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이방나라의 풍경과 타오르는 고국의 풍경 사이에서
춘분이 지나자
여름이 성큼 다가오는 듯했습니다.
그러다 계절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되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와 헤어질 때
그 흔적을 지우려 애쓰다
오히려 마음에 미련만 더 남기듯—
계절도 그렇게 이별을 겪습니다.
겨울이 봄에게,
봄이 여름에게 미련을 갖는 것,
여름이 봄을,
봄이 겨울을 그리워하는 것,
계절의 변화는
복잡한 관계 속에 있습니다.
당신은
어느 계절을 지나고 있나요?
어떤 시절을 보고 있나요?
저는
봄처럼 맑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벚꽃이 예쁜 학교에서 보고 있습니다.
같은 땅 위에 피는 벚꽃도
피고 지는 시기가 다릅니다.
그리움의 농도,
미련의 깊이도 저마다 다릅니다.
나도, 당신도, 봄도,
그리고 이 계절도
공장에서 찍어낸 기성품이 아닙니다.
지금,
고유한 이름을 하나씩 외우는 중입니다.
이름을 알게 되면
사람은 달라 보입니다.
이름을 알기 전과 같을 수 없습니다.
오늘은
일곱 명의 이름을 외웠습니다.
반납할 때 스치는 이름을
재빨리 외우고,
대출할 때 조용히 불러봅니다.
그렇게 두 번 각인된 이름은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고국에서 들리는 소식*에
진종일 기우제를
드리는 마음으로 지내는 중입니다.
여러 이름을 가진 아이들이
학교에 가야 합니다.
신원 미상은 가장 아픈 이름입니다.
고국의 풍경이
이곳의 봄 풍경과
너무도 이질적이라
더욱 가슴이 아팠습니다.
어른들은 숲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사실 나무를 바라보는 법은
오래전에 잊은 듯합니다.
다르게 피어나는 꽃들을 바라보며
지난 계절에게 안부를 묻고,
다가오는 계절에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광장에는
너무 많은 꽃들이 피었습니다.
벚꽃, 진달래, 개나리, 모란—
다른 꽃을 꽃으로 보지 못하고
서로를 향해 다투는 소리가 납니다.
부디,
더 이상 타지 않기를 바랍니다.
색이 다른 꽃들이
서로 너무 멀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어린이들의 인사에는 미소가 있었습니다.
그 웃음이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고국에 있는 어린이들도
빨리 웃음을 찾을 수 있길
빕니다.
벚꽃이 피기 시작한 대원에서,
칭다오에 사는 이방인.
한강 작가님을 포함한 414명의 작가가 내란 사태와 관련된 한 줄 성명을 내놓았고, 출판사와 서점 등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입장이지만, 최대치로 참으며 한 줄을 보탭니다.
극단에 치달아 절벽 끝까지 간 친구를 구하기 위해서는 전력을 다해 업어치기라도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차악이 아닌 최선을 선택하는 세상이 오길 바랍니다.
*
인재로 인한 산불 소식은 언제나 허무하고 비참하다. 모든 이들과 땅과 생명의 회복을 빈다.