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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질문_ 우리도 팬데믹 시대라는 역사를 쓸 자격이

팬데믹과 아카이빙

오늘의 질문


인천 집에서 가장 오래된 물건은 아버지께서 사회 초년생 때 사셨던 릴케의 시집, 그리고 양장 앨범들입니다. 부모님의 신혼 초 사진부터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저의 어린 시절과 성장기까지 모습이 담긴 앨범입니다. 제가 고등학생 때 아버지께서 앨범을 모두 스캔하셨던 거 같은데, 아직 앨범은 버리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앨범을 보면 별명만 기억하는 친구들과의 추억, 도무지 기억이 안 나는 공간, 힘들게 버텼던 일 등이 생각납니다.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복구되었을 때도 잃어버린 20대를 찾은 기분이었습니다.


기록이란 게 참 신기합니다. 기억을 저장하는 일, 아카이빙archiving은 어떤 시절을 보관할 수 있는 일입니다. 팬데믹 시절은 다시 돌아가기 싫은 시절입니다. 격리, 봉쇄, 마스크 대란, 비대면 수업 등 가족을 지켜야 하는 어른들은 정말 끔찍한 시절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어린이나 청소년은 어림과 소란의 방법으로 이 시절을 통과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팬데믹 시절을 물어보면 "게임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수업 시간에 먹을 거 먹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라는 답을 많이 듣게 됩니다.


어른이 되었을 때 힘든 일을 만날 때마다 어린 시절 힘든 일을 이겨냈던 추억을 길어 올립니다. 그 오래된 추억이 힘이 될 때도 있습니다. 고생길이 열린 저희 부부에게 어머니께서 10일 동안 살 오피스텔을 준비해 주시며 하신 말이 생각납니다. "사람은 좋았던 추억으로 사는 거야." 10평도 남짓한 원룸, 저희가 결혼하고 러시아로 떠나기 전에 10일 살았던 오피스텔에서 추억을 종종 생각합니다.


저는 어머니의 말을 어린이와 청소년과 부모님들께 드리고 싶습니다. 미래 세대 주인공들이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갈 때 자신이 첫 팬데믹 시절을 이겨낸 추억이 힘이 될 것입니다. 기록하지 않으면 이 값진 교훈은 사라질 것입니다. 저는 팬데믹에 대한 기억의 유통기한은 올해까지라고 생각합니다. 험난한 시절을 곱게 접어두고 힘차게 나아가시길 응원합니다. 역사를 남기는 일에 이름을 남기시길.


오늘의 질문은 "우리도 팬데믹 시대라는 역사를 쓸 자격이 있지 않은가? "입니다.


머무는 문장

이제는 사십대가 된 당시 초등학생들의 기억 속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은 빵을 나눠 먹는 흥겨움, 폭죽놀이 같은 총소리, 그 총알을 막기 위한 이불, 시신을 실은 수레 등으로 등장한다. 이 성글고 모순된 기억들은 독재를 겨냥한 해방구의 축제이자 전쟁보다 더한 폭력에 휩싸인 5월 광주를 훨씬 정직하게 보여준다.

_문선희,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 담벼락에 묻힌 5월 광주 』(난다, 2016), p.175


어린이의 언어 자체가 동시이고, 청소년의 소란은 시로 담기에 부족하여 산문을 택했습니다. 우리는 기억함으로 추억할 것이고 추억함으로 견뎌낼 것이고 견뎌냄으로 이겨낼 것입니다, 우리 앞에 어떤 세상이 기다린다고 하더라도. 우린 이미 한 번 이긴 사람들이니까요.

 

덧, 어린이 동시 공모전에 그림이 아닌 팬데믹과 관련된 사진을 받게 된 이유는 문선희 작가님의 인터뷰집에 있는 사진이 지닌 '힘'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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