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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령 Sep 10. 2016

살면서 불안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우리가 불안을 다루어야 하는 이유.

  

적어도 어린아이가 아니라면, 걱정거리 하나 없는 사람이 있을까. 아무리 성격이 천하태평이라도, 사소한 걱정 하나쯤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걱정들은 불안 혹은 우울을 유발한다. 스스로 판단컨대, 나는 유난히 불안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었다. ‘불안’이라는 단어를 나만큼 많이 쓰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쉽게 불안을 느끼고 '불안해'라는 표현을 즐겨(?) 썼다. 그러다 보니, 불안, 두려움, 혹은 걱정을 해소하기 위하여 고민도 많이 하고 관련기사나 정보, 책을 많이 찾아 읽었다. 심리학을 전공으로 대학원을 진학한 것도 아마 이런 성향이 한몫했을 것이다. 이번 글을 시작으로 불안, 두려움에 대해 내가 공부하고 일상에 적용하고 있는 것들을 정리하여 매거진을 발행해볼까 한다.

   

 

 내 결정이 틀린 것이라면 어쩌지?
내 꿈을 이룰 수 없으면 어쩌지?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하면 어쩌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어쩌지?
남편이 바람을 피면 어쩌지?
취업이 안되면 어쩌지?
승진을 못하면 어쩌지?
사람들이 욕하면 어쩌지?
 내 아이가 잘못되면 어쩌지?
남자 친구가 나에 대한 사랑이 식으면 어쩌지?
운전하다가 사고가 나면 어쩌지?


이렇게 우리가 걱정하고 염려해야 할 일들은 무궁무진하다. 현실에 발을 붙이고 사는 한 이 걱정들과 불안은 끝이 없을 것이다. 걱정이 모두 해소되는 때란 없다. 단지 이 걱정에서 다른 걱정으로 옮겨갈 뿐.


위의 걱정들을 불안으로 표현을 바꾼다면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생존과 안전에 대한 불안

인정받고 싶다는 불안

역할에 대한 불안

결정에 대한 불안

사랑받고 싶다는 불안




당신 옆에 웃고 있는 그 사람도 불안해하고 있다.

 대학교 4학년 때였을 것이다. 학교 상담센터에서는 주기적으로 학생들의 심리건강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어느 날 ‘불안과 우울’을 주제로 집단상담(교육)이 있다는 포스터를 보았다. ‘불안해’라고 내가 자주 말하는 만큼, ‘우울해’라고 자주 말하는 친구와 함께 참석했다. 지금은 그때의 경험을 재밌는 에피소드처럼 말하곤 하지만(사춘기 소녀마냥 떨리는 마음으로 둘이서 손잡고 참석하는 모습이 좀 웃기다.), 당시에는 둘 다 스스로의 문제에 대해 심각했었고, 사람들에게 밝히기도 싫어서 몰래 참석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우리의 불안과 우울을 없애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간 것이었다.

 소모임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 한 명씩 자기 사례나 생각을 얘기하는 시간에 약간 충격을 받았다. 나는 우리 학교 학생들이 나만 빼고 대체로 당당하고 씩씩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나와 내 친구만큼 우울해하고 불안해하는 친구들이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우리보다 더 심각해 보였다. '저 어두워 보이는 친구들은 어디서 나타난 걸까. 그리고 나도 다른 사람들 눈에는 저렇게 어두워보일까..? '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생을 지나 회사생활을 5년 정도 하고 보니, 지금은 알 것 같다. 저 친구들이 당당하고 씩씩한 사람들 뒤에 숨어있다가 짠하고 나타났던 것이 아니라, 당당하고 씩씩해 보이는 사람들도 실은 마음 한 켠에 불안과 우울을 안고 있다는 것을. 어린아이가 아닌 이상 우리는 사회생활에 알맞는 '가면'을 쓰고 살기 때문에, 타인들은 보지 못할 뿐이다. 진짜내면은 자신만 볼 수 있으니까.


불안을 인지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 그리고 불안의 정도의 문제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는 보통 자신의 감정을 잘 들여다보지 않는 사람들이 해당될 것이다. 구태여 자신의 내면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불안이라는 감정도 '짜증'정도의 불쾌감에 뭉뚱그려져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분노의 감정을 들춰보면 그 뿌리가 '불안'인 경우도 더러 있다. 또, 불안과 같은 불편한 감정들이 느껴지면 무턱대고 덮어버리고 억압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기분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달래기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사는 게 바쁘니까 그럴 수 있다. 이렇게 자신의 감정이나 기분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이름을 붙이지 않을 뿐(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감정 라벨링'Affect Labeling'이라고 표현한다.) 모든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불안과 우울을 느끼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어린 아기일 때부터 불안을 느껴왔다.


불안장애는 가장 흔한 심리적 문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응적인 수준의 불안을 가지지만, 일상생활이 불가할 정도로 심각한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다. 불안장애는 일반 인구의 약 15% 이상이 평생 동안 한 번 이상 겪는다고 할 정도로 흔한 질병이다. 최근에는 TV에서 방송인들이 '공황장애'를 겪었다고 고백하는 것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공황장애는 불안장애의 하위 부류에 속한다. 두려움은 잘 느끼지도 않을 것 같은 성격의 김구라 씨가 가장 의외였고, 가수 김장훈 씨, 한류스타 이병헌 까지도 공황장애를 겪은 적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일반인들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정신과 전문의이자 많은 심리에세이를 저술한 하지현 박사는 진료실을 찾는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불안해요~'란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살면서 불안하지 않은 것이 더 이상한 것이라고 덧붙인다.

이렇게 흔한 증상인 불안을 잘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알아채지 못하거나 억지로 덮어놓으면 그 불안은 언젠가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서 다른 긍정적인 정서들까지도 잠식해버릴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 일상생활을 침범하는 정도의 불안을 느낀다면, 병원의 도움을 받을 것을 추천한다. 하지만, 병원에 갈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고 해도, 자신의 불안을 모른척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는 문제들에 정면으로 대항하지 않고 주변을 맴돌면서 달아나려고만 한다. 그러나 문제와 고통을 피하려는 이 태도가 바로 정신건강을 해치는 원인이 된다.

-스캇 펙 '아직도 가야 할 길' 중에서-

 

불안을 케어하면 삶의 질이 높아진다.

 병원에 갈 정도의 불안장애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불안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첫 째, 불안을 잘 케어하면 삶의 질이 높아질 수 있다. 불안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 속의 불안조차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한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걱정하느라 공부나 회사 업무에 집중하지 못했던 경험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처럼 불안이 지속되면, 정작 해내야 할 일에 집중도가 떨어질뿐더러, 내적 에너지가 상당히 소모되어 기쁜 일에도 충분히 기뻐하지 못한다. 그러나 불안을 잘 다루고 케어하면 다른 중요하고 긍정적인 일들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일 수 있어 삶의 질이 높아진다.

둘째, 효율에 대한 문제이다. 과도한 불안은 정작 중요한 일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못하게 한다. 모든 일을 염려하고 불안해하면, 정작 더 빠르고 중요하게 처리해야 할 문제를 구분해낼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현명하게 대처할 수가 없는 것이다. 과도한 불안을 낮추면, 정말 중요한 문제를 민감하게 알아채고 처리할 수 있다.

셋째,  불안을 다루다 보면 자신에 대해서 더 깊이 알 수 있다. 불안은 대체로 밖에서 온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불안을 느끼는 상황을 잘 들여다보면 자신의 '가치관'과도 관련이 높다. 또한, 정신분석에서는 불안을 무의식적 갈등의 타협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는데, 자신의 무의식에 어떤 문제를 안고있는지 알아보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불안을 잘 인지하고 그 원인을 찾고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어느 정도 편안해질 수 있다. 이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유가 될 것이다.      




내가 풀어내고자 하는 '불안'이라는 주제는 부정적인 것으로서의 불안을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중에 따로 다루겠지만 불안과 걱정 심지어 스트레스까지도 적정 수준의 것은 오히려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결말은, 계속해서 소외시키려 했던 '슬픔'이를 다시 끌어안고 다른 감정들(기쁨이, 까칠이, 소심이)과 조화를 이루게 되면서 주인공이 갈등을 해결하고 한층 더 성숙해진다는 것이었다.

불안 또한 마찬가지이다. 없어져야 할 감정이 아니라, 나와 조화롭게 함께해야 할 감정인 것이다. 더 성숙하고 현명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슬픔''분노''불안'과 같은 감정들과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 마음을 들여다보고 마주하고 사이좋게 지내야 하는 것이다.


항상 기쁘고 행복한 어른보다,

우울, 불안, 분노를 잘 다루는 어른이 더 현명한 법이니까..






참고도서 및 기사, 자료

-하지현 '불안하지 않은 것이 더 이상하다.' /채널예스 칼럼

-서울대학교 병원 건강칼럼 / 네이버지식백과

-김혜남 '어른으로 산다는 것.'

-스리나바산 S. 필레이 '두려움 : 행복을 방해하는 뇌의 나쁜 습관'

-크리스토프 앙드레 '불안을 넘어설 용기'

-오은영 '불안한 엄마, 무관심한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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