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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오늘의 문장_ 나는 내가 살았던 이야기를

오늘의 문장, 안녕.

<오늘의 문장과 잠시 헤어집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살아가다가 사라지는 운명을 타고났다면,

우리의 삶을 저장하는 행위는 사라지는 운명을 마주한 인간의

본능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벽화에다가 그림을 그리던 조상들도 그러한 본능을 가지고 있었겠죠. 모든 기록은 그렇게 역사가 됩니다. 아스달 연대기라는 드라마를 봤는데, 마지막 장면에 김옥빈 배우 대사가 인상 깊었습니다.

'나라는 결국 이야기였어. 내가 그걸 몰랐네."


내가 살았다는 사실을 기록하지 않으면 한 세대가 지나고 나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진을 찍고, 일기를 쓰고, SNS에 일상을 올리는 이유가 결국 "나, 여기, 살아있어요!"라고 외치는 게 아닐까요. SNS에는 되도록 좋은 모습이나 내가 희망하는 모습만 남길 것이고, 일기장엔 나의 슬픔까지 꾹꾹 눌러 담을 것이고, 사진은... 현대과학의 도움을 기꺼이 받을 것이고요.


더구나 한국인은 낙서의 민족이기도 합니다. 종이와 펜이 없어도 기어이 벽에 돌로 기록할 수 있는 기록의 인자因子가 우리 피에 흐르고 있습니다.


2021년부터 지금까지 너무 많은 글을 썼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로나19 걸렸을 때도 썼는데....'라는 일종의 강박이 생기기 시작했고요. 올해 12월까지 쓰고 멈추자는 생각도 했었지만, 그냥 오늘 멈추고자 합니다.  그동안 오늘의 문장을 사랑해 주신 교민 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단지 '글 재밌게 보고 있어요'라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저에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제 일주일에 한 번만 마음을 모으고 이야기를 다듬어 한 편씩 요일을 정해서 연재를 하려고 합니다. 도서관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사람을 만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 쉬지 않고 썼으니 쉬면서 생각해야겠습니다. 오늘의 문장, 안녕. 나의 불행과 행복을 모두 함께했던 친구야.


당분간 쓰지 않을 오늘의 문장은 북클럽 어린이들과 함께 읽고 있는 김륭 시인이 쓰고 노인경 작가가 그린 동시집, 『내 마음을 구경함』(문학동네, 2022)에서 가져왔습니다.


"나는 내가 살았던 이야기를

누군가 열심히 읽고 기억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건 내가 사는 아파트로 와

그동안 한 번도 집 밖을 나가 본 적이 없는

고양이 무티가 밥을 먹을 때마다

한 번도 빼먹지 않고

하는 말이다


나는 무티의 이 말을 번역해

일기장에 쓰기까지 꼬박

십 년하고도 두 달이

걸렸다


_「무티의 자서전」 전문


브레이크 패드가 닳기 전에 멈추기,

멈추고 싶은 마음을 인내라는 이름의 포장지로 덮지 않기.

어제저녁에 문득 이 두 가지 마음이 저를 사로잡았고,

기꺼이 멈추기로 했습니다. 책을 탁, 하고 덮듯이.


잘 쓰고 싶은 본능이 매일 쓰는 습관을 멈추게 하네요.

브런치에 연재 기능이 생긴 것도 한몫했고요.

넉넉하게 돌아보고 돌아올게요.   


도서관은 2층에서 제3회 칭다오 경향도서관 문학상 1차 심사를 보는 중입니다. 저는 심사가 끝날 때까지 1층에서 자리를 지킬 예정입니다.


도서관은 내일 오전 11시에 개관합니다. 안온한 밤 보내세요.

#김륭시인 #노인경작가 #문학동네 #내마음을구경함 #오늘의문장 #칭다오 #칭다오청양 #칭다오경향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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