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곳적 본능

정지훈 대표 청년 작가 지망생 에세이

by Edward j







독자여, 여기 이 책은 성실한 마음으로 쓴 것이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내 집안일이나 사사로운 일을 말하는 것 말고 다른 어떤 목적도 없음을 말해둔다. 추호도 그대에게 봉사하거나 내 영광을 도모하고자 쓴 책이 아니다.
- 미셀 드 몽테뉴 수상록 서문 -











작가의 말





을 영위하면서 본능에 충실한 순간은 언제일까.

사랑, 리더, 성공, 생존, 행복과 같은 단어들이 머릿속을 갑자기 스쳐가는 이유는 그것들이 곧 우리의 삶을 이루는 중요한 축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이 글을 읽기 전, 한 번쯤 자신이 언제 가장 본능적으로 행동했는지를 떠올려 보는 것도 좋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만큼 값진 일은 없으니까.

나는 ‘행복’을 삶의 중심 가치로 여긴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행복이 아니다. 누군가를 도와주고, 가르쳐주고, 함께 길을 찾았을 때 느끼는 성취감 역시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나의 행복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더 크게 완성된다.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이 글은 내가 걸어온 삶을 되돌아보면서 시대와 함께 변해온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을 나만의 시각으로 풀어낸 문학 에세이다. 여러 자료와 지식을 참고해 썼지만, 결국 전하고 싶은 마음은 단순하다. 사소한 이야기들일지라도 누군가에게 태곳적 본능을 일깨워 삶의 의욕이 생기게 된다면 , 그 글은 충분히 의미 있다고 믿는다.

이 글이 독자에게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잠시나마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게 하고, 인간의 원초적인 마음을 되짚어 볼 수 있기를.






리더




인간이란 동물은 안 있나, 강력한 누군가가 자기를 리드해 주길 바란다니까.
- 영화 서울의 봄 대사 中-



리더의 기억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당시 학급의 분위기는 선생님의 성향에 따라 달라졌고, 지금과는 달리 우리에게 어른이라곤 부모님과 선생님뿐이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선생님의 가치관을 닮아 갔다. 나는 모범적인 학급을 지향하는 선생님의 반에서 투표로 선출된 반장이었다. 반장과 부반장은 ‘법무부’라는 역할을 맡아, 말 그대로 청소 상태나 욕설 사용 여부를 기록해 선생님께 보고했다.


어린 마음에 가끔 친한 친구들이 “오늘은 적지 말아 달라”라고 부탁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의 말씀이 곧 법이라고 생각했고, 공정함을 지키는 것이 반장의 책임이라고 믿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법대로 한다’는 말은 단순히 규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공정함을 지켜야 한다는 어렸던 나에게 있어 나름의 신념이었다.


신기하게도 누가 공정하고 책임을 다하라는 말이 없었는데도 그것을 지켰던 나였다.

나는 과거 말을 잘 듣지 않고 사고만 치던 아이였다. 그러나 그때의 첫 리더 경험은 나를 조금씩 바꿔 놓았다. 이후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도 반장과 부반장을 도맡아 하면서 많은 도전과 좌절을 겪었다. 질타를 받거나 실수를 저지르고, 전 세계에서 공통적인 슬픔의 공간인 이불속에서 과거를 후회하며 울었던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책임과 용기, 그리고 스스로를 믿는 힘을 배웠다.


리더는 단순히 조직의 앞에 서는 자리가 아니다. 사람들에게 공정함과 평화를 실현하려는 마음, 그것이 어쩌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태곳적으로 가장 원초적인 욕구일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그 역할을 맡아 실현시키는 순간, 사람들은 그를 인정하고 따르게 된다. 그리고 그 성취의 기쁨은 리더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쉽게 알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의 첫 리더 경험은 언제였는가? 그때의 마음가짐은 지금과 얼마나 달라졌는가? 그때의 열정과 책임감은 여전히 변함없이 당신 안에 남아 있는가?






사랑




우리만이 사랑할 수 있고, 이전에 그 누구도 우리만큼 사랑할 수 없었으며, 이후에 그 누구도 우리만큼 사랑할 수 없음을 믿을 때 진정한 사랑의 계절이 찾아온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행복에는 언제나 사랑이 뒤따른다.

랑이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말에 반대할 사람은 거의 없다. 독신주의자라도 누군가의 아들이자 딸로 태어나 사랑을 받으며 자랐을 것이고, 반려동물을 키운다면 그들과 사랑을 주고받는다. 그렇기에 나는 사랑이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이라고 믿는다.

첫사랑은 언제부터 시작될까?

누군가에게 첫사랑은 첫 연애를 의미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수많은 만남 중 처음으로 ‘사랑’이라 느낀 순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는 공교롭게도 이 두 가지 의미의 첫사랑을 모두 경험했다. 내게 그것은 인생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절대 잊히지 않는 기억이다.

내 첫사랑의 시작은 13살이었다.

이 이야기를 꺼내면 사람들은 종종 "13살이 뭘 알아? 사랑을 알기나 해?"라며 비웃곤 한다. 어른의 관점에서 보면 미숙한 호감일 뿐, 사랑이라 부르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고 싶다.

순수한 사랑은 해본 사람만이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멋진 데이트 장소에 가지 않아도, 여행을 하지 않아도, 그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설레는 마음.

서로의 손을 잡고 있으면 손금 사이로 땀이 계곡처럼 흐르고, 눈을 마주칠 용기가 나지 않아 시선을 피하던 그 순수하고도 달콤한 사랑. 그 모든 감정이 내겐 첫사랑이었다.

그 사랑은 내게 기준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더 성숙한 사랑을 해왔지만, 그 첫사랑과 비교할 때마다 가끔은 이길 수 없는 벽처럼 느껴진다. 서로 서툴렀고 결국 성장통 속에서 이별했지만, 그때의 마음은 지금도 잠들기 전 종종 떠오른다.

사랑에 있어 인간의 본능이란 아마 이런 감정일 것이다. 그것은 남녀 간의 사랑일 수도 있고, 자식을 바라보는 감정일 수도 있다. 나는 13살에 이미 그 본능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당신의 첫사랑은 누구인가?

꼭 연애를 하지 않았더라도 첫사랑은 존재한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가슴이 뛰고, 손끝이 스치기만 해도 몸이 떨리는 그런 기억. 어떤 이에게는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나 물건일 수도 있다.

그 첫사랑을 떠올리며 하루를 보낸다면, 아마 잠 못 이루는 밤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처럼.





모방과 학습




군인은 언제나 자기를 희생하고, 다른 이들을 위해 봉사한다.
-조지 마턴-



우리나라를 지켜주고 계신 후배 전우들과 대한민국을 지켜주셨던 선배 전우님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북 분단 이후 75년 동안 대한민국의 수많은 남성들은 국가를 위해 징집되어 각자의 보직을 맡아 임무를 수행해 왔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누군가를 위해, 국가를 위해 군 복무를 한다. 나 역시 입대 전에는 ‘국가를 위해 열과 성을 다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군대에 들어갔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거칠고 힘들었다. 내 청춘의 일부인 1년 반의 세월은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조교로 보냈다. 이곳은 매년 육군의 70%가 훈련을 수료하고 각 부대로 배치되는 곳이다. 훈련병 시절을 지나 0.8%만 선발되는 훈련소 조교가 된 나는, 간부들과 함께 훈련 계획을 세우고 훈련병들을 지도했다. 하지만 누군가가 쓰러지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밥을 먹지 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늘 긴장해야 했고, 잠은 항상 부족했다. 그랬기에 정신적 스트레스가 늘 따라다니는 보직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전역한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그다지 좋은 조교는 아니었다. 사회성이 부족해 선임들의 눈치를 많이 보며 늘 혼이 났고, 예민한 성격 탓에 훈련병들에게 화를 잘 내고 짜증을 자주 냈다. 운동신경도 부족해 체력적으로, 어떠한 의지 측면에서도 힘에 부쳤다. 조교라는 보직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느껴, 해임을 건의할 생각까지 했다. 조교에게는 특별한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에겐 그저 0.8%만 남는다는 명예뿐인 자리였다.


그럼에도 내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한 사람, ‘K’라는 존재 덕분이었다. K는 남들과 다른 생각과 행동을 가진 사람이었다. 힘들어하는 이들을 다독이며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마라”라고 말하던 사람, 대화와 행동이 진중하고, 무엇을 물어도 명확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운동신경도 뛰어났고, 직급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편견이 없었다. 그는 마치 동화 속에서나 볼 법한 인물 같았다.


나는 K를 보며 배우고 싶다는 강한 욕망을 느꼈다. 그것이 내 1년 반의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해 준 가장 큰 이유였다. 군대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누군가와 자신을 비교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내 행복만을 생각하며 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K와 나를 비교하니 차이가 명확히 드러났다. 살아온 환경과 성격 차이도 있었지만, 가장 큰 차이는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이었다.


나는 늘 규칙과 틀에 맞춰 ‘안전하게’ 일을 처리했다. 겉으로 보면 성실해 보일 수 있지만, 실상은 수동적이었다. 반면 K는 늘 더 효율적인 방법을 고민하며 유연하게 일을 처리했다. 그 과정에서 오히려 더 튼튼하고 확실하게 일을 해냈다. 그 차이는 단순히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능동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능동적으로 일해.”


처음으로 혼났던 날 선임이 해준 이 일곱 글자를 이해하는 데 1년이 걸렸다. 그리고 그제야 K가 어떤 마음으로 행동해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어느 정도 계급이 올라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자, 나도 후임들과 함께 능동적으로 일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처음에는 K의 도움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도 일을 해낼 수 있게 되었다.


그 효과는 놀라웠다. 성장을 통해 내가 이겨낸 부분도 있었고, 고지식한 사고방식을 조금 내려놓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주변에서도 점점 나를 믿어주는 분위기가 생겼다. 결국, 조교라는 보직은 나와 맞지 않는 자리라 생각했지만, 그곳에서 오히려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전역을 앞둔 시점이 되었을 땐, K가 늘 해주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마. 지금 힘들고 지친다면, 그건 네가 잘하고 있다는 증거야.”

당시엔 힘들고 지치니 그저 북돋아주려는 말인 것 같았지만 시간 지나 돌아보면 그 불안한 상황 속에서 누군가를 북돋아주는 말을 하는 K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깨닫게 되었다.

보통 인생에서 세 명의 귀인이 찾아온다고 한다. 아마 K는 그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표현에 인색한 성격 탓에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했지만, 그는 내게 능동과 희생의 가치를 깨닫게 해 준 소중한 사람이다.

앞으로 K가 내게 그랬듯, 누군가에게 말없이 능동적으로 행동해 조직의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그 다짐은 지금도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이어지고 있다.


만델라에겐 시술루가, 이순신에겐 류성룡이 귀인으로 남겨져 있는 것처럼 당신에게도 그러한 귀인이 남겨져 있는가?

그 귀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당신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한번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귀인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면서 말이다.






성공




비관론자는 모든 기회에서 어려움을 찾아내고,
낙관론자는 모든 어려움에서 기회를 찾아낸다.
-윈스턴 처칠-


'성공을 한다'라는 말은 최근 들어 정말 한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어디에 합격을 하거나 무언갈 수행해 내야만 '성공'이라는 단어가 붙여지니 말이다.

성공의 의미는 목적한 바를 이룬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무조건 합격하고, 무언갈 수행해 내는 그런 결과론적인 단어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관점에서, 나를 성장시키고자 하는 목표를 수행했지만 그 프로젝트를 실패했다면 당신은 그것을 성공이라 볼 것인가?


과정 중심이다, 휴머니스트 같다. 다양한 질타를 받을 수 있겠지만

나는 더할 나위가 없는 크나큰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더 나은 선택을 하고자 한다. 과거엔 생존의 문제였지만, 현대의 청춘들은 그 본능을 이성적 사고와 결과 중심의 판단으로 이어가고 있다. 그것의 방증은 과거 청춘들보다 쉽게 극단적이고, 포기하고, 자책하고, 우울해한다는 것이다.


나는 20대 초반에 총 7번의 프로젝트를 경험했다. 대내적으로 4번, 대외적으로 2번, 스타트업 창업 관련 1번이었다. 결과만 따지면 2등 5번, 3등 1번, 실패 1번이었다. 하지만 내가 세운 기준으로는 모두 성공이었다. 내가 정한 목표가 “젊을 때는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자” 였기 때문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세계적인 L기업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 제안 프로젝트이었다. Y대, I대, S대 등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고, 가고 싶어 하는 명문대 학생들과 경쟁했지만, 우리 팀은 예선을 통과해서 상장과 취업 인센티브라는 큰 부상(副賞)을 받게 되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이디어는 누구나 낼 수 있고 나이, 학벌을 막론하고 충분히 빛날 수 있다는 사실을.

물론 과정에서 자만하고 나 자신을 자랑하다 큰 코를 다친 적도 있었다. 그때 어른들이 늘 말하는 겸손과 미덕의 중요함을 뼈저리게 배웠다.


나는 7번의 프로젝트를 거치며, 자신의 발전과 성장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결과적 성공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성공과 실패는 단순한 결과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정해 놓은 기준이 절대 아니다. 그 기준은 오로지 스스로 세운 성공의 기준에 달려 있다.

당신은 지금까지 얼마나 성공했고, 얼마나 실패했는가? 설령 실패했더라도, 언젠가 다른 분야로 성공으로 이어졌다면 이미 성공의 과정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회상과 기록




"기록은 망각에 대한 인간의 승리이다."
- 율리우스 카이사르


곳적으로 기록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세상은 어땠을까. 아마 사람들은 이야기를 구전으로 전하고, 그림과 몸짓으로 감정을 표현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망각을 반복하는 존재이기에, 이런 방식만으로는 지식이 체계적으로 축적되기 어렵다. 세대가 바뀔 때마다 지혜는 사라지고, 문명의 발전은 지금과 같은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기록의 부재는 기억의 왜곡을 불러오고, 사람들은 본능에만 의존한 채 살아가며 평화나 협력 같은 개념조차 싹트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상을 해보면, 내가 지금까지 간직해 온 기록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껴진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나의 흔적을 담은 유물들을 그대로 보관해 왔다. 확률과 통계 문제를 풀기 위해 수십 번의 계산 과정을 적어 내려간 공책은 구겨지고 낡았지만, 그 안에는 내가 문제를 풀기 위해 얼마나 고민했는지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경제 과목 수행평가에서 우리나라의 경제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분석해 작성한 답안지는 당시의 치열한 고민과 성찰을 보여주는 증거다.


기록은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그 과정을 담아낸다. 예를 들어, 나는 한 번은 경제 수업에서 ‘청년 실업 문제 해결 방안’을 주제로 발표를 준비한 적이 있었다. 발표를 준비하면서 작성했던 초안과 자료 조사 과정에서 만든 메모들은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봐도 그때의 열정과 고민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나는 단순히 과제를 해내는 학생이 아니라, 한 학교라는 작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문제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 기록을 남기고 되돌아보는 경험은 내게 단순한 학습을 넘어 삶을 바라보는 태도까지 바꿔주었다.


심지어 대학생이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기록의 힘을 믿는다. 대학교 강의에서 배운 내용을 정리한 필기, 창업 관련 아이디어를 떠올리며 만들었던 파워포인트,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기획안을 준비하며 작성한 회의록까지. 이 모든 기록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연결해 주고, 앞으로의 나를 그려볼 수 있는 재료가 된다.


“역사를 바로 알면 미래를 본다.”라는 말이 있다.


나의 기록들은 나에게 더 큰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고등학교 때의 낡은 공책과 대학 시절의 프로젝트 보고서는 모두 내가 고민하고 성장해 온 흔적이다. 그런 기록들은 내가 걸어온 길을 증명할 뿐 아니라,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을 심어준다. 과거를 기록하고 되돌아보는 행위가 있었기에, 나는

지금의 나를 만들 수 있었고, 앞으로의 나를 그려갈 힘도 얻는다.


결국 기록은 단순한 과거의 흔적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누구였는지 알려주는 증거이자, 내가 누구로 성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언젠가 내 책꽂이에 가득 쌓인 공책과 파일들을 다시 꺼내 볼 때, 나는 또

다른 미래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마치며


인간의 태곳적 본능은 원초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본능이다. 그 본능을 억제하고 자기 자신을 가두는 순간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이다. 태곳적으로 인간은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변화했다. 사람의 몸속 세균과 세포마저도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어떻게 그 섭리를 거스르는 행위를 자처할까.

누구나 알다시피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순간 파멸적인 멸망이 뒤따른다.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 안에서 명확히 자기 자신의 본능을 추구한다면 아마 그 사람은 가장 행복하게 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본능은 길을 잃지 않는 나침반과 같다. 이성이라는 지도와 함께 사용할 때 가장 완벽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언처럼 본능에 이성을 함께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건 법과 규칙에 따라 처벌받는데, 옳게 된 이성과 생각은 결국 나 자신의 행복으로 이뤄진다.

이 글을 읽은 당신도 어쩌면 자기 자신을 가두는 삶을 살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공을 위해서, 높은 직위를 위해서 자신의 행복을 저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잘 되돌아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성해 보았다.

사람에게 태곳적 본능이 없다면, 미래도 없다는 뜻이 되기에.

-이 땅에 수많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과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