했다. 시가 있던 날은 지나간 듯 지나지 않았고, 시공을 초월한 곳에서 언제나 나에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