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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문장_끝내주는 인생

끝내주는 토요일 밤과 이슬아와 이훤

오늘의 문장은 가배장*의 시대 문을 연 부부, 이슬아 작가가 쓰고, 이훤 시인이 사진 산문으로 참여한 끝내주는 산문집, 『끝내주는 인생』(디플롯, 2023)에서 가져왔습니다.

*배우자가 가장이 되는 상호존중과 평등의 공동체          

그곳에서 이훤은 허리를 펴고 찬바람을 쐴 것이다. 나는 그가 시카고의 바람을 묻힌 채 멀대처럼 성큼성큼 나에게 걸어올 미래를 기다리고 있다.

_「픽셀 속 영어 교사」 중에서


내 문장은 이훤이 만든 이미지를 타고 더 멀리멀리 간다. 우리가 이렇게 가슴 뛰는 작업을 오랫동안 함께 하게 되리라는 걸 직감해서였는지 그를 만났을 때 심장이 저릿할 만큼 반가웠다. 도대체 어디에 있다가 이제야 나타난 거냐고 멱살을 잡고 묻고 싶을 만큼이었다. 그의 조력 없이 지냈던 시간을 생각하면 아득해진다. 일과 쉼과 생활 속에서 나는 잠깐씩 이훤의 눈으로 세상을 보곤 한다. 이훤이 내 눈으로 세상을 보곤 하듯이. 사랑하는 동안 우리는 자기 자신이기만 할 수는 없다.

_「에필로그 나만은 아닌 나」 중에서


끝내주는 연휴였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로 항상 바쁜 제가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온전히 남편이자 아빠로 가족 곁에 이렇게 오래 머문 적이 있나 싶습니다. 잠이 덜 깬 아이를 조용히 앉아주고 다독여 주면 그 작은 손으로 아빠 따라서 어깨를 토닥토닥 다독여 줍니다. 어린이집 등원시킬 땐 누리지 못하는, 주말이 제일 바쁜 저는 주말에도 누리지 못하는 아빠와 아들의 교감을 이제서야 느낍니다. 언제나 '이제서야'라는 말에는 후회보단 다행이란 안도감이 더 진하게 스며들어 있습니다.


끝내주는 토요일 밤이었습니다. 한 번 졌던 팀을 상대로 승리한 야구와 부상 투혼을 발휘한 배드민턴과 역전승을 거둔 축구까지, 정말 끝내주는 이야기가 담긴 승리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끝내주는 한 쌍의 부부가 탄생한 거 같습니다. 이훤 작가님과 이슬아 작가님은 일간 이슬아 연재받을 때도 그냥 평범한 과외 선생과 학생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했고, 특히 위에 두 문장을 보다가 '비혼주의자들이 아니라면 결혼하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두 분의 피드에 결혼한다는 소식이 떠서 멀리서 마음을 다해 축복을 빌었습니다.

저와 아내도 인천과 중국 윈난성 쿤밍이라는 물리적 거리를 둔 채로 소개받아서 만나기 한 달 전에 카카오톡으로 만날 장소나 이야기들을 나눌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기하게도 만나기도 전에 이미 게임은 끝났던 거 같습니다. 자존심이 지나치게 강하고, 도무지 굽힐 줄 모르고, 기어이 설득하고야 마는(이겨 먹는) 성격인 제가, 유일하게 '져 줄 수' 있는 사람 같았거든요. 물론 7년이 지나고 나니 '기꺼이'는 못 져 주고, 안 지려고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다 져 준다고 서운해하지만, 제가 져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건 변하지 않았습니다.


박연준 시인님이 "누군가 제게 기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기적이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일'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 그게 참, 쉬운 듯 보여도 쉽지 않잖아요."(『쓰는 기분』(현암사, 2021),67p)라고 말씀하신 게 생각났습니다. #박연준시인 #쓰는기분 #현암사 #기적 #사랑


이번에 양궁에서 돌풍을 일으킨 임시현 선수는 국가대표 선발전에 탈락했었는데, 대회가 일 년 연기되는 바람에 국가대표로 발탁되었고, 이번에 3관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국가대표가 되는 것도, 금메달을 차지하는 일도, 무엇보다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이란 걸 하는 일도 모두 '기적' 같은 일입니다. 물론 그 기적은 오로지 당사자만 쓸 수 있는 말일 것이고요.


끝내주는 연휴에 마침표를 찍습니다. 내일 오후 2시에 오랜만에 도서관에서 뵈어요.


#끝내주는인생 #디플롯 #이슬아작가 #이훤시인 #끝내주는결혼 #끝내주는경기 #오늘의문장 #칭다오 #칭다오청양 #칭다오경향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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